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산문형 인간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은 운문형 인간을 꿈꾸는 산문형 인간이라고. 스스로는 간결하지 않고 설명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어서 간결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운문형 인간을 동경한다고 말이다. 간결함을 갖고 싶다는 그 이야기를 듣고 무릎을 탁 쳤다. 완전 나잖아?
나는 산문형 인간이다. 심플하고 담담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아무것도 아닌 내가 나는 너무 기특하고 아쉬워서 자꾸만 내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다. 가끔은 그 모습이 부끄러워서 다시 열심히 운문형 인간을 꿈꾸지만, 결국 아무도 묻지 않는 나에 대한 구구절절한 생각들이 말로 글로 튀어나간다. 이런 나에 대해서 한숨을 쉬다가도 '운문형 인간을 꿈꾸는 산문형 인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래, 산문형 인간이라는 말 좋은데? 완전 내가 하고싶던 말이었어. 라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글을 적는 것까지가 완벽히 <운문형 인간을 꿈꾸는 산문형 인간>스럽다.
여기에 쓰는 내 글들은 전부, 결국 운문형 인간이 되지 못한 산문형 인간의 글이다. 내 마음을 딱 맞게 담아낸 문장들을 찾고서도 그걸 다시 산문으로 풀어내야 하는 완벽한 산문형 인간의 숙명. 이제는 그 숙명을 받아들이고, 산문형 인간이 찾은 동경할 만한 운문들을 모아서 여기에 적는다.
인생의 크림이 될 문장들
어떤 것을 열렬히 고민하고 생각하고 나면 그것이 고스란히 인생의 크림이 되거든.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인칭단수」에서)
나는 아마 한 줄의 문장에서 백 줄의 생각과 이야기를 뽑아낼 것이다. 심플하고 멋진 운문형 인간이 되기는 글렀지만, 이렇게 무언가를 열렬히 생각하다보면 그 문장과 생각들이 고스란히 내 인생의 크림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때론 공감이, 위로가, 매가 될 문장들을 곱씹으면서 천천히 크림 가득한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