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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시간은 언제 다시 오려나

1992. 롯데 자이언츠

by 카미유

지난 주 2025년 프로야구의 개막과 함께 야구팬들의 계절이 돌아왔다. 예상대로 롯데의 행보는 작년과 유사한 연패와 꼴찌의 콜라보로 시작되었고 암울한 기운은 올해도 반복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알다시피 롯데 자이언츠가 마지막 우승을 기록한 건 1992년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은 노태우였고 북한에는 김일성이 살아있었다. 그해 나는 고3 수험생으로 부산의 수많은 롯데 자이언츠의 팬 중 한 사람이었다.

직전 해인 1991년 4위를 차지한 롯데는 준플레이오프에서 3위 삼성을 만났다. 1차전을 패한 뒤 가족들과 직관한 사직 2차전에서 롯데는 윤학길의 호투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비록 4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삼성에게 지면서 탈락했지만 팬들은 열심히 싸운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내년을 기약했다. 이듬해 롯데는 고졸 신인 염종석의 파란으로 시즌 내내 상위권을 유지하며 열정적인 부산 팬들을 설레게 만들었다.

- 염종석이 봤나? 우와~ 기똥차게 잘 던지더라.

- 던지는 거 보면 선동열이가 안 부럽더라. 광주는 선동열, 부산은 염종석!

학교에 가면 롯데, 특히 염종석으로 아이들은 이야기 꽃을 피웠다. 고작 우리보다 한 살 많은 키다리 안경잡이가 저렇게 잘할 줄이야. 8년 전 첫 우승의 주역 최동원의 재림이었다.

그해 롯데는 강점과 약점이 뚜렷이 갈리는 팀컬러를 보유하고 있었다. 타격은 1번부터 5번까지 3할을 칠 만큼 빠르고 정교했지만 장타력 부재로 4번 김민호를 제외하면 홈런을 기대할만한 타자가 전무 했다. 투수 역시 염종석 윤학길의 강력한 원투 펀치를 보유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짜임새와 뎁스는 강력한 인상을 주기엔 어딘가 부족했다. 롯데는 빙그레와 해태에 이어 3위로 정규시즌을 마쳤는데 일단 작년보다 한 단계 오른 성적이라 기대감은 커져갔다. 우승으로 가려면 삼성 해태 빙그레를 연달아 격파해야 하는 고난이도의 도장 깨기를 성공해야만 했다.

첫 번째 관문은 작년에 패배의 아픔을 선사한 삼성 라이온즈. 하지만 올해는 투타 모두 롯데의 우세였고 두 게임 모두 일방적인 승리로 첫 단추를 손쉽게 궤었다.

- 삼성 점마들은 어떻게 한 점도 못 뽑냐. 보는 데 시시하다 시시해.

- 인자 해태 나오라 케라. 염종석이 다 때려 뿌사버리게.

얘들은 작년에 삼성에게 졌던 건 까맣게 잊은 채 자신감만 팝콘처럼 부풀어 터졌다. 대학 입시가 코앞이지만 공부가 머리에 들어올 리 없었다. 롯데는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두 번째 관문은 디펜딩 챔피언이자 최다 우승팀 해태 타이거즈. 예전 같으면 상대조차 안 되겠지만 선동열이 부상으로 빠진 상태라 충분히 해볼 만 했다. 광주에서 1승1패로 균형을 맞춘 뒤 사직으로 이동한 3차전.

- 야 이 새끼들 다 어디 도망갔어!

많은 애들이 야자를 째며 교실을 탈주했고 그중 일부는 직관을 위해 사직구장 앞에 일찌감치 대기하고 있었다. 해태와의 대결은 승부를 떠나 일종의 영호남 자존심 대결이었다. 엄중한 대학 입시도 감히 롯데를 이기지 못했다. 교실 곳곳에 라디오와 이어폰이 등판했고 모의고사보다 롯데 중계에 아이들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롯데는 치열한 공방 끝에 최종 5차전에서 승리하며 마침내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마지막 관문은 일찌감치 정규시즌 1위를 확정한 빙그레 이글스. 어쩌면 롯데보다 우승에 더 한을 품고 있는 팀이 빙그레였다. 해태에게 세 번이나 우승 문턱에서 물을 먹은 빙그레는 이번에야말로 우승의 적기라 여겼고 모든 조건도 다 갖추어졌다. 투타 지표 모두 롯데에 앞서 있고 상대 전적 역시 압도적 우위였다. 거기다 해태와의 접전으로 체력을 소진한 롯데이기에 대다수는 빙그레의 우승을 점찍었다.

- 이번에는 몬 이길 것 같다. 우리는 염종석 윤학길 다 썼다 아이가.

- 그러게. 빙그레 아들은 완전 쌩쌩할 거 아이가. 장종훈 이정훈 임마들 겁나게 잘 치던데.

확실히 아이들도 빙그레와의 승부는 반신반의했다. 나 또한 이기면 말할 수 없이 기쁘겠지만 져도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시리즈가 열리자마자 고3 교실의 도파민은 터져나갔다. 아이들은 라디오에서 점수가 날 때마다 함성을 질렀고 감독 교사도 포기한 듯 더는 제지하지 않았다. 롯데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4승1패로 빙그레를 누르며 창단 두 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92년 롯데의 우승을 지켜봤던 팬들은 이후 30년 넘도록 우승에서 멀어질 거라는 상상 따위는 아무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롯데는 강했고 우승 주역 대부분이 젊고 유망했다. 투수 염종석 박동희 윤형배 김상현, 타자 전준호 김응국 박정태 이종운 박계원 등 모두 서비스 타임이 남아있는 20대의 창창한 나이였다. 노장 윤학길 김민호 장효조가 조만간 은퇴한다 해도 롯데의 앞날에 꽃길이 펼쳐질 거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다. 성급한 팬들은 해태 못지않은 롯데 왕조가 열릴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들뜨기도 했다.

하지만 작금의 롯데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독식하고 있는 최악의 팀이 되었다. 팬들의 인내심은 벼랑 끝까지 몰렸고 희망이라는 단어는 늘 마지막에 소멸되었다. 나 역시 파릇했던 10대 청춘을 지나 50대 중년이 되었건만 영광의 시간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우승의 일등공신 19살 신인 염종석은 향후 10년을 책임질 에이스라는 말이 무색하게 혹사 여파와 잦은 수술로 100승도 채우지 못한 채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대통령이 여러 명 바뀌고 한 세기가 접히고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대중화될 때까지 롯데는 여전히 우승 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어린 롯데 팬들이 단 한 번의 영광의 시간도 가져보지 못했다는 점은 심히 안타깝다. 언제쯤 이들이 나와 같은 기억을 공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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