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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본주늬 Jan 26. 2022

주가 없는 주식학 #02 백화점&면세점

MZ의 명품 사랑, 유행일까 대세일까/코로나부터 하이난까지

백화점: 에루샤 입점하십니다. 모두 비켜주세요.

#롯데쇼핑 #신세계 #현대백화점


강남, 압구정, 잠실, 여의도, 판교. 이 5곳의 공통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 맞다. 재개발, 재건축 호재가 있는 구역? 그것도 얼추 맞는 것 같다. 대기업이 몰려 있는 상권? 최소한 강남과 여의도는 우리나라 대표 상업 지구다.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겠지만 오늘 이야기할 것은 바로 백화점이다. 부자들이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생겨난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한때는 장래희망이 백화점 VIP인 적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백화점에도 큰 트렌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백화점 주식에 투자하고 싶다면 최소한 백화점이 어떻게 돈을 벌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는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는 백화점 기업은 무엇이 있을까?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백화점이 맞다. 우리나라에는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 현대백화점이 3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번 '편의점&대형마트' 포스팅에서도 확인했겠지만 롯데와 신세계는 유통 산업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기업이다. 작년에 오픈한 여의도 현대백화점, '더 현대 서울'은 코로나19도 막을 수 없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한화 그룹에서 운영하는 갤러리아백화점이 3강에 비하면 작지만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갤러리아백화점이 전체 기업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작아 백화점을 보고 투자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백화점은 대체로 기업 이름과 브랜드 이름이 동일하거나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다. 롯데백화점은 롯데쇼핑, 신세계백화점은 신세계, 현대백화점은 현대백화점에서 소유하고 운영하고 있다. 매출액 순위로는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 현대백화점 순이고 매장 수만 보면 롯데백화점(32개)이 현대백화점(16개), 신세계백화점(13개)에 비해 압도적이다. 그런데 백화점을 볼 때는 합산 매출액이나 매장 수뿐만 아니라 개별 매장 매출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1년 신세계 강남점이 2조 4940억 원의 매출액으로 5년 연속 1위를 차지하며 경쟁사의 주요 매장인 롯데 잠실점(2위, 1조 7973억 원), 현대 압구정점(8위, 1조 809억 원)을 크게 따돌렸다.


앞서 편의점과 대형마트 산업을 가장 먼저 공부하는 게 좋다고 말한 이유는 우리의 일상과 가장 친숙하기 때문이었다. 편의점만큼은 아니지만 백화점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는 일상 속 주식에 해당한다. 백화점에서는 편의점의 '와인', 대형마트의 '경험의 공간'이라는 트렌드도 확인할 수 있지만 백화점만의 독자적이고 핵심적인 트렌드가 있다. 바로 명품이다. 그리고 명품의 새로운 구매층으로 떠오르고 있는 MZ세대가 백화점 주식 투자의 키(key) 포인트다. 부자들이 아이스크림 하나 사주지 않더라도 백화점 주식을 갖고 있으면 이들이 명품 가방을 살 때 옆에서 배당을 받거나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다.



수능에만 등급이 있는 게 아니다. 검색창에 '명품 계급도'를 쳐보면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명품들이 서열 정리되어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지도 높은 3개의 명품 브랜드는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이다. 줄여서 '에루샤'라고 부르는데 이들의 유무에 따라 백화점의 계급도 나뉜다. 에루샤가 입점하면 다른 브랜드들도 앞다퉈 입점하고, 이에 따라 고객들이 더 많이 방문하면 매출이 더 많이 발생하고, 백화점은 다시 고객 경험을 강화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매출 1조'보다 '에루샤 보유'라는 타이틀이 주는 임팩트가 훨씬 강력하다. 에루샤를 보유한 백화점은 강남 신세계, 잠실 롯데, 압구정 현대를 포함해 7곳이며, 신세계가 4곳으로 가장 많다.


명품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주목해야 한다. 언론은 '명품을 사랑하는 MZ세대'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MZ세대' 대신 '명품족' 내지는 '에루샤족'으로 부른다. 명품을 사랑하는 MZ세대도 있지만 극단적인 가성비만 추구하는 MZ세대도 많다. 대다수의 에루샤족은 명품 플렉스(flex)에서 멈추지 않는다. 백화점에 온 김에 쇼핑도 하고, 밥도 먹고, 문화생활도 즐긴다. 샤넬 가방을 들고 롯데리아 햄버거를 먹을까? 루이비통 가방이 긁힐 수도 있는데 인파 붐비는 곳을 헤집고 다닐까? 결국 답은 프리미엄이다. 최근 백화점에서 하이엔드 가전제품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 백화점 3사가 MZ세대 명품족을 위한 VIP 등급을 만드는 것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한편 백화점의 '에루샤 모시기'에 방해꾼이 등장했다. 머스트잇, 발란 같은 온라인 명품 플랫폼 업체다. 주지훈, 김혜수 등 탑스타를 모델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이들은 '굳이 명품을 백화점에서 사야 해?'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최저가와 편리함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백화점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명품을 구경하러 와서 소비까지 해야 하는데 입구부터 고객을 낚아채가는 기분이 들 것이다. 주식 투자를 할 때는 이런 이슈가 정말 기업에 치명적인 위협인지 판단을 내려야 한다. 사견으로는 '명품은 굳이 백화점에서 사야 한다.' 나는 로켓배송이라도 명품을 택배 상자에 받고 싶지는 않고, 명품을 사는데 구질구질하게 최저가 스캐닝을 하고 싶지도 않다.



오히려 우려되는 것은 명품 열풍의 지속가능성이다. 명품족이 에루샤에 환장하는 이유는 실용적이라서가 아니라 자랑하기 위해서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에 가지 못하는 돈이 명품으로 쏠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위드코로나가 시행되면 많은 사람들이 백화점을 찾을 수 있지만, 백화점이 아닌 다른 곳으로 분산될 수도 있다. 명품 가방의 라이벌은 튼튼한 백팩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에 자랑할 수 있는 맛집, 호텔, 휴양지다. 뿐만 아니라 유행 자체가 돌고 돈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부자 명품족은 흔해진(?) 명품 가방 대신 다른 자랑거리를 찾아 나설 수 있고, 명품 플렉스족은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면세점: 어떻게 중국까지 사랑하겠어, 돈을 사랑하는 거지.

#호텔신라 #신세계 #현대백화점


해외여행을 참 좋아하는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는 해외여행만 다녀오면 담배를 많이 사 와서 친구들에게 팔거나 나눠줬다. 나는 대학생이 되고 세부로 첫 해외여행을 갔다. 비행기를 타기 전 아버지는 전화로 발렌타인 30년산이라는 술을 사 오라고 했다. 면세점에 갈 일이 없었던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선배에게 왜 한국에도 있는 담배를 기념품으로 사 오냐고 물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다. '면세'의 뜻도 몰랐던 나 같은 사람을 위해 핵심만 설명하겠다. 우리는 10만 원짜리 물건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물건 가격은 90909 원이고 9091 원의 부가가치세를 낸다. 면세점은 부가가치세 같은 세금을 면제해줘서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한민국의 인천국제공항을 만든 것이 면세점의 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면세점도 3강 1중 체제인데 주의할 점이 있다. 매출액 기준 1위 롯데면세점은 롯데쇼핑이 아닌 호텔롯데라는 기업에 속해 있다. 롯데면세점이 좋다고 롯데쇼핑 주식을 사면 초코칩 빠진 초코머핀을 산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호텔롯데는 비상장 기업이라 주식 시장에서 살 수도 없다. 기업과 브랜드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호텔신라의 신라면세점, 신세계의 신세계면세점이 3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고, 삼국지에도 고구려, 백제, 신라 외에 가야라는 나라가 있듯이 현대백화점의 현대백화점면세점이 1중으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국내 면세점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용어가 하나 있다. '따이공'이라고 불리는 중국인 보따리상은 한국 면세점에서 화장품, 건강기능식품, 명품을 저렴하게 구입해 중국에 판매하는 큰손 상인이다. LG생활건강이나 아모레퍼시픽 같은 화장품 기업들은 면세점에서 따이공에게 대량 판매를 통해 많은 매출을 기록했는데, 사드 사태와 코로나19 사태는 국내 면세점과 화장품 기업에 큰 타격을 입혔다. 팬데믹 이후 공항이 마비되고 여행객들의 발길이 묶이자 당연히 면세점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정부는 공항 임대료 인하, 내국인 구매한도 폐지, 해외 거주자 인터넷 면세품 판매 허용 등의 정책으로 국내 면세점 기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정부 지원 정책도 업황을 회복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임대료 감면은 미봉책에 불과하고 면세한도 폐지 없는 구매한도 폐지는 반쪽짜리 정책이라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따이공과 특정 상품군에 매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은 면세점 주식에 투자할 때 고려해야 할 리스크 중 하나다. 실제로 올해 초부터 루이비통이 국내 시내면세점에서 모두 철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면세점 주식 투자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아졌다. 면세점도 백화점만큼이나 명품 브랜드 유치가 중요하다. 사람들이 면세라는 혜택까지 받으면서 구매하길 원하는 것은 가성비 좋은 제품이 아니라 프리미엄이 붙은 네임드 제품이다.



한편 중국의 하이난 면세점이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하이난 면세점은 지난해 85%의 연간 판매액 증가율을 기록했다. 또한 중국 정부는 베이징, 상하이, 톈진에도 면세점 사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마치 여포처럼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하이난 면세점에 대해 엇갈린 시각이 존재한다. 한쪽은 국내 면세점들의 상품 기획 및 명품 수급 역량이 중국 면세점에 비해 여전히 압도적이라는 의견이고, 다른 한쪽은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면세점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이상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의견이다. 면세점 투자를 할 때는 개별 기업을 평가하기 전에 국내 면세점 산업의 미래를 먼저 고민해봐야 한다.


기업별로 살펴보면 면세점 비중에 따라 특성이 나뉜다. 먼저 호텔신라는 매출의 약 90%가 면세점에서 발생한다. 즉, 면세점 퓨어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신세계는 면세점, 백화점, 의류 매출이 골고루 퍼져 있다. 셋 중 가장 안정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마지막으로 현대백화점은 백화점과 면세점 매출 비율이 8:2 정도인데 면세점 비중이 증가 추세다. 2019년 본격적으로 면세점 사업에 뛰어든 현대백화점은 명품 브랜드 유치에 힘쓰며 신세계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팬데믹 같은 위기가 발생하면 신세계나 현대백화점이 방어에는 유리하지만, 반대로 위기가 회복되는 국면에서는 호텔신라 투자가 더 매력적일 수도 있다.


유통 산업에 투자하려고 해도 정해야 할 것이 많다. 사실 오프라인 유통 채널(편의점/슈퍼마켓/대형마트/백화점/면세점) 외에도 온라인 유통 채널로 홈쇼핑이 있다. 국내 홈쇼핑 대표 업체로는 현대홈쇼핑, 롯데홈쇼핑, GS홈쇼핑, NS홈쇼핑, CJ오쇼핑이 있는데 최근 이커머스나 라이브커머스의 성장으로 입지가 약해지고 있다. 그래도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는 만큼 배당주로서는 인기가 있었는데 CJ오쇼핑은 CJ ENM에, GS홈쇼핑은 GS리테일에 흡수되면서 주식시장에는 현대홈쇼핑과 엔에스쇼핑만 남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홈쇼핑 산업의 향후 성장 가능성에 의문이 들고 배당 외에 투자 포인트가 별로 없다고 생각해서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이렇게 2편의 포스팅에 걸쳐 편의점, 대형마트, 백화점, 면세점 관련 국내 주식들을 살펴보았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주가, PER, ROE 같은 주식 관련 용어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주가 없는 주식학'은 지도나 내비게이션이 아니라 여행지 리스트에 불과하다. 어디는 갈 수 있고, 어디는 갈 수 없는지 알려줄 뿐이다. 가고 싶은 여행지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계획을 세우고 자금을 모으지 않는가? 이 시리즈의 주된 목적이 바로 그것이다. 어떻게 가는지, 언제가 적기인지, 어디가 지름길인지는 훌륭한 선생님이나 책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 나 자신도 훌륭한 선생님기 되기 전에, 본 수업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한 예습용 교재를 마련하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



<다음 편 예고>

주가 없는 주식학 #03 라면&과자 (2/9 발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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