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그리려다 망쳐버린 당신에게

— 노이즈의 가치

by 서히

오늘따라 붓질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공들여 매끈하게 칠해둔 화면 위에 예기치 않은 물감이 툭, 하고 떨어졌을 때
저는 습관처럼 ‘망했다’는 생각부터 했습니다.
곧바로 지우개와 깨끗한 붓을 찾으며,
이 어긋난 흔적을 없애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멈춰 서서 번져버린 그 자국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이 흔적을 반드시 지워야만 할까?”


창작을 하다 보면 우리는 늘 새로운 선택 앞에 서게 됩니다.
이 예기치 못한 흔들림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혹은 언제 다시 정돈할 것인가.
우연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특유의 어수선함을 바라보며
우리는 매번 망설입니다.

“이쯤에서 깔끔하게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너무 산만해 보여서, 미완성처럼 보이면 어쩌지?”

이때 우리 마음속에 끼어드는 불청객이 바로
‘노이즈(Noise)’입니다.


노이즈는 보통 제거해야 할 오류로 여겨집니다.
질서를 흐트러뜨리고, 메시지를 흐리며,
작업을 불완전하게 만드는 방해 요소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익숙한 방식으로 화면을 다시 매끄럽게 정리하고,
불필요해 보이는 흔적을 지우며,
작업을 누구나 이해 가능한 상태로 되돌려놓으려 애씁니다.

하지만 작업을 오래 지속하다 보니
바로 그 노이즈가 사라지는 순간,
함께 사라져 버리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긴장감,
말로 다 설명되지 않는 여운,
그리고 작업이 스스로 다른 방향으로 확장되려던
아주 미세한 생명력 같은 것들 말입니다.


노이즈는 단순한 혼란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계획과 현실이 결코 완벽하게 포개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정직한 증거입니다.

아이를 재우고 난 밤,
조용한 작업실에서 노이즈를 허용한다는 것은
마치 아이의 서툰 낙서를 지우지 않고
잠시 가만히 지켜보는 마음과 닮아 있습니다.
그 서툼 속에 오히려 진심이 담겨 있듯,
노이즈는 작업이 아직 살아 있다는 소중한 신호입니다.


흔들림을 견디는 힘

노이즈를 허용한다는 것은
작업을 일부러 망가뜨리는 방임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공들여 쌓아 온 질서가
과연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아주 치열한 과정에 가깝습니다.

조금 어긋나고 불편한 상태에서도
이 작업이 여전히 나의 언어로 버틸 수 있는지,
이 노이즈가 작업을 망치고 있는지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히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일입니다.


캔버스 위에서 노이즈는 분명한 얼굴을 가집니다.
의도적으로 남겨둔 불균형한 구도,
서로 잘 맞지 않는 색들의 거친 충돌,
리듬을 방해하는 듯 보이는 잔여의 흔적들.

이 모든 것을 완전히 제거해 버리면
작업은 비단결처럼 매끄러워집니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예측 가능해지고,
더 이상 작가 자신에게조차 아무런 질문을 던지지 않게 됩니다.


노이즈를 허용할 줄 알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설명하려 애쓰지 않습니다.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남아 있어도 괜찮다는 것,
그 불완전함의 틈 사이로 관객의 감각이 비로소 스며들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됩니다.


노이즈라는 이 좌표는
“어떻게 더 깔끔하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이 작업은 지금 어떤 혼란을 견디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인생도 가끔은 계획하지 않은 소음이 끼어들 때
더 입체적인 얼굴을 드러내곤 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하루에 끼어든 작은 실수 하나를,
지워야 할 오류가 아니라 ‘아직 살아 있다는 신호’로
한 번쯤 바라봐주면 어떨까요?




좌표 24. 노이즈

노이즈는 제거해야 할 오류가 아니라,
작업이 아직 살아 있다는 가장 솔직한 신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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