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파리일기
저번 주엔 한국에서 알던 분을 파리에서 만났다.
내가 참 좋아하는 독서모임에서 만난 분인데, 파리에 오신다고 하길래 냅다 먼저 연락을 했고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다. 이 독서모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책 말고 다른 이야기를 잔뜩 한 뒤에 책 얘기도 조금 하는 모임이다. 나이는 몇 인지, 학교는 어딜 나왔는지, 애인은 있는지 등 신상 같은 건 절대 묻지 않는다. 앉아서 실컷 얘기를 한 후에 쿨하게 헤어져서 한 달 동안 연락 한 번 주고 받지 않다가 다음 달 모일 날짜가 되어서야 우리 어디서 만나나요? 라고 누군가 먼저 말을 꺼내고 또 만나 실컷 얘기만 하다 또 헤어지는 것이다. 이 모임에 반해버렸다. 너무 쿨하다.
아무튼 이 분과 만나서도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글쓰기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쓰는 글들은 대부분 딱딱하고 정보 전달에 지나지 않는 드라이 한 글이지만 아무튼 나도 일기라는 걸 쓰기 때문에 공감하는 바가 컸다.
드라마가 성공하고 망하고는 극 중 주인공이 결정한다고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자세히는 뭔 말이냐면, 주인공은 돈을 훔치든 사람을 죽이든 뭔 일이든 해도 관계없지만 시청자의 공감을 잃는 순간 끝이라는 거다. 따라서 우리가 보편적으로 '얄밉다고' 여기는 일들, 주는 거 없이 싫은 행동들, 바로 그런 것들만 안 하면 주인공은 시청자의 마음에 들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작가들이 주인공을 그릴 때 보통 자신을 투영해 묘사한다는 것이었다. 아닌 척 하지만 쓰고 보면 결국엔 다 자기 얘기라는 것. 그게 쓰기 가장 쉽고 또 가장 잘 아는 이야기니까. 이야기들을 지배하는 보편적인 정서가 있는데 그걸 발견하는 게 글쓰기가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란 얘기도 했다.
그 얘길 들으니 보잘것 없지만 어쨌든 글이기는 한 내 일기를 생각하게 됐다. 나는 주로 나에 대해서 쓰는데 내가 과연 일기를 솔직하게 쓰는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아니다. 나는 일기를 통해 나를 바라보는 보다 객관적인 혹은 객관적이었으면 하는 다른 시선을 창조해낼 뿐 영원히 그 객관에는 도달할 수 없으리라는 걸 안다. 그래도 나는 쓴다. 왜냐면 글쓰기는 내게 일종의 해방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나를 하루종일 짓누르던 일도 이 공백에 퍼뜨려놓고 나면 별 게 아닌 일이 되니까. 그 객관을 가장한 객관으로 나에게서 거리를 좀 두면 나는 조금 더 편안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순간들의 합이 내 보편적인 정서를 구성하는 것이겠다. 내가 일기장을 찾는 순간들, 그럼에도 내가 솔직할 수 없는 순간들, 그래도 써내려가기로 마음 먹는 순간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내가 나로부터 나를 변호하게 되는 순간들에 내 보편의 정서가 녹아있다.
일기는 작년 여름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 공백이 필요했고 공백을 채울 말들을 찾은 뒤에 나는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 글이 사람에게 해주는 일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