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선 안 될 것들이 부딪칠 때

『7년의 밤』을 읽고

by SH

중학교 과학 시간이었다.
비이커 속에는 소량의 물이 담겨 있었고, 그 안에는 햇빛을 받아 눈이 부실 만큼 반짝이는 손톱만 한 금속 조각이 있었다.

“자, 이제 책상 위의 나트륨을 비이커 안에 넣어보세요.”
순간,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 금속은 물 위를 내달렸다.
소리는 작았지만 굉음이라 부를 만큼 비이커 벽을 사방으로 때렸다.

선생님은 덧붙였다.
“이건 손톱만 해서 이 정도입니다. 더 큰 질량이면 수영장 하나가 날아가죠.”

그때 나는 알았다.
각자 따로 있을 땐 아무 일도 없지만, 만나선 안 될 것들이 부딪치면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7년의 밤』 속 사건들이 바로 그런 충돌이었다.



폭발의 순간, 그리고 ‘만약에’

소설에서 ‘수영장을 날려버릴 폭발’ 같은 순간이 올 때마다, 나는 ‘만약에’를 떠올렸다.

만약에 영주와 현수가 예정대로 소개팅에서 만났다면,
만약에 하영이가 세령이를 데리고 가출했다면,
아니, 그보다도 먼저, 그들의 부모가 만나지 않았다면?

하지만 생각은 곧 멈췄다.
‘만약에’는 유혹적이지만, 결국 일어난 일은 이미 일어난 것이다.
정유정은 사건을 다른 시점과 시간대에서 반복해 보여주며, 우리가 놓쳤던 인간의 얼굴을 드러낸다.



한 사건, 여러 얼굴

모든 시작은 어린 여자아이를 차로 치어 죽이고, 시체를 세령호에 유기한 최현수의 시동에서 비롯된다.
12살이던 아들 서원은 19살이 되어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낙인을 품고 어둠 속을 헤맨다.
그는 아버지의 사형 집행관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연다.

현수는 기사 속 살인자였다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술을 좋아하는 친근한 형이었고, 유망한 고교 야구선수였다.
서원 역시 세상의 돌팔매를 맞는 청년에서, 어느 순간 웃음 많고 영리한 초등학생으로 돌아간다.

정유정은 이렇게 한 사건을 다양한 인물의 눈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풀어낸다.
독자는 연민, 공포, 슬픔 사이를 오가며, 한 인간을 한 장면으로만 규정하는 위험을 체감하게 된다.



세령호, 인간의 심연

세령호는 단순한 무대가 아니다.
물은 모든 것을 감춘다 — 시체를, 비밀을, 죄책감을.

호수 위의 고요는 결코 평화가 아니었다.
깊은 곳에는 서로 다른 죄와 분노, 슬픔이 뒤엉켜 잠들어 있었고, 언젠가는 표면 위로 떠오른다.

나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호수 속으로 발을 담그는 기분이었다.
차갑고 무겁지만,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나의 7년

출장 온 숙소에서, 창밖 어둠 속 바다를 보며 이 책을 읽었다.
도시의 불빛이 닿지 않는 물결은 세령호와 겹쳐졌다.

그 풍경은 이야기의 스산함을 더했고, 나는 책 속으로 더 깊이 끌려갔다.

김영하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숙소와 한 권의 책 덕분에 나는 구성이 알찬 감정의 테마파크를 다녀왔다.
다만 그 놀이기구들은 즐거움이 아니라, 인간과 사건이 얽히며 만들어낸 비극의 파장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해주었다.



그림자를 들여다본 후

『7년의 밤』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인간의 어둠과 그 여파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기록이다.
이 책은 묻는다.
“당신은 물속의 그림자를 보고도, 발을 담글 용기가 있는가?”

책장을 덮으며 나는 느꼈다.
만나선 안 될 것들이 부딪치면서 만든 파문은, 7년이든 평생이든,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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