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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악설 Apr 08. 2021

변비

 다소 지저분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내가 공중화장실에 큰일(?)을 보러 갈 때마다 겪게 되는 상황이 있다. 그건 바로 내가 큰 일을 다 끝낼 때까지 옆 칸에서 끙끙대며 큰 일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해가 안 간다. 10분 미만으로 큰일을 처리할 수 없다면 다음을 기약하는 게 맞다. 다들 공감하겠지만, 그 시간 동안 드래곤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변비이거나 장에 문제가 있는 상황인 거다. 그 상황에서 굳이 온몸에 힘써가며 억지로 드래곤을 소환해야 하나? 그땐 두통까지 오는 거 알잖나..


 그렇다고 나도 큰일을 후딱 처리하는 편은 아니다. 독자들과 일일이 비교할 수 없어서 아쉽지만, 내 주변 지인들과 비교하자면 오래 걸리는 편에 속하는 건 확실하다. 평균이거나 평균보다 오래 걸리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확실한 건 (내 기준) 마지노선 10분이 지나면 그냥 포기하는 게 낫다는 거다. 왜 복통에서 두통까지 이어지게 하는 거냐고요..

그대 앞에 다음 사람 저러다 죽겠다.


 근데 웃긴 건 여기에 우리 인생을 빗대어보면 은근히 비슷하다. “엥? 갑자기 똥 싸는 거랑 인생이랑 엮는다고? 무슨 개소리야”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지금 당신 성과가 안 나오는 일에 몇 년째 목매고 있지는 않은가? 마치 내가 아직도 글을 쓰는 것처럼.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냥 포기하는 게 어떤가? 포기하는 게 때론 더 좋은 방향을 제시해줄 때가 있다. 내가 말하는 포기는 영원히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 순간만 잠시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나도 한때 열심히 글을 쓰던 때가 있었다. 당시 정말 열심히 썼고, 열심히 투고했다. 근데 성과가 나오지 않자 허송세월이라는 단어와 내 나이가 다투기 시작했다. “이 나이 되도록 이룬 게 하나도 없다니.”, “그 시간에 자격증이나 딸 걸.” 결국 제 풀에 지쳐 글을 다신 안 쓰겠노라 다짐하며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내 글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봤다. 비로소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따위 글로 사람들한테 내 글 읽어달라고 졸랐다니.. 출판사에 투고했다니.. 쪽팔려 죽을 것 같다. 이런 걸 보니, 그때 포기한 건 확실히 잘한 일이다. 아마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썼으면, 없는 소재 억지로 끌고 오느라 재미도 없을 것이며 대중이 보기에도 남들과 비슷한 글, 그저 뻔한 글로 인식됐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쓰고 싶을 때만 쓴다. 지금처럼 똥 싸고 쓰는 것만 봐도 말 다했지 않나? 근데, 이런 마인드로 글쓰기를 시작하니까 글도 술술 써지고, 소재 또한 다양해지더라. 그러니까 그대 지금 하는 일에 힘 좀 빼는 게 어떠신지?


 유명한 자동차 회사 ‘포드’의 창립자 헨리 포드는 “휴식은 게으름도, 멈춤도 아니다. 일만 알고 휴식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와 같이 위험하기 짝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 이제라도 억지로 싸지 말고 마려울 때만 싸자.


 그대가 똥이 안 나와서 똥 싸기를 포기했더래도, 언젠간 다시 시원하게 똥 싸러 가겠지. 나도 그럴 것이다. 똥을 쌀 때도, 글을 쌀 때도. 아니 쓸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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