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성에 대하여

— 새로움이 아닌 ‘나다움’으로 남는 일

by 서히

작업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는 압박 앞에 서게 됩니다.

지금까지 해온 방식이 익숙해지는 순간,

혹시 정체되어 있는 것은 아닐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됩니다.

끊임없이 변화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고,

새로움을 증명하지 못하면 작업의 의미가 희미해질 것 같은

불안이 그림자처럼 따라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는 그 질문이

조금 잘못된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창작자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새로운가’라는 외부의 잣대가 아니라,

‘이 작업이 끝까지 나로 남아 있는가’라는 내부의 문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고유성은 한 번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에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눈에 띄는 스타일이나 강렬한 설정으로 단번에 증명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고유성은 아주 느리고 정직하게 형성됩니다.

반복 속에서도 차마 버리지 못한 감각,

수없이 의심하면서도 끝내 다시 돌아오게 되는 질문,

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손끝에 머무는 방식들.

그런 것들이 겹겹이 쌓이며 작업 안에 조용히 자리 잡습니다.

그래서 고유성은 ‘다르게 보이려는 노력’보다,

‘내가 계속해서 돌아오는 지점이 어디인가’를 알아차리는 일에 가깝습니다.

유행이 바뀌고 환경이 달라져도,

어떤 선택 앞에서는 늘 같은 지점에서 망설이고

같은 감각에서 멈추게 되는 순간들.

그 피할 수 없는 반복 속에서

나만의 언어는 조금씩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고유성을 외부의 기준으로 확인하려 합니다.

타인과 얼마나 다른지, 얼마나 새로운 형식을 취했는지,

얼마나 기민하게 변신했는지를 통해 스스로를 평가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새로움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환경이 바뀔 때마다 또 다른 새로움을 덧입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나다움’은 쉽게 소모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보여주기 위해 급히 꾸며낸 장식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검증된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선택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설명하지 않아도 스스로 깊이 납득하게 되는 지점들이 있습니다.

고유성은 바로 그 설명할 수 없는 필연성에서 생겨납니다.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가장 큰 동력 또한 이 고유성에서 나옵니다.

모든 작업이 매번 성공적일 수는 없고,

늘 뜨거운 반응이 따르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다시 붓을 들 수 있는 이유는,

이 작업이 ‘나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는 최소한의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유성은 작업을 특별하게 만드는 수식어이기 이전에,

작업을 멈추지 않게 만드는 가장 단단한 버팀목입니다.


이 좌표는 “어떻게 더 새로워질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변해도 끝까지 놓지 않을 나의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그 질문을 반복하다 보면,

우리는 새로움을 좇느라 분주해지기보다

이미 딛고 서 있는 자리의 감각을 더 선명하게 인식하게 됩니다.

고유성은 도달해야 할 먼 목표가 아니라,
지나온 시간 속에서도 끝내 닳지 않고 남아 있는 흔적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흔적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순간,

작업은 더 이상 타인과 비교되지 않습니다.

이미 자기 자신이라는 고유한 문장으로

충분히 설명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좌표 19. 고유성

고유성은 새로워 보이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끝내 남아 버린 나의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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