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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sh Dec 27. 2020

스물여섯의 끝자락에서 붙잡은 문장들

12월 4주의 문장수집

#01

“자기만의 길을 가는 이는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다”라는 니체의 말은 ‘나는 너무 뒤처진 게 아닐까’ 비관하는 늦깎이 작가에게 자기만의 보폭으로 길을 가도록, 자기만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글을 쓰도록 힘을 실어 주었다. 니체의 문장이라는 연료를 넣은 덕분에 나의 글쓰기는 휘청일지언정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 은유, <쓰기의 말들>


 자기만의 길을 가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에겐 매력이 있다. 앞 뒤 재지 않는 당돌함, 불안과 설레임이 교차하는 목소리, 단단한 내면을 유추하게 하는 언어들.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 우연히 그런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되면 나는 칭찬 폭격기를 자처하게 된다. ‘너도 충분히 할 수 있어’, ‘너 자신을 그렇게 계속 믿다 보면 분명 좋은 일이 있을거야’. 어쩌면 내가 듣고 싶은 말들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문장들을 낮에 열심히 뱉고는 집에 돌아와서 공허한 기분이 들었던 적도 많았다. 정작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은 없는 걸까. 은유 작가가 인용한 니체의 말은 조금 다른 방식의 위로를 건네주었다. 자기만의 길을 가는 이는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다는 말. 이제부터는 격려와 응원을 남이 아닌 나에게 향하기로 한다. 내가 나의 지독한 팬이 되어보기로 한다.



#02

행복보다는 만족감을 추구해봐요.


- 다니엘, '대화의 희열' 中


 얼마 전 유튜브로 대화의 희열에 지코가 나온 편을 봤다. 지코의 성숙한 면에 한 번 놀라고, 아무 생각 없이 보다보니 40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보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은 ‘행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이었다. 행복에 대해서 각자의 정의를 말하던 와중, 다니엘의 말이 확 와닿았다. 행복은 뇌과학적으로 볼 때 일시적인 불안정 상태에 가깝고, 우리의 뇌는 행복이 지나간 후 안정 상태로 돌아가려고 한다는 패턴을 보인다고 한다. 결국, 다니엘은 삶에서 무언가를 추구해야 한다면 행복이 아닌 만족감이나 평온함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식으로 말했다. 내가 사랑하는 순간이 만약 시험 합격이나 취업의 순간이 아니라 주말에 집에서 향 좋은 차 한 잔과 함께 여유를 즐기는 것이라면, 그만큼 내 삶에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의미로 나는 받아들였다. 김중혁 작가는 이에 ‘행복에는 항상 불안이 묻어있다’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불안을 견디어 행복을 성취한다 해도, 그 후에 밀려오는 공허감은 또 다시 불안을 제 자리로 데리고 온다. 일상에서의 소중한 순간을 더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삶. 지금의 일상에서 더 많은 만족감을 품을 수 있어야 하겠다.



#03

익숙한 풍경 속에서 미세한 변화를 살필 줄 아는 섬세함이 필요하다. 그 뿐이다. 관찰은 그리 거창한 게 아니다.


- 최장순, <기획자의 습관>


 회사에 입사한 후 처음에는 실무적인 능력에 대한 고민이 컸다. 예를 들어 검색광고에서 입찰가는 어떻게 책정되는지, 광고 데이터를 보고 어떤 인사이트를 뽑아낼 수 있을지 등. 걱정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실무적인 부분은 금방 익숙해질 수 있었다. 요즘의 나의 고민은 다른 방향에 있다. 바로 기획력에 대한 고민. 실무는 공부하는 만큼 채워지는 분야라고 한다면, 기획력은 공부와는 다른 방식으로 노력해야 했다. 최장순 작가의 <기획자의 습관>을 읽으며 조금의 힌트를 얻는 듯 하다. 일상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사소한 것을 낯설게 보는 연습. 관찰을 통해 아주 미묘한 변화를 파악하고 기억해두기. 기획이 누군가의 머릿속에 ‘변화’를 만드는 행위라면, 지금 내 주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찾아내야 한다는 말. 어렵지만 실천해보자. 좋은 기획자, 실력있는 마케터가 되기 위해!



#04

그런 이들의 “걔는 이해가 안 가”라는 말을 벌거벗기면 결국 그 말은 ‘걔는 잘못됐어’ 또는 ‘걔는 이상한 애야’라는 의미더란 말이다.


-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평소 ‘이해가 안 간다’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누군가를 이해하지 않는다는 말은 결국엔 나에게는 이해할 수 있는 사람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 또한 정말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나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가족이나 연인과의 관계를 떠올려본다. 서로를 알면 알수록 생각의 다름을 느끼고 취향의 다름을 알아갔던 순간들.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서로를 이해한다고 단언하는 관계보다는, 다름 그 자체를 인정하는 관계에서 성숙함을 느낀다. 이해가 안 간다는 말보다는, ‘그 사람 다워’ 혹은 ‘그럴 수 있지’ 등의 표현을 사용하자는 다짐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3일 연속 라면을 먹어버린 나 자신도 그럴 수 있지! 하고 넘겨본다. 허허.)



#05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미루고 미루다 이제서야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을 읽었다. 책의 내용을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본다면, 위에 인용한 문장을 꼽고 싶다. TV 등 여러 대중 매체에 등장하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전쟁,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우리가 그들의 고통에 대해 ‘불쌍하다’고 말할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들과 선을 긋고 있었다. 그들의 불쌍함과 우리의 안락함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느끼기에, 그들에 대한 도덕적인 책임에서는 회피하게 된다. 우리는 불쌍한 그들에게 불쌍하다고 혼자 생각하는 행위만으로도 스스로 도덕적인 사람인 양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은 우리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세상에는 아직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고, 그들의 고통이 우리의 안락함을 대신하는 경우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행동하는 일. 스스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고통받는 타인을 위해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고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일. 나의 입장에서 타인의 고통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소액이지만 지금 후원하는 단체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 금액도 늘리고, 직접 봉사도 해 보고 싶다. 이렇게 작은 일부터 시작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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