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이방인 같은 불안한 내 인생
30살이 되기전에 나는 나이에 연연하지 않았다.
29살에서 30살로 앞자리가 바뀐다고해도 여느 해처럼 1년이 지날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30살이 되자마자 인생의 난이도가 높아졌다.
물론 나의 개인적인 사건도 있을 것이고,
30세 대한민국의 여성으로서 직장인으로 겪는 공통적인 성장통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난이도가 뛰었다고 생각하는 몇가지 요인들이다.
1. 가족 건강
작년 말 엄마가 암에 걸렸다. "암에 걸렸다"가 아니라 엄밀하게 말하면 "암에 걸린걸 알게 됐다."
항상 건강해만 보이던 엄마의 몸속에서 엄마의 암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었고, 이미 알게 된 이후에는 수많은 타이밍을 놓친 후였다.
엄마가 아프다는 것은 나에게 지금까지는 겪어보지 못한 고독을 선사했다.
자다가도 문득 '엄마가 없는 세상에 살아야 할 수도 있다'는 자각은 세상에 혼자 남겨진 공포, 절대 고독을 경험하게 했다. 사람은 태어났으면 죽는게 당연지사인데, 엄마는 항상 내옆에 있으리라 생각했다.
엄마는 수술이랑 치료를 받고 회복 중이지만, 이 사건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결심을 실천하게 하는 하나의 이정표로서 작용했다.
2. 연애와 결혼
엄마가 아프고 나서 그 무렵 1년동안 사귀었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엄마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는 공포는 나를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직시하게 만들었다.
가족 없이 혼자남겨지는 게 무섭기도 했고,
아픈 엄마 옆을 '태어날 때 부터 엄마를 지키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든든히 지키던 아빠덕에
나도 내 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구체화 되었고,
당시 남자친구는 결혼할 사람이 아니라는 판단하에 헤어졌다.
머리로는 알았어도 감정이 남아 실천하지 못했던 이별이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남았는데 결혼할 사람이 아니라고 해서 인연을 싹뚝 잘라버리는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며 내 행동을 정당화했었다.
엄마의 암이라는 큰 일을 겪고나니,
20대 초반에는 내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역경이라고 느껴졌던 이별도 사소한 일처럼 느껴지고, "결혼할 사람을 찾고싶다"라는 이성이 "그래도 지금 당장 이 사람이 좋아" 라는 감성을 이겼다.
3. 직업, 커리어
직장인 4년차가 되었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모르는것도 많고 요령도 없으니 이리저리 부딪히며 배웠다.
모르는게 많다보니 당연히 러닝커브도 가팔랐고 출근할때마다 어제보다 더 쓸모있는 내가 된거같았다.
요즘에는 예전보다 아는 내용이나 요령은 물론많아졌으나,
모든게 새로웠던 그 당시보다 내가 하는 일이 크게 나아졌다는 확신은 없다.
가끔 과거에 내가 했던걸 보면서, 과거의 똑똑하고 총명했던 나와
적당히 알고, 적당히 요령 피우는 현재의 내가 비교되어 현타온 적도 있다.
이 커리어와 회사를 계속 유지해야할지, 아니면 사이드 잡을 찾아야할지,
다른 사람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한곳에 고여 썩어가는건 아닌지 고민도 되면서
당장 눈앞의 쇼츠와 도파민이 주는 안락함에 몸을 맡겨버리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30대는 커리어든, 결혼이든, 건강이든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이상하지 않은
하지만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이방인같은 불안함을 느끼는 시작점같다.
먼저 앞서간 이들을 보면 불안해지고, 그렇다고해서 나보다 천천히 오는 사람을 보며 위안을 얻지 않는다.
손에 꽉 쥐고있다고 믿었던 건강이 모래사장의 모래처럼 손 사이로 빠져나갈 수 있음을 깨닫기도 하고,
나를 지탱해주던 신념과 존재가 흔들리기도 한다.
이 시기를 잘 견디며 나의 방향을 찾기 위해서
좀 더 땅에 뿌리 내리고 지탱하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최소한 나를 지탱하고 서있기 위해 이 글을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