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춤함의 자리에서

프롤로그

by 서히

가끔은 붓을 잡은 손끝이 멈칫한다.

이 길을 계속 걸어도 될까.

나에게 자격이 있을까.

나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고,

이제 막 작가로 발걸음을 뗀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불안이 물결처럼 밀려온다.


하지만 그 주춤함의 순간마다

나는 다시 예술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건 단순한 의지가 아니라,

내 안의 어떤 ‘소리’아직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나를 다시 불러내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 역시 그것이 너무 멀고 어려워 보였다.

갤러리의 흰 벽 속에 걸린 선과 면, 낯선 흔적들은

처음엔 아무 말도 걸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래 바라보면, 그 안에는

삶의 흔적이 있고, 감정의 리듬이 있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그러나 분명 존재하는 언어.

나는 그 언어를 나의 감각으로 다시 말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의 작업은 언제나 주춤함에서 시작된다.


확신보다 망설임이 앞서고,

형상보다 감각이 먼저 다가온다.

즉흥적으로 칠해진 색의 울림,

겹겹이 쌓여 지워진 선의 흔적 속에서

나는 불확실한 생명의 리듬을 듣는다.

그 리듬은 조용하지 않다.


삶의 소음과 닮아 있고,

돌봄과 피로, 사랑과 불안이 한꺼번에 섞여 있다.

그 혼란 속에서 예술은 살아난다.

나는 그 소음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 속에서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감정의 움직임이

내 그림의 언어가 된다.

나는 지금도 완성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내가 멈춰 선 그 자리,

‘주춤함’의 자리에서 다시 붓을 든다.


현대미술이 너무 멀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그 불완전한 순간 속에도 예술의 숨이 살아 있음을

나의 언어로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금은 불안한 마음으로, 그러나 진심을 다해

현대미술을 나의 언어로 다시 말해본다.




작가 메모.

“예술의 시작은 확신이 아니라 주춤함에서 비롯된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