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의 예술

- 지워지지 않는 돌봄의 시간

by 서히

붓이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시간이 남는다.
그것은 단순한 물감의 자국이 아니라,
한순간의 마음, 숨결, 망설임이 스며든 흔적이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지워진 것들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본다.
덧칠된 아래층에는 어제의 선이,
지워진 면에는 한때의 감정이 남아 있다.

그 자국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층으로 침잠해 나의 세계를 이룬다.


돌봄의 행위도 그렇다.
누군가를 위해 반복된 손의 움직임,
하루를 견디게 하는 작고 꾸준한 행위들.

그 행위들은 금세 잊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마음의 결 속에 남아
다른 존재의 바탕이 된다.


예술의 흔적이 그렇듯,
돌봄의 흔적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조용히 스며들어,
다른 생명에게 새로운 리듬으로 이어진다.


돌봄의 행위는 나의 일상의 주요 키워드다.
돌봄은 사랑의 행위이지만,
누구도 그 가치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그저 누군가의 삶의 모양 속에
조용히 흔적만을 남긴다.

그 조용하고 미세한 흔적만이, 유일한 가치다.

그렇게 남겨진 손의 리듬은 다시 나의 회화로 이어진다.
누군가를 돌보는 손길과,
캔버스를 어루만지는 손끝의 움직임은 다르지 않다.

돌봄의 반복 속에는 즉흥이 숨어 있고,
즉흥의 제스처 속에는 돌봄의 행위가 묻어 있다.


돌봄도, 즉흥도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흔적(Trace) 이 남는다.
그 흔적은 단순한 자국이 아니라,
감각이 지나간 시간의 그림자다.


나는 그림을 그릴수록, 남는 것보다 지워지는 것이 더 많았다.
지워진 자리에는 미세한 결이 남고, 그 위로 또 다른 색이 쌓였다.

나는 그 흔적 속에서
내가 쏟았던 마음의 크기와
그 크기만큼의 시간의 가치를 발견했다.

흔적은 사라짐이 아니라, 존재가 한때 머물렀던 증거였다.


흔적의 예술, 존재의 기억

예술의 역사에서 ‘흔적’은 단순한 잔여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 있음의 증명, 혹은 부재의 기록이었다.

전쟁, 제2차 세계대전( 1939–1945) 이후,
예술은 더 이상 완벽한 형태를 추구하지 않았다.
인간의 불완전함과 시간의 상처 —그 모든 자국이 새로운 언어가 되었다.


루이즈 부르주아 — 상처를 꿰매는 손

프랑스 출신 현대 예술가,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는
어머니의 바느질과 봉합 행위에서 "돌봄(Care)"의 본질을 보았다.

그녀의 조각 〈Maman〉(1999)은 어머니의 손길을 닮은 구조다.
거미의 다리는 위협적이지만 동시에 보호적이며,
그 안에는 수많은 감정의 실이 얽혀 있다.

부르주아에게 봉합은 상처를 덮는 일이 아니라,
부서진 관계를 다시 이어 붙이는 사랑의 행위였다.

Louise Bourgeois, Maman, 1999. Bronze, stainless steel and marble ©The Easton Foundation




로버트 라우션버그 — 지움으로 남긴 존재

미국의 현대예술가이자 개념예술가로도 알려진 로버트 라우션버그(Robert Rauschenberg, 1925–2008)의
〈Erased de Kooning Drawing〉(1953)은
‘지우기’ 자체를 예술로 전환시킨 대표적 작품이다.

그는 빌렘 드 쿠닝의 드로잉을 완전히 지워버렸지만,
그 공백 속에는 여전히 그림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라우션버그는 부재의 자리에서 새로운 존재의 가능성을 보았다.
사라짐조차 또 다른 창조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Robert Rauschenberg, Erased de Kooning Drawing, 1953.© Robert Rauschenberg Foundation.


흔적의 예술, 돌봄의 감각

이처럼 흔적의 예술은 ‘남은 것’이 아니라 ‘사라졌던 것이 남긴 감각’을 드러낸다.

그 감각은 돌봄의 손끝과 닮아 있다 —
조용하지만, 확실히 존재를 증명하는 움직임.


나의 작업에서의 흔적

나의 회화에서도 흔적은 중심의 언어다.
나는 배경을 칠하고, 덧칠하고, 다시 지운다.
그 과정에서 남겨지는 색의 틈,
불완전한 자국들은 돌봄의 시간처럼 조용히 숨 쉬고 있다.

지워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
덮였지만 여전히 밑에서 빛나는 색의 층위.
그것이 나에게 존재의 지속이다.


돌봄은 완벽히 치유하는 행위가 아니라,
남겨진 흔적을 품고 함께 머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워진 선과 덧남은 나의 하루와 닮아 있다.
그 안에는 돌봄의 피로, 시간의 흔들림,
그리고 다시 피어나는 생명이 있다.


서히, 조율의 풍경, 연작 #4, 2025. Mixed media on canvas.


존재는 흔적 속에 머문다

예술가가 남긴 흔적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계속 살아 있다.

그림의 표면에 남은 미세한 붓의 결,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손의 떨림,
그 모든 것은 존재가 지나간 자리다.

부르주아가 실로 상처를 꿰맸다면,
나는 선과 색으로 마음의 틈을 봉합한다.

나의 흔적은 돌봄의 언어이고,
돌봄은 결국 존재를 기억하게 하는 예술이다.



작가 메모.

지워지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들,
그 사이에 남은 흔적이 바로 나의 회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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