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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일상처럼

by 우사기

시가현에서 휴식을 취한 것까지 글을 쓴 것 같은데, 시간이 꽤 흐른 것 같다. (다시 그 때로 시간을 돌려서) 시가현에서 교토로 가 일주일 정도 시간을 보내며 교토에 마음을 굳혔고 새로운 쉐어하우스를 알아보고 계약을 했다. 교토로의 이주를 결정했지만, 새로운 쉐어하우스 입주까지는 한 달 남짓한 시간이 남기도 했고 도쿄에서의 일도 마무리를 해야 해서 일단 도쿄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교토에서 도쿄로 향하는 신칸센에 올라타며, 그때만 해도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룸쉐어로 들어가 조금 더 견뎌 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정리를 한 후 그 집을 나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결국 그 집을 다시 뛰쳐나왔다. 마지막 전철을 타고 난생처음으로 인터넷카페에서 밤을 꼬박 새웠고 며칠간의 피로감 가득한 실랑이를 끝으로 룸쉐어에 완전한 마침표를 찍었다. 처음은 새벽 4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되었던 것 같다. 혼잣말을 하는 것도 같고, 구구단을 외우는 것 같은 일정한 리듬감에 맞춰 기도를 하는 것도 같고, 매일처럼 새벽 4시면 통화를 하는 것 같고, 어떤 날은 기분 좋게, 어떤 날은 싸우는 것도 같고, 그 싸움의 말들은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소리를 지르고 과격해지고, 범죄 영화의 대사 같은 말들, 급기야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을 내뱉고, 종교적인 이야기를 하고, 분명 통화를 하는 것 같았는데 갑작스레 상대가 바뀐 것 같다가 그 모든 것들이 혼잣말인 것도 같고.

처음 그 집을 뛰쳐나온 건 너무 무서워서였다. 뛰쳐나올 땐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이었지만, 그대로 대책 없이 뒷정리를 하지 않은 채로 호텔 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 없어 다시 돌아가 조금 더 견디며 차근차근 준비해서 나올 생각이었는데,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내게 돌아온 날 밤 자려고 불을 끄니 그때부터 옆방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기도를 하는 것도 같은데 그 내용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은 이야기라 나는 무섭고 소름이 돋아 도저히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그대로 경찰서로 뛰어가 상황을 대충 이야기하고 짐을 챙겨 나올 때까지만 집 앞에 있어달라고 부탁했다.

집을 대충 챙겨 나오며 열쇠를 가지고 나오는 바람에 마지막 정리를 하기까지 꽤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 집에서 나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준 것은 아니지만 언제 위협적으로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얼마나 공포스럽던지, 끝없이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들이 얼마나 무섭던지, 며칠 더 견뎌 볼 생각을 했다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몇 끼나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는 식사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밤 인터넷카페에서 밤을 새우며 얼마나 많이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나에게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몰아치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협박성 톡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의 호텔 난민 생활이 시작되었다. 중요한 일을 남겨둔 상태라 곧바로 도쿄를 떠날 수도 없었지만, 불안한 마음이 도쿄에서 조금 멀어지고 싶어 요코하마로 향했는데 다행히 장소를 바꾸니 그제야 조금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요코하마는 나의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과는 무관하게 아름답고 평온했다.

마지막 이틀은 도쿄에서 남은 일들을 마무리했다.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쳤지만 그래도 도쿄가 싫어진 것은 아니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너무 성급하게 집을 구한 게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좀 더 주의 깊게 조금스러웠어야 했나 보다. 모르는 사람과 둘만 산다는 건 생각해 보면 무서운 일이다. 물론 상상도 못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더 나쁜 일 없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

결국 나는 교토로 가기 전에 한국에 들러 몸과 마음을 좀 쉬어가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그제야 온몸에 긴장이 풀렸는지 피로가 한 번에 몰려와 이불 속에서 나올 수가 없다. 따뜻하고 맛있는 집밥을 먹으며 얼마나 나의 공간이 평온한지 다시 한번 느낀다. 그래도 이렇게 너덜너덜해져서 한국으로 돌아올 수는 없잖아. 도쿄에서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그렇다고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올 수는 없는 거다. 지금은 잠시 쉬어가는 거다. 도쿄 생활을 시작하며 소소한 로맨스를 가미한 새 출발의 글을 쓰고 싶었는데 본의 아니게 미스터리가 되어버렸다. 아무튼, 조금 쉬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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