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Improvisation)에 대하여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 나는 늘 막막했다.
무엇을 그려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막막함 속에서 문득 깨달았다.
"삶도 추상이다, 공식이 없다"
선명한 길은 없었고, 때로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삶은 언제나 불확실했다.
그러나 나는 그 불확실한 세계에 응답하듯 선을 그었다.
보이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
내 안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진동과 이끌림에 반응하며 그려나갔다.
추상(Abstraction) 은 나에게 혼란이 아니라 응답의 방식이었다.
그것은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세계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감각에 반응하는 일.
그 응답의 형태가 바로 '즉흥(Improvisation)'이었다.
전쟁 이후,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은 인간의 이성과 질서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렸고,
세계는 더 이상 예측할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
그 불확실한 세계 앞에서 예술가들은
정확히 그릴 수 없는 것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추상(Abstraction)’ 의 시작이었고,
그 안에서 태어난 가장 중요한 언어가 ‘즉흥(Improvisation)’이었다.
혼란 속의 리듬을 그린 화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 은 물감을 흩뿌리며 말했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 안에 들어간다.
그의 행위는 통제의 언어가 아니라 응답의 언어였다.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몸의 리듬으로 세상에 반응하는 예술.
그것이 불확실함에 대한 예술가의 첫 번째 응답이었다.
감정의 흔적을 선으로 기록한 미국 화가, 사이 톰블리(Cy Twombly, 1928–2011) 역시
즉흥적인 선으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화면 위에 남겼다.
그의 선들은 실수 같지만,
그 안에는 세계와의 공명, 그리고 내면의 떨림이 살아 있었다.
나의 작업에서도 즉흥은 늘 중심에 있었다.
나는 계획하지 않는다.
먼저 배경을 칠하고, 거기서 드러나는 선을 따라간다.
어떤 날은 부드럽고, 어떤 날은 거칠다.
나는 그 변화를 통제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감각이 스스로 길을 찾아가도록 내버려 둔다.
그것은 나의 방식으로
불확실한 세계에 응답하는 일이다.
즉흥이란 무계획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리듬을 발견하는 과정이며,
혼란을 하나의 흐름으로 바꾸는 일이다.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일 현대미술가,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1932– )는 말했다.
"모든 것은 모호하고, 모든 것은 동시에 가능하다."
그의 말처럼, 세상은 언제나 모호하고 불확실하다.
하지만 바로 그 모호함 속에서
예술은 스스로의 리듬을 찾아간다.
나의 그림도 그 불확실성을 통과하는 중이다.
삶은 추상이고, 추상은 결국 응답의 연속이다.
나는 그 속에서 즉흥적으로 선을 긋는다.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멈추지만,
그 모든 순간이 세계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
즉흥은 나에게 단순한 회화의 방식이 아니다.
그것은 불확실한 세계에 감각으로 대답하는 태도다.
삶의 예측할 수 없는 리듬 속에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응답한다.
하나의 선으로, 하나의 색으로,
이 불확실한 세계에 나의 리듬을 남기며.
불확실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안에서 나만의 리듬을 찾아가는 일,
그것이 내가 예술을 통해 세상에 대답하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