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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lla Sep 07. 2022

행복해질 결심


지난 6월부터 안 좋은 일들이 그림자 사나이처럼 내 뒤를 따라붙었다. 2번의 장례식에 다녀왔고, 오래 계획했던 일은 예상치 못하게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허무하고 분노가 차올랐다. 덕분에 가족 모두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래서, 어서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다. 왠지 9월이 오면, 모든 게 좋아질 것 같았는데, 그것 또한 근거 없는 낙관이었다. 




9월 1일

그동안 잘 피해 다녔다고 생각했는데, 둘째가 덜컥 코로나에 걸렸다. 물론 그럴만했으니 걸린 것도 같다. 아이는 잘 먹지 않아 마르고 키도 작다. 예민해서 잠도 푹 자지 못한다. 그래도 잔병치레 없이 잘 커주는 게 고마워 먹는 걸로는 잔소리를 하지 않았는데, 역시나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확진을 받고 아이를 안방에 격리하고 아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잘 먹어야 빨리 낫는다는 잔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밤에 아이 옆에서 잠들면서 중얼거렸다.

'나도 곧 걸리겠군, 아이가 낫고 나서 걸려야 할 텐데, 그나저나 9월도 시작부터 좋지가 않네...' 



9월 2일

온 가족이 집에서 격리를 하면서 아픈 아이 밥을 차리고, 아직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남편과 첫째를 감시하느라 피곤했다. 거기에 내 몸도 조심해야 했다. 나는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이라, 그동안 열심히 코로나를 피해 다닌 터라 조금 더 긴장이 되었다. 비타민과 건강식품들을 가리지 않고 들이부었다. 

남편이 목이 칼칼하다고 해서 병원에 갔는데, 음성이었지만 혹시 몰라 약을 처방해 왔다. 아직 바이러스가 검출이 안 된 것일 뿐 남편도 걸린 게 확실해 보였다. 첫째는 엄마와 자기만 살아남았다며, 좋아한다. 온 가족이 불안 때문인지 식욕이 폭발했다.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다는 아이들과 나 역시 끊임없이 먹고 또 먹었다. 



9월 3일

아침에 일어나 자가검진을 한 남편이 결국 두 줄을 보았다. 둘째가 격리 중인 방으로 남편을 들여보내고, 첫째와 대책회의를 했다. 두 확진자와 아직은 괜찮은 아이를 돌보는 사이 몸은 점점 더 피곤해지고, 혓바늘이 돋아 입안이 화끈거렸다. 환절기라 기온차가 커져 걱정이었다. 잘 버텨보자.



9월 4일

격리 중인 남편과 둘째를 위해 이것저것 음식을 해서 안방으로 나르고, 첫째와 나는 식탁에서 밥을 먹는 생활이 계속됐다. 소독 스프레이도 뿌리고 항균 티슈로 여기저기 닦아도 같은 집에 사는 이상 우리도 언제까지 안 걸릴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온 집의 창문을 열고 환기를 계속했다. 하지만 반려견 치노가 안방과 온 집을 해 집고 다녀 바이러스가 어디든 퍼지고 있을 거였다. 둘째는 자가진단 결과 다행히 음성이 나왔다. 아이라 그런지 빠르게 회복하는 것 같다.



9월 5일

태풍 힌남노 소식으로 뉴스가 시끄러웠다. 전쟁이라도 난 듯 요란했다. 그런데도 뉴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공포는 또 다른 공포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애써 공포영화를 찾아보는 사람의 심리에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숨어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만은 공포와 불안이 제어되기 때문이다.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길, 밤에 잠들며 걱정이 앞섰다. 유독 날씨에 민감한 나는 집안의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태풍에도 맞서야 했다.

9월 되어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온갖 걱정으로 잠을 설쳤다.



9월 6일

'드디어 걸린 건가, 그래 오래 버텼어.'

아침에 눈 뜨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이 아팠다. 다행히 목은 괜찮았지만 몸살이 분명했다. 늘 36도 대를 유지하던 체온이 37도를 넘겼다. 같이 자던 첫째에게 말했다. 

'엄마도 드디어 걸렸나 봐, 너 혼자 어쩌지?' 

걱정이 돼 바로 자가진단을 했지만, 아직은 음성이었다. 다시 비타민 등등을 최대치로 들이붓고 침대에 누웠다. 오늘 하루는 푹 쉬기로 했다. 오늘을 버텨야 했다. 밥도 최대한 간단히 차리고 낮잠을 자고 종일 쉬었더니 저녁엔 몸이 많이 편해졌다. 아이들과 영화 <버즈라이트이어>를 봤다. 스토리를 전혀 몰랐던 터라 장난감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예상외였다. <싱2>를 보고 기대하지 못한 치유를 느꼈듯이 이 영화도 내게 뭔가를 말해 주고 있었다. 


과거에 잘못한 일에 매어 자신을 너무 괴롭히지 말라고,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당연하게 흘려 넘기지 말라고.



아픈 데는 마음이 한몫을, 아니 큰 몫을 차지한다. 4년 전 큰 병을 얻었다. 오래된 마음의 병이 드디어 터져 나온 것 같았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더 최악이었다. 큰 수술을 앞두고 가장 의지할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했고, 아직 어린아이 둘을 맡길 사람이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내 병을 내가 가장 잘 알아야 했다. 그 분야의 가장 유명하다는 선생님들을 찾아갔고, 미친 듯이 책을 읽었다. 살아남아야 했다. 아이들을 엄마 없는 아이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렇게 살아남았고, 아이들은 햇살의 힘으로 잘 자라나주고 있다.







9월의 시작부터 만만치 않다. 이런 9월이라면 솔직히 사양하고 싶다. 


지난 4년과 앞으로를 생각해본다. 

아직 우리 집의 코로나는 끝나지 않았고, 내 병도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살아남을 법을 치열하게 고민한다. 예민하고 여린 나의 딸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나와 같은 삶을 살지 않도록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비록 계획했던 미래는 어긋났지만, 우리가 함께 하는 한, 그곳이 어디이든,

우리는 반드시 행복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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