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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Mar 06. 2022

<노인과 바다>  소년을 기다리며


제주 여행 중에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었다. 맑게 개었다가도 비와 눈이 흩날리고, 따뜻한 듯하다가도 찬바람이 몰아치는 2월의 바다에 와 보니, 노인과 소년의 이야기가 읽고 싶었다.



<노인과 바다>는 이미 서너 번은 읽은 책이다.


어려서 읽었을 때는 힘들게 잡은 고기를 상어에게 뺏긴 노인이 안타깝다는 생각뿐이었다. 워낙 유명한 작가의 노벨상 수상작품이라 뭐가 대단한지도 모른 채, 가짜 감동을 짜냈던 것도 같다. 그 후에도 몇 번 더 책을 읽었다.


내겐 읽을 때마다 다른 감정이 들게 하는 책이고, 나이가 들어 읽는 편이 훨씬 깊은 울림을 주는 글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헤밍웨이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무기여 잘 있어라> 등의 작품을 발표한 최고의 작가였다. 그런 그가 쿠바로 이주를 한 후 꽤 오랫동안 작품을 발표하지 못했다. 스스로가 최고의 작품이라며 발표한 <강을 건너 숲속으로>는 평단과 독자 모두에게 혹평을 받았고, 이제 헤밍웨이의 시대는 갔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 후, 발표한 작품이 바로 <노인과 바다>였다.



이 작품은 발표 당시 엄청난 인기와 찬사를 동시에 받으며, 다시 한번 헤밍웨이를 대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미국 작가로는 다섯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헤밍웨이는 아프리카 여행에서 겪은 비행기 사고와 질병,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다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전쟁과 여행, 여자와 알코올 등 작가로서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헤밍웨이.

그의 써 내려간 소설들이 그의 진짜 삶은 아니었을지.

쿠바에서 헤밍웨이는 실제 낚시에 탐닉했다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 노인은 어쩌면 늙어가는 작가 자신의 분신은 아니었을까.






제주에서 다시 책을 펼쳤다.

바다 옆에서 사람을 읽고 싶었다.


이번엔 노인 곁의 소년이 마음을 끈다.


다섯 살에 노인의 배를 타고 처음 낚시를 배운 소년. 노인과 함께 고기를 잡다 부모의 요구로 어쩔 수 없이 다른 큰 배로 옮긴 소년. 84일 동안이나 고기를 잡지 못하는 불운의 상징이 된 노인의 변함없는 친구가 되어준 마음씨 고운 소년. 실종된 노인이 며칠 만에 돌아와 지친 몸으로 잠든 모습을 보며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먹을 것을 준비해주는 소년.


노인과 소년은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큰 존재로 자리 잡았다. 거대한 청새치를 쫓아 바다에 머물던 노인은 마치 주문처럼 끊임없이 '소년이 곁에 있었다면'이라고 혼잣말을 한다. 그 아이만 있었다면, 그 아이만...


사람과 사람 사이, 아내도 죽고 홀로 고기를 잡으며 늙어가는 외로운 노인과 배를 탈 때마다 고기를 낚는 운을 가진 소년 사이에는 과연 어떤 마음이 있었을까. 부모 자식처럼 어쩔 수 없는 관계가 아닌, 그저 서로를 돌보고 걱정하고 진심으로 위할 수 있는, 노인과 소년은 어쩌면 나이 따위는 초월한 진정한 친구가 아니었을까.

아무런 사심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소년의 그 마음이라면, 좌절하고 고통받은 노인의 아픔을 거뜬히 채워주고도 남지 않았을까.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 노인은 며칠 동안 홀로 거대한 청새치와 싸움을 한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부족하다. 늙은 자신을 지켜줄 이도, 이야기를 나눌 상대도 없지만, 그는 끝까지 낚싯줄만은 놓지 않는다.


노인 평생 처음 본 거대한 크기의 고기, 마을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모두를 놀라게 할 그의 고기, 그의 오랜 불운을 끝내줄 고기를 결국 잡아낸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피 냄새를 맡은 상어 떼가 끊임없이 고기를 공격한다. 살점이 뜯겨나가는 고기를 보면서 노인은 괴로워하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인간은 파멸당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라고.



나 역시, 앞이 보이지 않는 바다에서 홀로 사투를 벌이는 기분일 때가 있다. '이루고 싶은 꿈'이라는 청새치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청새치는 아직도 깊은 바닷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게다가, 내가 청새치를 잡았다고 해도, 몰려드는 그 많은 상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인생이, 삶이 그런 거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눈물 흘려줄 소년이 있다면,

나는 다시 일어나 바다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우선, 나는 여기 바닷가에서 소년을 기다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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