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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Feb 07. 2023

운명 같은 만남

누구나 꿈꾸는, 여행에서의 그런 만남

비포선라이즈, 비포선셋의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처럼 어쩌면 우리는 여행을 갈 때마다 운명 같은 만남을 꿈꾸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십 년이 넘은 여행동안 글쎄... 그런 일은 간혹 있을지 모르겠지만 매우 희박한 확률이긴 하다.

그런 여행지에서의 사람과의 만남이 꼭 한눈에 반하는 사랑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여행지 자체가 될 수도 있고, 여행 안에서의 그냥 사람 대 사람의 만남이 될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뉴욕에서 운명이라고 믿었던 추억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잠시 스치는, 그저 추적추적 내리던 소나기 후 갑자기 찾아온 햇살 정도였다고나 할까.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앞서 운명이라고 말한다면, 그 순간에 그곳에 내 발이 닿았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장소들이 있는데 나는 왜 하필 그때 그곳으로 떠나게 되었는지부터가 이미 어쩌면 정해진 운명이 아닐는지.


취업을 코앞에 앞둔 마냥 불안한 휴학생인 시절에 나는 정말 오랜만에 연락된 친척언니의 부름에 당시 거금의 비행기표를 끊고 미국으로 날아가면서 나의 삶의 운명은 바뀌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그 어떤 일도 풀리지 않았던, 도무지 앞이라고 보이지 않았던 망망대해 같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은 정말 사는 게 너무 지쳐 집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뭐라도 털어놓고 싶어 답답한 마음에 길에서 사주를 본 적이 있다. 그때 그분의 말씀이 조만간 해외 어디 멀리 한번 갈 것 같다고 하셨는데, 당시만 해도 나는 해외에 나갈 아무런 계기나 연고지가 없었다. 하지만 나의 간절함은 하늘이 아셨는지 준비된 자에게는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 나는 새벽 5시부터 밤 12시가 넘도록 시간을 쪼개면서 사는 삶을 살았다. 새벽에는 영어학원을 다니고, 강의 스케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만들어 듣고 학기를 끝냈고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일하면서 동시에 졸업작품까지 준비하며 새벽반 영어 회화학원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다녔다. 운 좋게도 처음 만난 좋은 원어민 선생님 덕분에 영어에 대한 거부감을 일찍 없애서 그때만큼 영어에 흥미를 느끼면서 열심히 배운 적이 없을 정도로 모든 가르침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그때 마침 우연히 안부를 묻다 결혼 후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미국에 사는 친척언니와 연락이 닿았는데 나의 이런 사정을 듣더니 흔쾌히 집으로 초대를 해주어 뉴욕에 장기간 머물 수 있게 되었다. 당시 무비자로 미국을 관광할 수 있을 때가 아니어서 출국하려면 관광 목적이라도 비자가 반드시 필요했는데, 부모님 지인덕에 온 식구가 미국 비자를 예전에 미리 만들어 놓았고, 마침 유효기간이 1년 남짓 남았었다. 그렇게 무언가 퍼즐 맞추듯 이런저런 것들이 하나씩 맞아 들어가 항공권만 끊고 큰 준비 없이 일주일 안에 바로 떠날 수 있었다.


어쩌면 모든 일은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운명이란 이름으로 준비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여행지를 가면 내가 왜 이 나라로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히나 나는 여행지를 정할 때 매우 심사숙고하는 편인데, 단순히 이곳에 오고 싶다, 가고 싶다 해서 여행지를 정하진 않는다. 보통 여행지를 정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세계 경제나 트렌드를 보고 이 나라의 문화는 반드시 알고 앞으로의 커리어를 위해 무조건 경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거나, 혹은 정말 비행기 티켓이 엄청난 딜의 가격으로 나왔을 때 그곳으로 여행지를 정한다. 그리고 보면 이러한 결심들은 항상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면 어느 날 때가 되어 운명처럼 다가온다.


첫 유럽 여행도 아마 두번째 뉴욕에 있는 회사로 트랜스퍼하는 것을 어쩔 수 없이 포기했을 때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어차피 비슷한 비행기표면 그냥 이럴 때 가보자 하고 결심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미 미국 내에서도 많은 여행들을 했지만 아무래도 친한 사람들과 같이 갈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보니 나 홀로 여행에 이미 익숙해져 유럽도 낯선 또 다른 어딘가로 홀로 떠나는 것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이런저런 수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 또한 운명적인 만남이 아닌가 싶다.


여행이란, 그렇게 하나하나의 경험들이 모두 계획된 일이 아닌, 준비된 자에게 주어지는 운명 같기도 하다.

마치 그때마다 신이 내려주신 선물처럼.

당시의 수많은 경험들은 언젠가부터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현재를, 그리고 미래를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으니 모든 운명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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