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손에서 깨어나는 사유로
“예술을 잘하려면 타고나야 할까?"
그리고 “나는 예술에 재능이 있는 걸까?”
이 질문은 내가 나에게 끊임없이 던져온 물음이었다.
어릴 적 나는 그림 그리는 재주가 특별히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다.
내게 그림은 늘 어렵게 느껴지는 일이었다.
눈앞의 사과를 똑같이 그려내야 한다는 그 방식이
왜 그래야 하는지, 나에게는 그리 흥미롭지 않았다.
선을 긋는 일, 색을 고르는 일조차
왠지 정답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를 낳고,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던 어느 날,
나도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문득 피어났다.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리는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씩 깨달았다.
“그림, 회화라는 매체로도 나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구나.”
그 깨달음이 나를 지금의 자리까지 이끌었다.
예술은 그렇게 내 안에서 천천히 깨어났다.
그건 갑작스러운 재능의 발견이 아니라,
삶 속에서 감각이 조금씩 열리고 자라나는 과정이었다.
예술의 재능은 타고나는 걸까?
이 물음은 예술가와 관객 모두에게 오래된 숙제였다.
우리는 ‘천재 화가’, ‘신이 내린 손’, ‘음악의 신동’ 같은 말속에서
예술을 선택받은 사람만의 영역으로 믿어왔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은 예술의 문 앞에서 쉽게 멈춰 섰다.
“나는 재능이 없어.”
“그림을 못 그려서.”
“음치라서.”
그 말들은 오랫동안 예술의 문턱을 높여왔다.
하지만 정말 예술은 타고나야만 할 수 있는 걸까?
19세기말, 카메라가 세상을 정밀하게 복제하기 시작하자
예술은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섰다.
“이제 예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1917년,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일상의 변기를 전시장에 올려놓으며
예술의 개념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그의 〈샘(Fountain)〉은 손재주로 만든 작품이 아니라, 기성품을 예술로 제시한 ‘레디메이드(ready-made)’ 즉 ‘사유로 구성된 예술’이었다.
그때부터 예술은 기술에서 철학으로,
결과에서 과정으로, 형태에서 의미로 이동했다.
‘얼마나 잘 그리는가’보다
‘무엇을 탐구하고 왜 표현하는가’가 더 중요해졌다.
그렇다면 지금의 예술에서 ‘재능’이란 무엇일까?
현대의 예술에서 재능은 손끝의 능숙함이 아니라,
사유하는 힘, 감각을 깨우는 눈, 실험하는 용기다.
기교는 배울 수 있지만,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힘은 삶 속에서 서서히 깨어난다.
그 깨어남은 어떤 사람에게는 색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선으로, 혹은 한 줄의 침묵으로 드러난다.
그것이야말로 예술가가 길어 올려야 할
진짜 재능이다.
철학자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 – 1961)는 말했다.
“우리는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우리 안에서 스스로를 보고 있다."
다시 나의 언어로 설명하자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나의 감각을 통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느낀다.
“나는 예술을 보고 있는 게 아니다. 예술이 나를 통해 빛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 말처럼 예술은 관찰이 아니라 '감응(感應)'이다.
감응이란 세상을 느끼고, 거기에 응답하는 능력이다.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살아가며 길러지는 감각이다.
사이 톰블리(Cy Twombly, 1928 – 2011)는 말했다.
“그림은 단순히 형태가 아니라 감정의 기록이다.”
즉흥적으로 튄 선, 멈칫한 붓자국,
어디에도 닿지 못한 색의 흔적들 —
그 모든 것은 내 안의 리듬이 세상에 응답한 흔적이다.
조안 미첼(Joan Mitchell, 1925 – 1992)은 말했다.
“감정은 색으로 남는다.”
그녀의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내 작업실의 색들을 떠올렸다.
그 색들은 나의 하루, 나의 고백,
그리고 나의 불안이 쌓인 시간이었다.
예술은 타고난 손끝에서 나오지 않는다.
삶을 바라보는 눈,
불안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마음,
그리고 세계와의 끊임없는 대화에서 비롯된다.
예술은 특별한 사람의 영역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세상을 진지하게 바라보려는 사람만의 특별한 언어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잠들어 있던 감각이 깨어나는 순간,
비로소 스스로를 향해 말을 걸기 시작하는 과정이다.
예술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며 천천히 깨어나는 감각의 언어다.
그 문을 여는 열쇠는 언제나 우리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