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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sh Mar 13. 2021

이해와 오해 사이에서

3월 2주의 문장수집

#01

너나 나나 어차피 혼자인 것을. 세상은 짐작과 오해만으로 이루어져 있단다.


- 최유수 <무엇인지 무엇이었는지 무엇일 수 있는지> 中


 '이해한다'는 말을 많이 사용했던 시기가 있었다. 너가 말한 그 고민, 나도 공감해. 이해해. 나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거든. 그러니까 너는 지금 울적하거나 혹은 어딘가 꽉 막힌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거야. 왜냐면 나도 그랬으니까. 


 그 때는 몰랐다. 이해와 오해라는 두 단어는 서로 대립하면서도 절반씩이나 같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순간, 그 곁에 따라오는 문장들은 사실은 이해가 아닌 오해로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이해라는 것은 내 쪽에서 건네는 단어가 아니다. 상대방이 자신의 처지를 '이해받았다'고 느낄 때 비로소 그것이 진정한 이해일 것이다. 이해는 건네는 게 아니라 받는 행위다. 우리는 대부분 이 사실을 알지 못하니까, 세상은 오해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저 문장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는 여기에 덧붙여서 인생이란 것은 타인과의 오해를 좁혀나가는 과정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02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술은 제 2의 따옴표다. 평소에 따옴표 안에 차마 넣지 못한 말들을 넣을 수 있는 따옴표. 누군가에게는 술로만 열리는 마음과 말들이 따로 있다.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뾰족한 연필심은 뚝 부러져 나가거나 깨어지지만, 뭉툭한 연필심은 끄떡없듯이, 같이 뭉툭해졌을 때에서야 허심탄회하게 나올 수 있는 말들이 있다.


- 김혼비 <아무튼, 술> 中


 술이 좋은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내 친구는 쓴맛만 가득한 소주는 싫어하는 대신 과즙 향미가 팡팡 터지는 수제맥주를 좋아한다. 어떤 선배는 술 자체보다는 술자리 특유의 업된 분위기를 즐긴다. 음악을 좋아하는 또 다른 친구는 이태원의 구석진 칵테일 바를 사랑한다. 칵테일을 한 모금씩 천천히 마시다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눈이 번쩍 뜨이는, 그 기분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술을 마시면서 나누는 대화를 좋아한다. 거기에는 묘한 이완감이 있다. 꽉 묶어두었던 마음 속 이야기 보따리들을 하나 둘 천천히 풀게 되는, 그런 과정이 좋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 장면이 있다. 술에 취해 오글거리는 말들을 한껏 토해냈던 한 친구. 앞날을 걱정하며 눈물을 흘렸던 또 다른 친구. 너와 나 사이가 정말로 친구가 맞구나, 하는 것을 때로는 술이 알아차리게 해 준다. 



#03

단 하나의 방법이 있을 뿐입니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십시오. 당신에게 글을 쓰라고 명령하는 근거를 찾아내십시오. 그것이 당신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뿌리를 펴고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中


 요즘 특히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그리고 클럽하우스 같은 SNS에 빠지다 보니 집중력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낮에는 취업 준비를 위한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열심히 SNS 속에서 헤엄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끝났고 결국 책 읽는 일은 계속 다음날로 미루기만 했다. 


 SNS는 사람들이 열심히 무언가를 외쳐대는 공간이기 때문에 SNS를 할 때는 결국 남의 말만 집중하게 되는 꼴이 된다. 어떤 사건이 커뮤니티 글에 올라왔을 때, 거기에 대해 내가 진지한 생각을 펼쳐보기도 전에 댓글로 남들의 의견을 보게 되니, 나는 어느새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릴케의 저 문장을 보면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기로 한다. SNS에 너무 중독되지 않기로! 가끔은 모든 전자기기를 꺼둔 채 아무 생각이나 펼쳐보기로!



#04

미래가 기대된다는 것만큼, 큰 축복이 없어. 내일이 기대가 되고 내년에는 난 어떻게 되어 있을까?

기대가 되는 삶을 사는 것 자체가 진짜 감사한 거야.


- pH-1, '비밀리에' 유튜브 영상 中


 만족스러운 삶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우연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삶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인생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아, 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나날들은 우연으로 가득 차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럴 때의 그 우연함 자체를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 한 여행자가 굽이진 골목에서 길을 잃었다. 그에게는 지도가 없다. 만약 그가 목적지만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는 낙담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내 마음을 추스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꽤 멋진 풍경이라고 그는 느낀다.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다. 그에게 어떤 풍경이 펼쳐질 지 그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즐겁다. 그는 우연을 사랑한다. 


 나도 역시 우연을 즐겨보기로 한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몰라서 불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보려고 한다.



#05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려면 대담성이 있어야 한다.


- 장 그르니에 <카뮈를 추억하며> 中


 짧은 문장인데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나에 대해 말하려면 대담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나는 때때로 과거로부터 도피하는 순간을 겪곤 했다. 에세이를 쓰면서 필연적으로 나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야만 했지만 누군가 이 글을 보면서 나를 떠올리면 어떡하지 하는 낮부끄러움과 불안감 때문에 내 글에서 솔직함은 계속해서 덜어지고 있었다.


 <명랑한 은둔자>를 읽으면서 이런 고민이 조금씩 해소되었던 것 같다. 저자인 캐럴라인 냅은 자신의 이 에세이에서 과거의 부끄러운 과거를 서슴없이 우리와 공유한다. 알콜 중독, 거식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일. 남들 앞에서 수치심 때문에 숨어버렸던 일. 그 밖에도 여러 문장들에 묻어난 그의 진솔한 감정들. 이 책을 읽으면서 타인에게 내 글이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더욱 솔직해져야만 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최근에 마주한 장 그르니에의 이 짧은 문장을 통해서 이전에 느꼈던 이러한 감정들을 다시 되새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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