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주에는 木이 없다. 분출하는 기운이 없는 것이고, 친근하고 살갑게 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매우 건조하고 차가운 기운의 사주다. 어린 시절에도 친구와 손잡는 일이 못내 어색했고, 누군가 달려와 내 팔짱이라도 끼면 어찌할 바를 몰라하곤 했다. 내 사주를 물으면 결혼하기 힘들 거란 이야기가 툭하고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木의 기운이 왕성한 계절에 남편을 만났다. 손 잡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심지어 10년에 한 번 찾아오는 갑목(甲)의 해에 결혼을 했다. 세 아이 모두 木의 기운이 왕성한 때에 태어났다. 사주 원국이 한 인간의 성격과 심리의 틀을 크게 규정하지만, 운의 흐름은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늦은 시간까지 할 일이 많은 올빼미형 아내 때문에 우리 남편은 안방을 빼앗겨버렸다. 아침형인 남편은 아들방에서 아들과 함께 일찍 잠자리에 든다. 언젠가부터 안방은 내 독차지가 되었다. 우리 집에서 가장 정리가 안 되는 안방에는 책상이 있다. 온갖 책과 공책들이 너저분하게 쌓여있다. 이런 환경에서 뭔 공부가 될까 싶기는 하지만 뭐가 어디에 있는지 나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나는 이 방에서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늦은 밤, 이 방은 에너지로 충만하다. 다만, 남편에게는 매우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사주팔자 여덟 개의 글자들은 각자의 방 안에 놓여있다. 방 안에서 글자들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사주에서 글자가 놓인 방은 궁(宮)이라 표현하며, 태어난 연월일시의 60갑자를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읽어 나간다. 년주의 천간을 년간 지지를 년지라 부른다. 월주의 천간은 월간 지지는 월지이다. 일주의 천간은 일간이며 지지는 일지이다. 시주의 천간은 시간이고 지지는 시지이다. 모든 방 중 일간에 위치한 방에 쓰이는 글자가 '나'를 의미한다. 따라서 일간을 중심으로 사주팔자를 해석해 나가는 것이다. 팔자의 글자가 위치한 궁(宮)은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년지, 월지, 일지, 시지의 의미가 모두 다르다.
천간 10개 글자와 지지 12개 글자 그리고 60갑자는 인간이 만들어 낸 과학적인 부호체계이다. 이러한 간지는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을까? 중국 최초의 역사시대는 기원전 1600년 경에 있었던 상(은)나라에서 시작한다. 은허에서 갑골문자가 발견되면서 전설로만 존재하던 상나라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놀라운 것은 간지를 사용하여 날짜를 표기한 것이 갑골문자에서 발견된 것이다.
상(은)나라 이전의 시기는 역사적 발견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전설 시대이고 신화시대이다. 「여씨춘추」, 「월령장구」 등의 책은 (황제 때에) 대요가 '甲子'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대요가 오행의 실정을 살펴, 북두칠성 자루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 점을 쳤다는 내용이 있다. 이것으로 십간을 만들어 날에 이름을 붙이고, 십이지지를 만들어 달에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이다. 황제 때라 함은 중국의 신화 시대로 상(은)나라 즉 역사 시대 이전부터 간지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역사 시대 이전부터 간지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마치 60갑자가 신의 선물인 것과 같이 여겨지게 한다. 하지만 60갑자는 인간이라는 뛰어난 관찰자들이 끊임없이 연구하고 수정해온 결과물인 것이다.
옛사람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매해 반복되는 경험에서 '년'의 개념을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일 년 전의 일과 이년 전의 일에 대해 분리하여 설명하고 싶어 졌을 것이고, 내년과 후 내년에 대해 다른 표현 방법이 필요해졌을 것이다. '년'을 표기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목성'에 주목하게 된다. 목성은 약 12년에 한 번씩 제 자리로 돌아온다. 목성의 위치를 간지로 나타내어 '년'을 표현하게 된 것이다. 목성이 다른 행성들과 달리 반시계 방향으로 돌기 때문에 가상의 별을 상정하고 '년'을 표현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목성은 11.9년 만에 공전하기 때문에 오차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목성 운행 주기의 오차까지 수정하여 바로바로 사용 가능하게 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60갑자 '간지기년법'이다. 년주의 간지는 목성의 공전과 관련 있는 것이다.
월지는 태어난 달을 의미한다. 음력 1월에 태어났다면 인(寅)이라는 글자가 월지에 적히는 것이다. 월(月)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공전 주기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월주는 지구의 공전과 관련이 있다. 일(日)은 달의 공전 주기와 관련이 있다. 달은 한 달(약 27.3일)에 한 번 지구를 공전하며 동시에 자전한다. 달의 공전 주기와 자전주기가 일치하기 때문에 우리는 달의 한쪽 면만 볼 수 있는 것이다. 일(日)은 한 달 중 하루를 차지한다. 따라서 일주는 달의 공전과 관련이 있다. 시지는 내가 태어난 시간을 의미한다. 오전 11시 30분에서 오후 1시 30분 사이에 태어났다면 시지에 들어갈 글자는 오(午)인 것이다. 시간은 지구의 자전으로 달라진다. 따라서 시주는 지구의 자전과 관련이 있다.
연월일시의 간지는 허무맹랑하게 정해진 것이 아니다.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사주는 태양과 목성, 지구와 달이 정확히 그 지점에 놓인 '때'를 말한다. 그 '때', 그 시간과 공간에 주어진 온 우주의 에너지로 한 사람이 태어난다. 인간의 관점에서 놀라운 일이고, 우주의 관점에서 당연한 일이 한 인간의 탄생인 것이다.
사주의 각 궁은 인간의 삶에 적용하여 해석하는 또다른 의미가 있다. 목성의 공전과 관련 있는 년주는 까마득히 먼 에너지이다. 조상궁이라 일컬으며 국가와 같이 당장 체감되지 않지만 중요하게 작용하는 궁이다. 월주는 부모궁이라 일컫는다. 특히 월지는 내가 속한 사회와 환경을 의미하며 항상 체감하며 살아가기에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궁이다. 일간은 '나'를 의미하고 일지는 나와 함께하는 배우자를 의미하는 궁이다. 일간이 놓여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신체궁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시주는 자녀궁이라 일간이 꿈꾸는 바나 미래의 희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연월일시를 순서대로 과거에서 미래로 보는 해석도 있다. 년은 유년기, 월은 청년기, 일은 장년기, 시는 노년기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사주팔자를 타고 태어난다. 오행이 골고루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특정 오행으로 치우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주는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다. 어느 누구도 기둥을 하나 더 가지거나 글자를 하나 더 가져갈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새로운 글자들이 계속 내게 다가온다. 그것을 우리는 운(運)이라 한다.
대운은 10년마다 바뀌는 운으로 사람마다 다르다. 세운(년운), 월운, 일운은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모두 같이 오는 운이다. 그 살가운 木도 하나 없이 金과 水라는 오행으로 치우쳐 태어난 사람에게도 운에서 木이 올 때가 있다. 그때 좋은 사람과 인연하여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다. 火가 천간 지지 불덩어리로 대운에서 오게 되니 에너지를 풀가동 하여 사는 사람도 있다. 조용히 아래로 아래로만 금생수하는 사람에게 火대운은 水를 들끓게 하고, 金을 가만있게 두지 않는다. 블로그, 유튜브, 브런치... 안 하던 짓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