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요즘이다.
누구나 저마다의 아픔이나 힘듦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긴 했지만 최근에는 내 주변에서, 미디어에서 많은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안타까움과 속상함, 그 이후에는 누군가의 힘듦을 보편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들었다.
원래 나는 넘치는 공감이 탈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스스로 여유가 있을 때만 그럴 수 있는 치사한 사람이었는지, 내게 감당해야 하는 일이 조금 많아지자 점점 마음과 귀가 닫혔다. 비겁하고 오만한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 있었던 많은 일을 생각하며 '결국 인생은 혼자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 걸..' 하고 생각했다. 심지어 '슬픔을 나누면 슬픈 사람이 둘이 된다'는 말에도 조금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나는 그 말에 어떻게 그렇게 차가울 수 있냐며 상상만으로도 상처를 받는 쪽이었는데...!
결정적으로는 내가 무너지기 싫었던 것 같다. 내 앞에서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있었고, 나도 스스로를 채찍질해가며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나 하나를 지탱하는 것도 버거웠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누군가가 기대려고 한다면, 그 무게를 내가 감당해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내 몸과 마음이 모두 함께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그래서 각자의 짐은 각자의 지고, 서로가 각자의 폭풍우를 잘 버티기를 응원하는 것이 결국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장 최근에 본 면접은 준비 과정에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어차피 면접은 스스로 준비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나에 대한 응원과 기대를 내 손으로 깨부숴야 했던 그 이전의 경험들이 자꾸 떠올랐다. 그래, 혼자 면접 착착 준비해서 멋지게 좋은 결과를 받게 되는 날! 그날 모두에게 이야기하는 거야. 그리고 면접 하나 보는 것 가지고, 친구들한테 설레발 좀 그만 치라고! 스스로를 어린애 보듯 다그치며 다짐했다.
면접의 결과를 떠나서, 이번 면접 준비는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종종거리는 마음이 진정을 못하고, 결국 입으로 '어떡해'하며 발까지 구르게 했다. 이직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펑펑 울기도 했다. 놀랐던 것은, 그렇게 울다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 '무서워'였다는 것이다. 그때의 감정은 떨림이나 걱정이 아닌 무서움이었다.
나는 혼자 이 깜깜한 동굴을 헤쳐 나가서 '짠! 나 동굴 통과를 성공했어!'라고 말하고 싶어 욕심을 부려봤지만, 그러기에 동굴을 혼자 걷는 일은 사실 나에게 너무 벅찬 일이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이렇게 나약한 내가 눈 꼭 감고 동굴을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나 면접 봐' 한 마디에 '대박! 잘하고 와. 할 수 있어!' 말해줬던 목소리들 덕분이었다. 동굴 안에는 나 혼자였을지 몰라도, 밖에서 나에게 외쳐주는 그 목소리 덕분에 무서운 동굴에 끝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꼿꼿이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사랑과 지지 덕분에 동굴 속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넘어지더라도 다치지 않았으면서, 혼자 그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했다. 완벽한 착각이었다.
인생은 혼자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맞다. 지금 내 고민들, 과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구든 도움을 구할 수는 있다. 서로에게 건네는 고백과 응원이 당장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어도, 한 세 발짝 정도 더 가볼 수 있는 힘을 준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아니 왜 알면서도 잊으려고 했었을까.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지 않아 보니까,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도 그렇게 나약한 주제에 다른 사람들의 힘듦을 최대한 외면해보고 싶었던 내가 많이 많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요즘 만나는 친구들에게 나에 대한 반성을 더해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하자'라고 말했다. 슬픔을 말해서 슬픈 사람이 둘이 되면.. 같이 의지할 수 있고 좋지 뭐. 지금까지 난 그래서 살아왔다.
누군가 나에게 기대고 싶다면 맘껏 기대게 하고, 나도 그 사람에게 맘껏 기대고 싶다. 그렇게 같이 울고, 같이 눈물을 닦아주고 각자의 폭풍우를 걷는 중에도 손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누구든 힘들 때 조금은 약해진 목소리로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떤 상황에서든 강해야만 하지는 않았으면.
여담.
살면서 느끼는 것은 역시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 더 힘들다는 사실이다. 본인보다 남을 더 배려하고, 감내할 줄 아는 사람들이 조금 더 고달픈 것 같다. 하지만 그 힘듦에도, 남들처럼 쉽게 비난하거나 탓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끝까지 남을 배려했던 누구보다 강한 사람들이 있다. 강하고 멋진 사람들을 잃는 일이 언제나 적응이 되지 않지만 그런 분들이 이제는 좋은 사람만 가득한 곳에서, 본인을 더 챙겨도 행복한 곳에서 밝게 웃었으면 좋겠다. 당신의 힘듦을 몰라줬던 이 좁은 세상은 잊고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