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 예술이 될 수 있을까?

- 돌봄의 소리

by 서히

돌봄은 조용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끝없는 소음의 한가운데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아이를 돌보며 처음 알게 되었다.
돌봄은 고요한 헌신이 아니라
끊임없이 밀려오는 소리를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아이들의 울음, 부르는 소리,
부서지는 듯한 뛰어다니는 소리,
설거지, 청소기, 세탁기의 반복되는 운행음.


하루는 그렇게
수많은 소리들이 얽히고 부딪히며 지나간다.
돌봄의 현장은
고요와는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소음 속에서만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
피로와 압도감 사이에서
어딘가 미묘하게 살아 있는 생명의 에너지.
그것을 붙잡고 싶어
나는 소음을 그리기 시작했다.


돌봄의 노동에는 ‘형체’가 없다

돌봄의 노동은 남지 않는다.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정리하고, 치우고…
그 모든 일들은
해낸 만큼 흔적이 사라지는 노동이다.

보이지 않고, 기록되지 않고,
누구에게도 명확히 측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질문하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노동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
흔적이 남지 않는 노동의 감각을 예술로 번역할 수 있을까?

내가 그리는 소음은 사실 ‘돌봄의 감각’이다.
겹겹이 쌓였다가 사라지는 소리들,
감정의 파편들,
몸의 피로가 작은 떨림으로 남는 순간들.


돌봄의 노동은
결국 관계의 가장 깊은 층을 형성하는 일이다.
그 층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 존재의 밑바닥을 만든다.


그래서 나는 그 보이지 않는 층을
색과 선, 레이어로 붙잡아두고 싶었다.


소음은 어떻게 생명의 바탕이 되는가

돌봄은 고통스럽고 무겁고 때로는 사라지는 노동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소음 한가운데에 서 있으면
‘어떤 것’이 자란다.

그것은 나도 모르게
내 깊은 곳을 밀어 올리는 힘,
타인을 살게 하는 생명의 에너지다.


내 작업 속에서 소음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누군가를 살아가게 하는 숨은 에너지다.


소음을 그릴 때
선들은 부딪히고 파열되고 흐트러지지만
그 끝에는 항상
반짝이는 작은 형체가 남는다.
새싹처럼, 불꽃처럼,
근원의 빛처럼.


돌봄이라는 노동이
결국 타인의 삶을 지탱하는 밑바탕이 되는 것처럼
소음도 캔버스의 밑바닥을 형성한다.


돌봄은 파편이지만, 동시에 근원이 된다.

돌봄의 노동은 나를 파열시키기도 했다.
나라는 주체는 미세하게 찢어지고
조각나고 사라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파편들은
아이의 시간, 타인의 삶,
어떤 생명에게는
밑거름이 되어주고 있었다.

나는 그 역설을 붙잡고 싶었다.

소음은 주체를 사라지게 하지만,
그 주체의 파편은 타인의 땅이 된다.

돌봄의 노동은
파편처럼 흩어지지만
그 파편 위에서 새로운 생명이 자라난다.


그 모순과 진실을 그리기 위해
나는 다시 소음 속으로 들어간다.


보이지 않는 일이 가장 깊은 언어가 된다

예술이란
보이는 것만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돌봄은 언어가 되기 어려운 노동이다.
그러나 그 감각을 붙잡아
선과 색, 레이어로 남겨놓는 순간
돌봄은 하나의 예술적 언어가 된다.


그때 비로소 깨닫는다.

보이지 않는 노동 또한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작가메모.

사라지는 노동의 감각을 기록하는 일,
그 또한 예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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