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나의 카카오 계정이 누군가에게 해킹을 당해 나의 모든 대화 내용이 공개되는 일이 생긴다면, 그런데 자비로운 범인이 그래도 한 곳의 대화 내용만큼은 지켜주겠다고 말한다면, 나는 '나와의 채팅'만은 살려달라며 그에게 빌 것이다.
블로그에도 다이어리에도 일기를 쓰고 있지만, 사실상 내가 가장 자주 쓰는 일기장은 카카오톡 속 나와의 채팅방이다. 살던 환경이 완전히 바뀌고, 첫 사회생활을 겪으며 울컥 올라오는 감정들이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럴 땐 감정을 문자로 적으면 그 감정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감정이란 시도 때도 올라오는 것이다 보니 나는 일기장과 펜 없이도 바로 감정을 적어 내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그때부터 나와의 채팅방은 나만의 일기장이 되었다. 순간의 감정이나 간단한 메모들로 시작해, 점점 내가 느낀 깨달음과 다짐들이 흘러가는 곳, 혹은 장문이 되기 전에 잠깐 머무르는 공간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방에 내가 남긴 흔적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갸우뚱하기도 한다. 그러면 그 감정은 흐르거나 고쳐진다. 그중 오래도록 남을 이야기들은 다시 종이과 펜을 거쳐 긴 일기가 되거나 이렇게 공개적인 글이 된다.
최근의 채팅방을 보다 보니 매주 일요일 밤마다, 혹은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까지 마음을 붙잡는 내 모습이 보였다.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는 늘 불안과 걱정을 품에 안고 잠에 든다. 그 걱정과 불안을 들키면 안 된다는 다짐까지 덥게 끌어안고 땀을 뻘뻘 흘린다. 그 마음이 여기 이렇게 남겨져 있구나.
일기를 쓸수록 블로그나 일기장에 완전히 솔직한 마음을 남기기는 어렵다고 느낀다. 사람은 혼자 보는 일기에도 조금은 마음을 포장하니까. 이렇게 순간적으로 생겨나 퍽하고 던져졌던 감정들만이 아무런 포장지 없이 굴러다닐 수 있다.
나는 어떤 여유가 생기면 나의 이름이 적힌 채팅방에 들어간다. 얼마 전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던 마음들을 바라보다가 조심히 주워 먼지를 털고, 한 번씩 안아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