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너머의 말들
가끔은, 내 안이 너무 깊어서
그 속을 끝까지 내려다볼 수 없을 때가 있다.
그곳은 빛이 닿지 않고, 말이 닿지 않으며,
오직 감각만이 존재하는 자리다.
나는 그곳을 ‘심연(深淵)’이라 부른다.
그곳에서 나는 ‘나’를 주체로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심연이 나를 바라보고,
내가 아닌 ‘무엇’이 나를 통과해 나를 그리게 한다.
그때 나는 깨닫는다.
예술이란, 내가 세상을 표현하는 일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통과하며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을.
‘심연(深淵)’이라는 단어는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가 사용한 개념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인간의 의식이 닿을 수 없는 내면의 공간,
즉 무의식의 깊은 바다를 바라보려 했다.
나는 그 철학 속 심연을 나의 회화로 끌어왔다.
나의 심연은 단순히 어둠과 혼란의 공간이 아니다.
그곳은 기억하지 못한 순간들의 언어,
한때 나를 스쳐갔으나 잊힌 감정들,
그리고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감각들이 살아 있는 자리다.
그것들은 때로 선의 형태로,
때로 색의 흐름으로 천천히 떠오른다.
나는 그것을 억지로 표현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기다린다.
심연이 나를 통과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그래서 나의 회화는 표현이 아니라 ‘소환(召喚)’에 가깝다.
잊힌 감각을 불러오고,
무의식의 언어를 다시 호흡하게 하는 일.
그것이 내가 ‘심연을 그린다’고 말하는 이유다.
심연은 언제나 고요하지 않다.
그 안에는 사랑과 상실, 희망과 두려움,
그리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수많은 파동이 뒤섞여 있다.
그 파동들은 내 안의 소음과 닮아 있다.
나는 그 미세한 울림에 귀 기울인다.
보이지 않는 결을 따라 선을 긋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진동을 색으로 남긴다.
그 보이지 않음 속에서
나는 오히려 더 선명한 세계를 본다.
그곳에서 나는 나를 존재하게 했던
누군가의 숨을 느낀다.
기억나지 않는 온기,
말로 남지 못한 사랑의 언어들이
여전히 내 안에서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숨결을 느끼며 선을 긋는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사랑의 흔적을 따라.
프랑스의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1966)는
존재의 본질을 ‘사라져 가는 형체’로 표현했다.
그의 인물상들은 거의 증발 직전의 인간처럼 서 있다.
살아 있으나 이미 사라져 가는 존재.
그는 말했다.
"나는 눈앞의 실재보다, 사라져 가는 인간의 그림자를 본다."
그의 작업은 심연을 향한 시선이었다.
그리고 독일의 화가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1945– )는
역사의 폐허 속에서 인간의 내면을 그렸다.
불타버린 대지와 무너진 구조물 속에서도
그는 ‘재로부터 피어나는 생명’을 보았다.
그에게 심연은 절망의 공간이 아니라,
다시 피어나는 생명의 근원이었다.
나의 회화에서 ‘심연’은 어둠의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불확실함 속에서 피어나는
나만의 자연, 내면의 생명체이다.
그곳은 고요하지만, 그 안에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생명의 결이 있다.
나는 종종 그 결을 따라 선을 긋고,
색을 쌓고, 다시 덮는다.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던 리듬이 드러난다.
그것은 나를 이끄는 힘이자,
세상이 내 안에서 숨 쉬는 방식이다.
심연 속에 부유하는 네모들은,
기억 저편에 남은 않는 사랑의 언어의 파편이자,
잊히지 않는 존재의 흔적이다.
작가 메모.
심연은 고요한 어둠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는 자리다.
나는 그 깊은 곳에서,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살아 있는
생명의 숨을 듣는다.
당신의 심연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나요?
고요 속에서, 혹은 혼란 속에서 —
당신은 지금 어떤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느끼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