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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sh Dec 05. 2021

옛날 음악 DNA, 아버지가 물려준

아버지도 저도 좋아하는 음악, 들어보시겠어요?

 요즘 나는 옛날 음악이 좋다. 우리나라 노래는 유재하, 김광석, 빛과 소금 같은 쓸쓸하면서도 담백한 그런 노래들을 자주 찾고, 외국 음악은 80년대 흑인 소울/펑크 음악 위주로 듣는다. 마케터가 아닌 DJ로서 음악을 들을 때는, 언더그라운드 하우스나 일렉트로, 테크노 음악을 디깅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이런 음악들을 들으면 소리도 뭉개지고 투박하고, 비트매칭을 하기도 어렵고, 때로는 촌스러운 부분도 묻어있는 그런 옛날 음악을 나는 왜 지금에서야 이렇게 좋아하고 있을까. 그것도 아직 어린(?) 20대 후반에 말이다.


 이런 낡은 내 취향을 추적해보면 초등학생 때까지 거슬러볼 수 있겠다. 그 때는 MP3도 초등학생이 가지고 다니기에는 희귀한 물건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더불어 멜론이나 벅스 같은 플랫폼에서 음악을 듣는 건 비쌌고, 그래서 사람들이 소리바다 같은 사이트에서 불법 다운로드를 해서 음악을 듣고 다녔던 것 같다. 지금같이 유튜브에서 클릭 한번만으로 고음질의 음원을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시대에서 그런 일들을 생각해보면 실제로 그랬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버지는 음악 듣는 걸 좋아한다. 특히 80년대 팝송 BEST 100 같은 음악 CD를 어디 지하상가 같은 곳에서 사와서 들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덕분에 어린 시절 친구들이 소녀시대 같은 아이돌 음악에 빠져있을 때 나는 퀸이나 ABBA, 비틀스에 푹 빠지고 그랬었다. 소녀시대의 GEE가 아닌 비틀스의 Come Together 같은 음악에 감동을 느끼고 그랬었다. 당연히 친구들과 공유할 수 없었던 음악 취향이었다. 그래서 혼자서만 들었다.


 그 때 들었던 음악들을 전부 기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즐겨 듣고 흐릿하게나마 기억에 남는 몇몇 음악들이 있다. 그런 반면 지금 나이가 되어서 새롭게 좋아하게 된 옛날 음악들도 있다. 초등학생의 내가 좋아했던 옛날 음악과 20대 후반에 찾게 된 옛날 음악. 합쳐서 5곡 정도인 이 음악들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 말해보고자 한다.


1. John Lennon - Imagine



 지금 시대의 초등학생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음악 스트리밍 방식이 있다. 초등학생 시절, 나는 비틀즈의 음악을 집에서만이 아닌 밖에서도 듣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나에겐 MP3 플레이어가 없었고, 대신 녹음 기능이 있는 피쳐폰이 있었다. 밖에서 비틀즈 음악을 듣고 싶었던 초등학생 한민영의 해결책은 이렇다. 먼저 컴퓨터에서 비틀즈 노래를 재생한다(당연히 싸구려 스피커). 그리고 핸드폰으로 녹음 버튼을 누른다. 비틀즈 노래를 3분동안 녹음한다. 싸구려 스피커에서 나오는 싸구려 음질에, 대화를 녹음하기 위한 용도인 핸드폰 녹음기로 그 좋은 음악을 녹음했으니 음원의 퀄리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좋지 못했다.


 이 기억이 선명한 이유는 그 때 내가 느꼈던 행복감의 크기를 아직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눈물이 날 정도로 좋았다. 존 레논의 imagine과 비틀즈의 Let it be를 밖에서 이어폰을 꼽고 들으면서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뿌듯했다. 나이가 들고 나서 <응답하라 시리즈>를 볼 때 주인공이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녹음해서 테이프로 가지고 다녔던 장면에서 묘한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비틀즈 음악은 언제나 아련하다. 과거에 순수했던 행복을 떠올리게 하고, 그 행복에 이제는 다가가지 못할 것 같다는 우울감이 서로 적절히 뭉쳐있기 때문이다.


2. John Denver - Take Me Home, Country Roads



어렸을 때 이 노래가 왜 그렇게 좋았을까. 미국 땅처럼 넓은 황야를 본 적도 없고, 외가 친가 모두 서울에 살았기에 시골에 정기적으로 들른 적도 없으며, 더군다나 그 때는 원더걸스나 소녀시대 같은 신나는 음악들이 가득했던 그런 초등학생의 내가 이 노래에 꽂힐 수 있었다니. 새삼 신기하다. 어쩌면 그런 낯설음에 이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이국적인 시골 느낌이 묻어나는 이 곡을 들으면서 자유롭고 드넓은 어느 풍경을 상상했을지도.


어렸을 때는 방학 때 시골에 내려간다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시골에 가서 할머니가 해주는 정겨운 밥을 먹고, 마당에서 어느 견종인지 도통 알 수 없는 강아지들이 반갑게 맞이하고, 밤이 되면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골은 나에게 가본 적 없는 그리움으로 간직하게 되었다. 그리움에는 경험의 유무나 깊이, 길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3. ABBA - Dancing Queen



 성인이 되어서 영화 <맘마미아>를 보면서 잊었던 추억을 하나하나 끄집어냈다. 맞다, 아빠가 ABBA 좋아했지. 내 아버지는 집에서 TV로 유튜브를 자주 보는데, 최근에 나에게 ABBA 메들리 유튜브 영상을 틀어주면서 “ABBA는 1집이 꼭 비틀즈를 따라한 것 같아”라는 말을 툭 던졌다. 괜시리 기분이 좋았다. 나이가 들어도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하는 취미를 잃지 않았구나. 타인이 무언가를 좋아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내 주변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오랫동안 잃지 않았으면 한다.


4. 빛과 소금 - 샴푸의 요정



빛과 소금은 다른 아티스트의 리메이크 곡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콜드라는 가수를 정말 좋아하는데, 그의 음악 중 빛과 소금이 원곡인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를 자주 듣는다. 특히 새벽이면 자주 찾는다.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턱을 괴고 가만히 앉아서 그 노래를 잠자코 들으면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해진다. 그 쓸쓸한 감성이 싫지만은 않을 때가 바로 그 노래를 듣고 있는 새벽의 순간이다.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의 원곡 아티스트가 누군지 궁금해져서 찾다가 ‘샴푸의 요정’에 푹 빠졌다. 이 곡도 여러 후배 아티스틀이 리메이크를 했기 때문에 멜로디 자체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빛과 소금의 담담하면서도 울림이 있는 원곡만의 매력은 스물 일곱 살이 되어서야 처음 느껴볼 수 있었다. 괜시리 쓸쓸해지고 싶은 날이면, 이제는 콜드와 더불어 빛과 소금을 찾게 된다.


5. Marvin Gaye - What’s going on



‘오직 사랑만이 혐오를 정복할 수 있어요’ - What's Going On 가사 중에서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는 것이 당연해지는 시대에 더욱 간절하게 다가오는 음악이다. 1971년에 발매된 이 노래는 당시 시대의 인종 차별, 빈곤, 베트남 전쟁과 같은 혐오의 문제를 담담하게 목격하는 가사를 담고 있다. 나는 이 노래가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상식과 비상식, 정상과 비정상, 유식함과 무지함으로만 재단하지 않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자는 메시지.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보이지 않지만 서로의 삶에 깊이 관여되어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기 때문에,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음악이다.


 혹시 2019년에 나온 이 음악의 리메이크 뮤비를 아직 못 봤다면, 시간 내서 꼭 보길 바란다. 내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이 이 뮤비 안에 녹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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