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 부서진 관계 속 사랑

- 부서진 자리에서 피어나는 연민의 미학

by 서히


우리는 서로를 이해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어긋난 채 살아간다.
관계는 언제나 균열 위에 놓여 있다.

돌봄은 그 균열을 덮는 일이 아니다.
그 틈 사이에 머무르는 일,
상처 곁에 조용히 앉아 있는 일이다.


나는 돌봄을 완벽한 봉합이라기보다
부서진 채로 함께 머무는 용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온전히 치유할 수는 없지만,
그의 상처 옆에 머물며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존재의 온도를 배운다.


돌봄의 윤리 — 상처 곁에 머무는 용기

돌봄은 고치는 행위가 아니라
함께 버티는 일이다.

아이를 돌보는 일상은 끝없는 반복이다.
하루를 견디게 하는 손의 움직임,
누군가의 무게를 대신 지탱하는 호흡.
그 조용한 시간 속에서 나는 깨닫는다 —
예술 또한 돌봄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캔버스를 어루만지는 손끝,
색을 덧입히고 다시 지우는 과정 속에
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닮은 결을 본다.
돌봄은 결국, 세상을 다시 연결하려는
작고 느린 리듬이다.



파열 속에 인간성

미국의 현대미술가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1960–1988)는
도시의 균열 속에서 버려진 존재들의 목소리를 그렸다.
그의 언어는 비명 같았지만, 그 안에는 돌봄의 윤리가 숨어 있었다.
그는 파열된 세계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붙잡으려 했다.


바스키아의 화면은 혼란스럽고 폭발적이다.
그러나 그 혼란의 밑바닥에는
보이지 않는 자들을 향한 깊은 연민이 흐른다.
그의 낙서는 절규이자 기도였고,
파열된 세계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사랑의 언어였다.


Jean-Michel Basquiat, Untitled (Skull), 1981. Acrylic and oilstick on canvas. © Estate of Jean-Mic


틈, 그리고 돌봄의 공간

콜롬비아의 현대미술가 도리스 살세도(Doris Salcedo, 1958– )는
폭력과 상실의 기억을 ‘틈’으로 표현한다.
그녀의 설치작품 〈Shibboleth〉(2007)은
테이트 모던의 바닥을 가르는 거대한 균열이다.
그 틈은 절망이 아니라,
기억과 공감이 스며드는 돌봄의 공간이었다.

살세도는 봉합되지 않은 상처의 자리를 숨기지 않았다.
그녀의 작업은 고통을 치유하기보다,
그 고통이 존재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었다.


Doris Salcedo, Shibboleth, 2007. Installation view, Tate Modern, London.© Doris Salcedo.


근원의 사랑, 돌봄의 몸짓

독일의 조각가이자 판화가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 1867–1945)는
‘모성과 애도의 조형 언어’를 남긴 예술가였다.
그녀의 작품은 사회적 메시지를 넘어,
사랑과 상실이 교차하는 인간 존재의 근원을 응시한다.

그녀는 슬픔을 숨기지 않았다.
전쟁 속에서 아들을 잃은 이후,
그 고통을 감추는 대신,
‘품는 몸’을 통해 돌봄의 윤리를 조각했다.

〈Mother with her Dead Son〉(1938–39)은
부서진 세계 속에서도 ‘안아주는 몸’으로 남은
근원의 사랑을 형상화한다.
그 손과 몸짓 속에는
파괴 이후에도 인간을 지탱하는 돌봄의 힘이 깃들어 있다.


Käthe Kollwitz, Mother with her Dead Son, 1938–39. Bronze. © Käthe-Kollwitz-Museum Berlin.



나의 돌봄 — 부서진 자리에서 피어나는 사랑

나의 작업 속에서도 돌봄은 언제나 균열의 한가운데에 있다.
돌봄은 회복의 서사가 아니라,
상처와 함께 머무는 리듬이다.

지워지고, 덧남고, 부서진 색의 층위들.
그 모든 파편들이 모여 하나의 생명으로 이어진다.
누군가를 돌보는 손끝의 리듬과
캔버스를 어루만지는 붓의 떨림은 닮아 있다.

나는 오늘도 부서진 자리에서 색을 섞는다.
그 틈에서 사랑을 배운다.


돌봄은 그저 고요한 응답이다 —
사라지지 않으려는 마음의 미세한 진동.


서히, Flow into my heart, 2025. Mixed media on canvas.






작가 메모.

돌봄은 나에게 고통을 견디는 예술이다.
그것은 봉합이 아니라, 함께 부서지는 일.
그러나 그 부서짐 속에서, 또 하나의 생명이 자라난다.




"돌봄은 봉합이 아니라, 함께 부서지는 일:
그 부서진 자리에서, 당신은 어떤 사랑을 배우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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