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이라는 것은 인간이 범주화한 틀에 불과하다. 천간 10개 글자, 지지 12개 글자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일 뿐이다. 하루를 24시간으로 규정한 것도 공전 주기를 1년이라 칭한 것 역시, 분류하고 범주화하여 개념을 만들면서 진화해 온 인간 사고의 산물일 뿐이다.
1초는 세슘 원자의 진동수의 빛이 9,192,631,770번 진동하는 데 걸린 시간으로 정의한다. 빛은 1초에 2억 9,979만 2,458미터 이동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인간은 거리를 정의한다. 우주는 본래의 모습으로 오차 없이 움직일 뿐이다. 다만, 호기심 가득한 인간이 수학이라는 도구를 바탕으로 우주를 측정하고 오차 없음에 놀라워할 뿐이다. 어쩌면 놀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이 우주를 관찰하기 이전부터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었다. 애당초 우주는 완벽하기 때문이다.
천간 10개 글자는 하늘의 기운을 나타낸다. 하늘의 기운이 땅의 기운과 일치한다면, 지구는 지금과 같이 다채롭지 않을 것이고 우리의 마음이 번뇌에 놓이는 일도 없을 것 같다. 지구는 23.5도 기울어져 있으며 적도의 반지름이 극의 반지름보다 약간 큰 타원형을 하고 있다. 24시간에 한 번 자전을 하고, 1년을 주기로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지구는 자전을 하면서 태양을 마주하고 등져가는 일을 하루 동안 반복한다. 동시에 공전으로 인하여 태양의 고도는 높아졌다 낮아졌다를 반복한다. 북반구의 12월이 겨울인 반면 남반구의 12월은 여름이 된다. 이런 지구의 특징에 의해 인간은 하늘과 다른 땅의 기운을 감지하게 되었다. 12지지의 개념이 만들어진 것이다.
12지지의 에너지는 1월부터 12월 각 계절의 특성과 유사하다. 그런 면에서 사주명리를 통한 인간에 대한 해석은 4계절이 뚜렷한 북반구 중위도 지역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예를 들면 子월은 양력 12월을 의미한다. 명리에서 子는 겨울이고 응축이다. 대음양 상, 음(音)의 영역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양력 12월 남반구는 여름이다. 남반구 12월 여름에 태어난 사람에게 子월의 특성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북반구와 남반구 위도의 특성을 고려한 글로벌 만세력을 만들어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본다.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철학자 탈레스는 말했다. 子라는 水의 기운에서 지지의 기운이 시작된다. 따라서 우리는 지지를 외울 때,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순으로 외워왔다. 하지만 명리를 공부하는 동안은 끊임없이 4계절을 구분해야 하므로 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자축의 순으로 지지에 대해 학습하면 좋겠다. 대음양 상 木火는 양의 영역에 있으며 계절 상 각각 봄과 여름을 의미한다. 대음양 상 金水는 음의 영역에 있으며 계절 상 각각 가을과 겨울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 묘진(寅卯辰)월이 봄이고, 사오미(巳午未)월이 여름, 신유술(申酉戌)월이 가을, 해자축(亥子丑)월이 겨울이다.
지지의 글자들은 12개월의 월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시간을 상징하기도 한다. 시계가 없던 시절을 살던 사람들은 2시간 단위로 시간을 이야기하였으며 각 지지들이 그 시간을 나타내었다. 보통 寅시는 새벽 3시에서 5시를 의미한다. 그런데 위의 표는 寅시가 새벽 3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같은 동경 135도를 표준 경선으로 사용한다. 표준 경선이란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 (경도 0도)를 기준으로 표시한 경선 중 시간을 측정하는 경선을 의미한다. 동경 135도는 한반도를 지나지 않고 일본을 지나는 경선이다. 표준 경선을 같이 사용하는 까닭으로 우리나라와 일본은 시간이 같다.
우리나라의 가장 동쪽은 독도로 동경 132도이다. 가장 서쪽은 마안도로 동경 124도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중앙 경선은 127.5도가 된다. 태양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뜬다. 따라서 태양이 서 있는 사람의 머리 위로 정확하게 남중하는 시점은 한반도의 가로 폭만큼이나 다양한 것이다.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태양은 독도에서 가장 먼저 남중할 것이며 마안도에서 가장 나중에 남중할 것이다. 다시 말해 태양이 중앙 경선인 127.5도에서 정확하게 남중한 시점에 독도에 있는 사람은 태양을 서쪽으로 떠나보낸 상태이고, 마안도에 있는 사람은 태양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는 상태인 것이다.
애석하게도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의 중앙을 지나는 중앙 경선을 기준으로 시간을 측정하지 않는다. 일본에 위치한 표준 경선인 동경 135도 위에 태양이 남중할 때 시계는 정오(正午) 즉 12시를 가리킨다. 지구는 24시간 동안 360도를 회전한다. 따라서 1시간에 15도씩 움직인다. 우리나라 중앙 경선과 일본에 위치한 표준 경선 간에는 7.5도의 차이가 난다. 7.5도는 30분 차이를 의미한다. 일본의 시계와 우리나라의 시계가 12시를 가리키더라도 태양이 남중하는 시간은 같을 수 없다. 즉, 우리나라 중앙 경선에 서 있는 사람의 머리 위로 정확하게 태양이 남중하는 시간은 12시 30분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지의 시간들을 30분씩 뒤로 미루어 해석하는 것이다.
지지의 각 글자들은 상징하는 동물이 있으며, 공간을 나타내기도 한다. 木은 동쪽, 火는 남쪽, 金은 서쪽, 水는 북쪽을 설명하기도 한다. 복잡할 것 없이, 지지를 이해할 때는 해당 월과 시간을 가만히 떠올려 보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술(戌)월은 음력 9월 양력으로는 10월이다. 곡식을 모두 거두어드린 가을의 끝자락이다. 풍성할 것이고 쓸쓸할 것이다. 지킬 것이 많을 것 같은 고집과 잃을 것이 없을 것 같은 허전함이 느껴진다. 술(戌)시는 오후 7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를 의미한다. 하루의 일과를 모두 정리하고 마무리하며 내일을 준비하는 시간인 것이다.
태초부터 인간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계절과 하루가 반복됨이 놀라웠을 것이다. 수(數)를 이용해 그 반복을 계산하고 정의 내렸을 것이다. 농경사회로 접어들면서 그 계산과 정의는 많은 사람들의 안위를 좌우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그 계산과 정의를 독점하려 하였을 것이며, 수많은 현자들이 계산을 더욱 정확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해를 거듭하며 지식은 축적되었을 것이고 수(數)는 정교해졌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에 대한 이해를 분류하고 범주화하였으며, 개념을 정립하고 정의 내리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천간 10개 글자와 지지 12개 글자. 그리고 그 조합인 60갑자는 하늘과 땅에 대한 오랜 관찰과 고민이 깊이 있게 녹아든 결과물이다. 겉으로 보기에 매우 투박해 보이고 무뚝뚝해 보이는 이 결과물은 날카로운 관찰자들의 예리한 분석으로 인간 심리에 적용됨을 알게 되었다. 인간 역시 우주의 움직임으로 순환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인간이 우주를 관찰하기 이전부터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애당초 우주는 완벽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우리의 삶도 희로애락도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것일 뿐. 애당초 인간은 있는 그대로 완벽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