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어떻게 언어가 될 수 있는가

― 발화 이전, 숨결로 남는 말의 흔적

by 서히

말은 생각보다 늦게 도착한다.
감정이 먼저 오고, 떨림이 먼저 오고,
어떤 움직임이 마음 안에서 일어난 뒤에야
비로소 말이라는 형식이 따라온다.

나는 종종 말이 되기 전의 상태에 오래 머문다.
그 상태는 모호하고, 불완전하고, 잡히지 않는 감각으로 가득하지만
묘하게 명료한 어떤 ‘시작의 자리’를 품고 있다.


그림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다.
형상이 먼저 오는 것이 아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작은 숨 같은 것이
캔버스 위로 먼저 떠오른다.
나는 그 숨의 방향을 따라가며 선을 긋는다.

그래서 나는 선을 그릴 때마다
‘발화 이전의 숨’을 그리고 있다고 느낀다.

말이 되기 직전의 떨림,
언어가 되기 전의 감정,
내 안에서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무엇.


사이 톰블리, 언어 이전의 세계를 그리다

미국의 추상회화작가 사이 톰블리(Cy Twombly)는 말했다.

“My line is childlike but not childish.”
내 선은 유아적이지만 유치하지 않다. — Victory 인터뷰(2007) 중에서

그의 선은 휘갈긴 낙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감정이 언어로 굳기 이전의
원초적인 발화 에너지가 숨어 있다.


그 대표작 중 하나인 < Untitled (Blackboard)> ,

회색의 칠판 같은 화면 위에서 흰 선들은

중단과 재시작, 속도와 머뭇거림을 반복하며
말보다 먼저 도착한 감정의 떨림을 그대로 남긴다.


Cy Twombly, Untitled (Blackboard series), 1970. Oil and chalk on canvas

나는 그의 화면 앞에서 종종
내가 그리고 있는 ‘미음(ㅁ)’의 기원을 떠올린다.
완성된 글자가 아니라,
그 글자가 태어나기 직전의 작은 떨림.
선이 발화되기 직전의 숨.

톰블리의 선은
‘말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말로 되기 전의 충동’을 그린다.
나는 그 점이 너무 깊이 와닿는다.


나의 ‘미음(ㅁ)’은 근원의 숨이다

나의 ‘미음(ㅁ)’의 기원은 아기의 첫 발화에서 시작된다.

아기들이 말을 하기 전,
그들을 향해 쏟아지는 수많은 말과 마음이 있다.
부르는 소리, 어루만지는 말, 애정의 손길들.
그 따뜻한 언어들이 쌓여
아기의 첫 발화를 밀어 올린다고 나는 믿는다.


신기하게도 거의 모든 아기들은
‘ㅁ(미음)’ 사운드로 첫 말을 시작한다.
“마마”, “맘마”, “엄마.”

그 소리는 생애 최초의 관계에서 태어난
사랑의 발화이자 세상으로 나오는 첫 울림이다.


그래서 나에게 ‘미음(ㅁ)’은
단순한 자음이 아니라 마음의 기원이다.
우리의 무의식 깊은 곳에 저장된 돌봄의 기억,
언어 이전의 감정,
아직 말이 되지 못한 마음의 숨 같은 것.


내 작업에서 ‘미음(ㅁ)’은
소리보다 먼저 일어나는 근원의 울림이다.
아직 말이 아니고,
아직 밖으로 나오지 않은 감정의 씨앗 같은 존재.

캔버스에 떠다니는 네모의 형상들은
발화되지 못한 채 오래 머물던 감정들이
조용히 모양을 갖춰가는 순간들이다.


말을 갖기 전의 단단한 숨,
그 숨이 밀고 나와 남긴 기척.

그래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완성된 언어를 쓰는 일이 아니라
말이 되기 직전의 감정을 붙잡는 일이라고 나는 느낀다.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떨림을 그리며

발화 이전의 숨을 따라가다 보면
말로 기록되지 않은 감정의 층들을 만나게 된다.
그 층은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이 그림이라는 방식으로 드러날 때
나는 비로소
말하지 않아도 말이 되는 세계를 경험한다.

예술은 언제나
말이 도착하기 전의 침묵 속에서 시작된다.
그 침묵 속에서 떨리는 숨을 붙잡는 일,
그 떨림이 언젠가 어떤 형태가 될지 모르는 채
그냥 존재하도록 두는 일.

그리고 나는 알게 된다.
말보다 먼저 도착한 감정의 떨림이 형상이 될 때,
예술은 자기만의 언어가 된다는 것을.


Seohee, <마음의 기원> 2025, Acrylic painting on canvas




작가메모

말보다 먼저 도착한 감정의 떨림이 형상이 될 때,
예술은 자기만의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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