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어떻게 색과 선으로 남는가?

- 나와 타자, 그리고 세계

by 서히

내가 감각하는 세계는 소음으로 진동한다.
존재가 부딪히는 소음, 사랑이 짓는 소음,
그 두 겹의 울림이 나의 내면을 흔든다.


나는 그 진동을 음악처럼 듣고,
점과 선, 면으로 작곡하듯 화면 위에 옮긴다.
이 감각은 결코 ‘혼자 있음’의 감각이 아니다.
고립된 감각이 아니라,
외부 세계와의 끝없는 반응 속에서만 존재하는 감각이다.


사물이든, 타자든, 자연이든
세계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기에
나는 감각하고,
그 감각의 반응 속에서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관계는 선을 흔들고, 색의 온도를 바꾼다

우리는 누구도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감정도, 사고도, 기억도
늘 누군가와의 관계 안에서 반응하고 흔들리며 만들어진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예술은 나 혼자만의 언어가 아니라
타자와의 무수한 접촉에서 비롯된 흔적이다.

내 작업을 돌아보면
선의 방향, 색의 농도, 화면에 남은 빈자리까지
그 모든 곳에
타자와의 관계가 남긴 미세한 진동이 숨어 있었다.


어떤 관계는 선을 부드럽게 하고,
어떤 관계는 선을 갑자기 꺾어버린다.
어떤 말은 색을 밝게 하고,
어떤 침묵은 색을 가라앉게 한다.

나는 작업 중 자주 놀란다.
“왜 이 선이 이쪽으로 갔지?”
그 이유는 대부분
나와 타자 사이에서 일어난 아주 작은 감정의 흔들림이었다.


타인의 말은 내 화면에 작은 파동을 남긴다

우리는 수많은 말을 듣고 살아간다.
그 말들은 금세 사라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면 깊이 스며들어
하나의 레이어가 된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색을 조금 더 밝게 만들기도 하고,
또 어떤 말은
그려내는 속도를 멈추게 하기도 한다.


내 화면에 떠다니는 네모의 흔적들은
나를 지나간 타인의 말,
타인의 표정,
타인의 감정이 남긴 보이지 않는 조각들이다.


관계는 말보다 오래 남는, 색과 선으로 말하는 내면의 언어다.

예술에는 뚜렷한 흔적으로 남는다.


상처와 사랑도 모두 흔적으로 남는다

관계는 항상 따뜻하지 않다.
때로는 상처를 남기고,
때로는 미완의 감정을 남긴다.

하지만 나는 깨닫게 되었다.
그 모든 흔적이
결국은 나의 감각을 확장시키고,
색과 선을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간다는 사실을.


상처는 선의 떨림으로 남고,
따뜻함은 색의 빛으로 남는다.
부딪힘은 레이어의 겹으로 남고,
침묵은 화면의 빈 여백으로 남는다.


관계는 결국
나와 세계를 이어주는
가장 근원적인 흔적의 언어다.


나와 타자, 그리고 세계의 조용한 연결

예술을 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그리는 일이 아니라
‘나와 세계의 관계’를 그리는 일이다.


내가 어떤 색을 쓰고,
어떤 선을 긋고,
어디에서 멈추고,
어디를 비워두는지는
모두 관계에서 비롯된 선택들이다.


내가 감각하는 세계는
혼자 있는 고립의 세계가 아니다.
타자, 사물, 자연, 소음, 마음…
수많은 존재들과의 진동 속에서만
나의 감각은 살아난다.


그래서 나는 믿게 되었다.
예술은 고독 속에서만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만남에서 건너온 감정들이
조용히 쌓여 만들어지는 또 하나의 언어라는 것을.




작가메모.

관계는 보이지 않지만, 색과 선은 그것을 절대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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