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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Aug 05. 2022

당신에게도 부끄러운 일이 있나요?


참회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ㅡ 만 이십 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ㅡ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부끄러운 과거와 마주하게 되는 날이 있습니다.

까맣게 잊고 지낸,

어쩌면 잊은 척 숨기며 살았던 기억이

불쑥 지금의 내 삶으로 끼어드는 날.

부끄러움으로 온 몸이 마비될 만큼

'참회'라는 단어를 떠올려 봅니다.



시인은 무엇이 그리 부끄러웠을까요.

고작 만 이십 사년을 살았을 뿐인 시인에게

참회를 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영화 '동주'를 인상깊게 봤습니다.

워낙 윤동주 시인의 시를 좋아하기에,

그의 모습에서

나와 겹쳐지는 어떤 면을 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그리 미안하고, 부끄럽고,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죄책감이라는 감정은 인간을 망치는 중요한 감정 중 하나입니다.


나라를 지키지 못한 것이 시인의 잘못이었을까요,

가난했던 집안이 시인의 잘못이었을까요,

부끄럽기만 하던 자신의 시는 시인의 잘못이었을까요.



서늘한 바람이 부는 여름 한 가운데

나 역시 부끄러움과 죄책감에

나의 거울을 발바닥과 손바닥으로 닦아 봅니다.


나의 거울에도 외로운 누군가의 뒷모습이 떠오릅니다.



참회는 결국 혼자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깊이 깊이 자신 안으로 들어서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마침내 외로울 수밖에 없는,

그 기록이 참회록일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참회를 하고

마음껏 부끄러워한 후

어떻게 나아갈 것이냐가 아닐까요.


충분히 반성하고 아파했다면

더는 과거에 얽메이지 말고

한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비록 그 발걸음이 칠흙처럼 어둡고 무거울지라도.

결국, 그 한 걸음이 자신을 살리는

 시작이 될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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