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을 그리다

- 내 안의 소음, 생명의 박동

by 서히

나는 소리에 예민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의 세상은 언제나 소리로 가득 차 있다.
그 소리는 들리지 않는 파동일 때도 있고,
때로는 귀를 막고 싶을 만큼의 소음이 되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 감각은 더욱 예민해졌다.
아이들이 내는 하이톤의 웃음과 울음, 말소리들은
사랑스럽지만 동시에 나를 지치게 했다.
하루의 대부분이 소리의 파도 속에서 흔들렸다.

결국 나의 일상은 그 수많은 소리들의 조율이었다.
또한 각각의 소리가 품고 있는 정서의 결을 맞추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은 내 회화에도 그대로 스며든다.

"내 작업은 정서의 결을 조율하는 과정이다.
흐르고 번지고 어긋나는 감정들을 조용히 들여다보며
하나의 리듬, 하나의 맥락으로 조율해 낸다.


소음을 시각화하다

세상은 언제나 조용하지 않다.
삶은 부딪히고, 터지고, 쏟아지고, 때로는 흩어진다.
그 소음 속에서 나는 때로 불안을 느낀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마음이 따라 흔들린다.
소음은 내게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온몸으로 체감되는 파동이다.

나는 이 감각을 작업으로 옮기고 싶었다.
소음을 시각화하는 일,
즉, 들리지 않는 파동을 색과 선의 진동으로 표현하는 것.
오랜 시간 이 주제를 붙잡고 작업하며 깨달았다.
"혼란은 생명의 전조(前兆)"라는 것을.


붓이 캔버스를 스칠 때 색은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겹겹이 번지고, 밀려들고, 때로는 부서진다.
그 파열의 순간에는 예측할 수 없는 형상이 나타난다.
때로는 어지럽고, 마치 망쳐버린 그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혼란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생명의 움직임을 본다.


우리의 내면 깊은 곳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심연은 늘 소음으로 가득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조차 무언가가 자라고 있다.
그것은 파열 속에서 피어나는,
조용한 생명의 리듬이다.


파열의 미학

전쟁 이후의 세계에서 예술가들은
‘조화’보다 ‘충돌’을, ‘고요’보다 ‘혼란’을 그리기 시작했다.
질서가 무너진 자리에서 새로운 언어가 태어났다.
소음은 혼란의 잔향이 아니라, 창조의 시작이었다.


질서 너머의 리듬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 은
물감을 흩뿌리는 행위를 통해 ‘질서 너머의 리듬’을 발견했다.
그의 화면은 폭발이자 기도였다 —
혼돈의 소리들이 하나의 호흡으로 수렴되는 공간.

Jackson Pollock, Number 5, 1948. Oil on canvas. © The Pollock-Krasner Foundation / Artists Rights



감정의 소음을 색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미국 출신 화가 조안 미첼(Joan Mitchell, 1925–1992) 은
감정의 소음을 색으로 번역했다.
그녀의 거친 붓질은 격정이자 노래였다.
자연의 리듬, 불안의 떨림, 사랑의 파편들이
서로 부딪혀 살아 움직였다.

Joan Mitchell, No Rain, 1976. Oil on canvas. © Estate of Joan Mitchell.



불확실함 속의 균형

독일의 현대미술가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1932– )는
색을 긁고, 덮고, 다시 지우며 소음의 잔향을 시각화했다.
그의 화면은 끊임없이 덮이지만,
그 아래층은 여전히 숨 쉬고 있었다.
그것은 파열 이후의 평형,
불확실함 속의 균형이었다.

Gerhard Richter, Abstract Painting 780-1, 1992. Oil on canvas. © Gerhard Richter.




세계의 소음, 데이터를 그리다

에티오피아계 미국 작가 줄리 메레투(Julie Mehretu, 1970– )는
도시의 지도, 속도, 흔적을 한 화면에 겹쳐낸다.
그의 작품은 세계의 혼잡한 데이터를
거대한 시각적 소음으로 번역한다.
그 혼란 속에서도 방향은 살아 있다 —
삶이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는 에너지처럼.

Julie Mehretu, Retopistics: A Renegade Excavation, 2001. Ink and acrylic on canvas. © Julie Mehretu.




나의 소음, 나의 생명

나의 작업 속 ‘소음’은 돌봄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것은 고요를 깨뜨리는 행위가 아니라,
삶을 견디게 하는 리듬이다.

빨래를 짜는 손의 힘, 물소리와 숨소리,
붓이 바닥에 부딪히는 작은 파열음 —
그 모든 미세한 진동들이 모여 내 세계를 만든다.

나는 종종 붓을 세게 눌러 긋거나
거칠게 색을 밀어붙인다.
그 과정에서 선이 부서지고,
면이 터지고, 물감이 튄다.
하지만 그 파열 속에서 나는 살아 있음의 증거를 느낀다.

소음은 나에게 고통의 언어이자
돌봄의 언어다.
누군가의 무게를 견디는 손의 리듬이며,
사라져 가는 것들을 끝까지 붙잡으려는 움직임이다.

서히,〈Resonance of Noise〉, 2024. 캔버스 위에 혼합 재료. 부서지고 번지는 소음의 결 속에서,



파열 이후의 리듬

소음은 언제나 무언가를 무너뜨리지만,
동시에 다른 무언가를 자라게 한다.
그 부서진 자리에서 새로운 색이 스며 나오고,
혼란의 끝에서 나는 나의 리듬을 듣는다.

삶도 그렇다.
우리는 고요를 원하지만,
결국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것은
그 불완전한 소음, 부딪힘, 파열이다.



작가 메모.

소음은 나에게 불안의 징후이자 생명의 박동이다.
부서지고 갈라지는 그 순간에도 세계는 여전히 살아 있다.
나는 그 틈에서, 새로운 감각으로 리듬을 듣는다.



당신은 어떤 소음 속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찾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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