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 Jan 10. 2024

[에필로그]-<어쨌든, 책>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해서 걱정하거나 후회할 필요는 없다.*

[에필로그]-<어쨌든, 책>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해서 걱정하거나 후회할 필요는 없다.*



Epilogue     


♧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해서 걱정하거나 후회할 필요는 없다.     

녹음이 더욱 짙어지던 아름다운 늦여름의 어느 한가했던 휴일에 지인들과 산행을 다녀왔던 일이 문득 생각납니다.

평소 운동부족인데다가 체력도 좋은 편이 아닌 저는 등산에는 호감도 취미도 없으며, 기껏해야 가까운 공원이나 평탄한 평지길을 산책하듯 살방살방 걷는 것은 좋아합니다.

함께 가면 산 정상에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고 완주하면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지인들의 거듭된 권유와 설득에 넘어가 집을 나서기는 했는데, 내가 과연 이 다이내믹한 코스를 완주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었습니다. 하지만 든든한 동행자들을 믿고 도전하는 마음으로 적어도 민폐는 되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며 즐겁게 참여했었습니다.

그날 산행에는 반백살을 넘어선 중년의 네 여자들이 함께 하였는데, 푸르른 녹음이 더욱 짙어진 산어귀에 도착하여 편안한 동행님들과 함께하는 길은 설렘과 행복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허덕거리며 산길을 걸으면서도 끊임없이 오가는 대화들이 정겨웠고, 산허리 샛길에 내려놓듯 툭툭 터놓는 솔직담백한 개인사들을 통해 사람 사는 다양한 세상 이야기들을 나누며 생각을 교류할 수 있었던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이 전해주는 한가함과 평화로움은 그간 쌓여있던 마음의 피로와 긴장감을 자연스럽게 녹여주었고, 개인적 친분이기보다는 사회적인 관계에 더 가까웠던 동행님들에 대한 부담감을 풀어주면서 서로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진솔한 대화와  소통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비교적 평탄한 길이 이어질 때에는 재잘재잘 떠들다가, 가파른 길을 오를 때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어느새 말이 없어지고 웃음기가 사라지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숨을 허덕거리고 다리가 풀리는 느낌을 애써 참으며 천신만고 끝에 산정상에 올랐는가 싶었던 순간에, 그날 산행의 리더가 저 멀리 굽이굽이 봉우리 너머 보이는 팔각정을 가리키며 우리는 곧이어 저곳으로 갈 거라고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곳은 마치 하나의 점처럼 보일 정도로 너무 멀게만 느껴졌는데, 활기차게 앞서는 리더와 동행님들을 따라 산길을 내려가고 또다시 올라가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산길을 오르고 내려오는 길 어디에나 우거져 있었던 늦여름의 짙어진 녹음이 맑은 산공기를 무한 공급해 주었고 정상에 올랐을 때는 시원한 산바람을 만끽할 수 있었으니,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이렇듯 좋은 것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게 뜻밖의 선물 같기만 했습니다.

그때 산길을 걸으며 나눈 대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던 주요 화두가 ‘건강’이었을 만큼, 어느새 중년의 나이가 된 여자들이 그간 살아온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각자의 마음과 생각들을 허심탄회하게 내어놓았습니다. 그렇게 진솔했던 대화들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연이 준 평안함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그의 인생 여정 만큼의 소설책이 여러 권씩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 만큼 그날 각자가 내어놓은 삶의 스토리들이 다채로웠고 흥미로웠습니다.     


그런데 그날 등산과 트래킹 과정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서 힘들게 갔던 길을 되돌아온 순간이 있었습니다. 산길을 내려갔다가 다시 되돌아 올라오기를 반복하고 수많은 계단지옥도 경험하면서 너무 힘들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고 싶게 현타가 오는 순간을 경험해야 했었고, 가쁜 숨을 허덕거리면서도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아껴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밖에 남지 않은 생수를 모두 다 마셔버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길을 찾느라 더 많이 걸었던 만큼 점진적으로 폐활량이 증가하는 느낌이었고, 손목에 차고 있던 스마트워치에 근래 기록되었던 걸음수의 최고기록을 가볍게 갱신하면서 운동량이 훨씬 커졌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서 헤매면서 휴대폰의 나침반과 네비게이션을 활용해 벗어난 노선에서 다시 정상궤도를 찾아가고자 노력하였고, 혹시나 길을 물어볼 수 있는 다른 등산객을 만날 수 있지는 않을까 하여 열심히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도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동행들은 심하게 걱정하거나 힘들다며 짜증스러워하기보다는 낯선 산길에서 길을 잃은 것에 대한 황당함과 어이없음에 깔깔 웃으며 ‘지금 우리 미아 된 거야?!’, ‘해가 저물면 어쩌지?!’, ‘뭐, 어떻게든 되겠지?!’, ‘설마 여기서 죽기야 하겠어?!’, ‘나만 버리고 가면 안돼?!’ 하는 농담을 섞어가며 길고 긴 수다를 더 연장하고 있었습니다. 길을 못찾고 헤매는 시간이 자꾸 길어질수록 엄습하는 공포감을 상쇄시키기 위해 서로를 다독이는 가운데 어느새 깊은 동지애를 다지게 되는 뜻밖의 효과도 누리고 있었습니다.

또한 잘못 길을 들어선 덕분에 인적이 드문 산길에 핀 야생화 군락지를 발견하여 진한 꽃향기를 만끽하였고, 그 와중에도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핀 장관을 놓칠 수 없다며 서둘러 찍은 인생사진을 득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트래킹을 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스마트폰 네비게이션 어플과 지도옙은 물론 나침반 사용법을 다양하게 공유하며, 결국 길을 찾아 무사히 하산 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그날 함께 산행을 하며 어쩌다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되면서 꽁꽁 숨겨져 있던 아름다운 자연을 덤으로 만끽하였던 힐링의 시간과, 평화로운 자연 속에서 동행님들이 내어놓은 각자의 삶에 얽힌 진솔한 스토리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소중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으니, 그날의 경험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해서 걱정하거나 후회할 필요는 없습니다.

잘못 들어선 길을 통해 실수하기도, 좌충우돌하기도, 헷갈리기도, 힘들기도, 고생스럽기도 했던 저마다의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더욱 성숙해지고 단단해질 것이고, 또다른 방향으로 새롭게 열리는 기회로 건강하게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잘 찾아보면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해도 나만 긍정적이라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예측 가능하고 정해진 수순이 예비되어 있어서 누구나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는 길로만 가다 보면, 인생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다이내믹한 기회를 놓치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왜곡된 신념을 부여잡고 그것만이 맞다고 잘못 확신한 채, 실제로는 결코 옳지도 않은 한 가지만 붙들고 있느라 나머지 아흔아홉가지를 허무하게 흘려보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중년의 나이가 되도록 살아보니 사실 절대 안전하다고 믿었던 그 길이 꼭 최상의 길이라는 보장도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삶의 여정 곳곳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일들에 유연하게 적응하며 긍정의 희망으로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더 큰 가능성과 다채로운 기회를 가져다 주면서 새로운 방법을 깨닫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껏 좌충우돌하며 살아오면서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에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한때 내 인생을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오지 못했다는 후회와 자책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회한 중에서도  가장 큰 부분이 바로 글을 쓰는 것에 관한 목마름과 아쉬움이었습니다. 저는 어린 날부터 어느 구석에 틀어박혀서 책읽기를 즐기고 일기를 비롯하여 뭔가를 꾸준히 쓰는 아이였고, 초중고 시절의 생활기록부 취미란에는 ‘독서’와 ‘글쓰기’가 빠지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게다가 각종 교내외 글쓰기 상을 휩쓸던 나름 문학소녀였으며, 여고때는 교지 편집장으로 활동한 바 있었고 대학시절에는 학보사 문화부에서 기사를 썼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작가도, 국어교사도, 언론인도, 출판업계 종사자도 아닌 그저 그런 평범한 현실 생활인으로서 직장 일하고 살림살이하며 아이 키우다 청춘을 다 보내고, 어느덧 ‘건강’이 화두일 뿐인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버렸습니다. 때때로 슬픈 듯한 마음이 올라올 때도 있었습니다. ‘누구 자식, 누구 아내, 누구 엄마’로만 살아가게끔, 본래의 고유성을 가진 나를 무심하게 방치했었던 나의 지난날들에 대해 아쉬움과 후회와 연민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일들 중에는 ‘이게 정말 실화냐?’ 싶을 정도로 최악 또는 최선과 같이 극과 극의 사안들이 비일비재합니다. 하지만 반백의 나이를 살면서 그나마 얻게 된 ‘생활철학’이라고 할 수 있고 ‘삶의 통찰’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면, 세상의 모든 일들은 온통 다 나쁠 수만도, 전체가 다 좋을 수만도 없다는 만고의 진리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제 인생의 일명 ‘리즈시절’이었다고 생각될 만큼 삶의 최전성기였던 한창때에 비해서는 체력도 두뇌회전도 이른바 ‘글빨’도 모두 시원치가 않아진 데다가, 더욱이 책을 읽고 글을 쓰기에 악조건이라 할 수 있는 부실해진 시력을 방증하는 노안의 역습에 시달리는 현재의 제 상태를 누구보다도 스스로가 가장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서글프거나 비관적인 것은 전혀 아닙니다. 왜냐하면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해서 걱정하거나 후회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되지도 않는 체력으로 등산길에 올랐다가 길을 잃고 헤매었던 경험과 같이, 지금껏 살아온 삶의 곳곳에서 숨이 턱까지 차올라 죽을 것만 같이 허덕거리게 만들었던 높고 험한 산길처럼 괴롭고 힘든 고비를 기꺼이 넘어서기도 했었습니다. 굽이굽이 이어져 녹록지 않았던 산 뿐만이 아니라, 때로는 허우적거리다 빠져 버릴 듯한 고해의 바다도 헤엄쳐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 산봉우리들과 그 파도들을 어떻게 감당하며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할지라도 나 자신은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그 산의 봉우리들을 어떤 마음으로 넘었고, 그 바다의 너울대는 파도들을 어떤 방법으로 헤엄쳐 살아왔는지를 어느 누구보다도 나 자신은 잘 알고 있습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부족하나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느라고 하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습니다. 때로는 어설펐고 미숙해서 실패하고 좌절하며 무참히 깨지고 만신창이가 되었을지언정, 결코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묵묵히 걷고 또 걸어왔습니다. 그런 만큼 나도 모르게 조금씩 성장해 왔을 것이고 어딘가 모르게 깊어지면서 단단해져 왔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생을 뭔가 의미로운 것들을 찾아 뭐라도 부여잡고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 활동의 일환으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며 사는 삶이 본연의 내가 오롯이 나 자신으로 존재하며 가장 편안하게 즐길 수 있고 또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저에게 이번 책출간 과정이 참 좋은 기회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에 앞서 ‘브런치 작가’로서 글을 쓸 수 있는 명분과 자극을 선물 받았던 이전의 경험은 더더욱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차분하게 앉아 글을 쓸 시간을 가질 현실적인 여유가 별로 없었고, 글을 쓰고도 원고 관리도 잘 안되었을 정도로 글쓰기가 체계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중에도 어쩌다 쓴 글들은 문득 떠오르는 순간의 생각들을 글로 써서 기록으로 남긴다는 의미로만 개인 계정에 단순하게 모아놓는 그저 그런 자기만족의 행위였을 뿐, 쓴 글들을 누군가와 나눌 기회도 딱히 없었습니다.

50을 넘어서며 신체 컨디션이 자꾸 저하되는 것을 느끼는 데다가 총기가 예전같지 않게 되고 부쩍 깜박깜박 잊어버리는 일이 잦아져서 그런지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에 대한 나름의 믿음이 생겼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수시로 글을 쓰면 어쨌든 그 글들이 기록으로 남게 될 터이니, 그 자체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내가 먼 여행을 떠나간 이후에라도 그렇게 남겨진 내 글들을 사랑하는 내 아들아이가 들춰보면서 엄마를 추억해 줄 수 있다면 참 고마운 일인 것이고, 단지 ‘내 삶의 흔적’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로울 수 있다고 자기 암시를 했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리던 시점에, 일상 속에서 경험하고 발견하는 작은 소재거리를 통해 떠오르는 단상들이 무심하게 휘발되어 버리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들을 상쇄시킬 수 있다면, 나의 글쓰기의 의미는 충분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일상의 소소한 글쓰기일지라도 차차 재미가 붙게 되어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게 된다면, 일상의 기록을 정리된 글로 작성하여 브런치계정에 올림으로써 독자나 다른 브런치 작가님들과 더불어 공감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간 취미생활로 책과 영화를 좋아하는 책/영화 친구님들과 ‘북토크’와 ‘영화토크’를 해오고 있었는데, ‘책/영화 모임’에서 다루게 됨으로써 개인적으로 더욱 특별한 작품으로 남게 된 책과 영화에 대한 감상을 바탕으로 좋은 작품을 리뷰하는 글쓰기도 지속적으로 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갈수록 실감하는 체력저하를 조금이나마 지연시켜 보고자 최소한의 운동으로 시작한 걷기 활동에서의 느낌과 함께 걸으며 눈에 들어오는 풍광사진을 결합하여 쓰는 ‘걷기에 대한 단상’과 일상생활 속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에 관한 ‘일상을 사유하는 에세이’도 쓰고, 평소 좋아하는 전시/공연의 리뷰도 꾸준히 쓰겠다고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여태껏 개인계정에 혼자서 끄적거려 놓았던 책과 영화에 관한 리뷰와 감상문들도 다시 소환해 와 좀 더 틀을 갖춘 글쓰기로 리라이팅하여, 저와 결이 비슷한 브런치의 친구님들과 소통하고도 싶다고도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좀 더 솔직한 저의 바람을 말해 보자면, 사실 저는 무엇보다도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제 삶의 곳곳에서 경험한 일들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만났던 사람들을 캐릭터화하여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서사로 잘 버무려 낸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이 에필로그에 사실은 소설을 쓰고 싶다고 이렇게 고백하는 이유는 아마도 너무 머지 않은 시일 내에 소설 쓰기 작업에 입문해야 할 구체적인 이유와 동력을 저 자신에게 약간의 압박으로 되돌리기 위한 무의식의 발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저자님들과 연합하여 집필한 공동문집은 출간한 바 있지만, 단독으로는 처음인 이번 개인책 출간을 하게 되면서, 돌고 돌아 중년이 된 지금 이 시점에서야 제대로 글쓰기를 해볼 만한 계기를 마련한 기분이 듭니다.

‘어쩌다 나는 소싯적 문학소녀로서의 추억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고, 이렇게 어정쩡한 상태로 그럭저럭 적당히 살다가 떠나가겠구나.’ 하던 불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애써 외면하고 현실에 순응하며 구석탱이 어딘가로 숨어버리려 했던 내 소심한 ‘작가부캐’를 다정하게 토닥이며 일으켜 세워, 다시금 글쓰기의 장으로 데려와 주고 소통하는 글쓰기를 재개할 기회를 준 고마운 브런치팀의 작가 수락 이메일을 받았던 그날의 기쁨을 새삼스럽게 떠올려 보게 됩니다.

브런치팀으로부터 온 이메일을 열어보았을 때 문득 1997년 개봉작인 영화 ‘접속’이 생각났었습니다. “삶은 때론 먼 길을 원한다.”라는 영화 속 라디오 DJ의 멘트가 떠올랐고, 한석규 배우와 전도연 배우가 주고받는 대화 중 ‘다시 만날 사람은 꼭 만난다는 걸 믿는다’라는 대사도 기억났었습니다.

‘나에게 글쓰기란 먼 길을 돌고 돌아와 또다시 꼭 재회할 운명과도 같은 어떤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보았고, 뭔가가 울컥하고 감동스럽기도 했었습니다.     


‘어쨌든, 책’

살아오면서 마음껏 누릴 수 있다면 어쨌든, 책이었습니다.

위로와 지혜가 필요했던 내 삶의 곳곳에서 가장 편안한 친구이자 현명한 스승이 되어 주었던 수많은 책들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낍니다. 또한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나만의 독특한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치며 큰 도움을 주었던 훌륭한 작가님들께 경의를 표하며 존경의 마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첫 책출간을 하게 된 저는 감사하게도 가장 마음에 드는 ‘부캐’를 얻게 되었습니다. 오롯이 내 글로 꽉 채워 직접 만든 책을 갖게 되어, 일명 ‘출간작가’에 입문하는 것이 정말 기쁩니다.

시작은 비록 미약하기 그지없지만, 언젠가는 ‘작가’가 ‘부캐’가 아닌 ‘본캐’라고 인식하게 될 미래의 그 어느 날까지, 중년의 체력저하와 노안의 역습에도 불구하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조용하지만 꾸준한 글쓰기를 지속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렵니다.

어느 날 느닷없이 받은 뜻밖의 선물처럼, 누군가와 소통하며 공유할 수 있는 참 좋은 글쓰기 기회의 출발선상에 저를 세워주었고, 글을 업데이트하는 간격이 길어질 때마다 운동선수가 근육을 키우듯 꾸준히 글을 쓰라고 독려의 메시지를 수시로 보내주며 제 게으름과 나태함에 압박 아닌 압박을 가해주는 ‘브런치팀’에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또한 관심의 공통분모가 있어서 대화가 통하고 결이 비슷한 취미 친구님들을 만나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닌데, 인연이 닿아 책과 영화에 대해 즐거운 수다를 함께 나누었던 책친구님들과 영화친구님들께도 즐거웠고 고마웠던 마음을 전합니다.     


                     2023년 12월 커피향이 그득한 까페에서

                                                 김선(金仙)

작가의 이전글 [프롤로그]-<어쨌든, 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