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 시간이 쌓이며 드러나는 내면의 결

by 서히

깊이라는 말은 늘 나를 멈춰 세운다.
무엇이 깊음이고, 무엇이 얕음일까.
그 경계는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그림을 배워가면서 가장 혼란스러운 순간은
화려한 기교나 복잡한 구성이 ‘깊어 보이는 것처럼’ 느껴질 때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게 되었다.
깊다는 것은 단순히 많은 것을 쌓아 올렸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감정이 오래 머물러 있었다는 흔적이라는 것을.


침묵의 추상화가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 1912 – 2004)은 말했다.

“Beauty is the mystery of life.”
아름다움은 삶의 신비이다.

그녀의 작품을 보면 이 말의 뜻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예를 들어 그녀의 초기작 〈White Flower, 1960〉은
얇은 연필 격자 위에 아주 미세한 색의 떨림이 얹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고요한 무게가 스며 있다.
선과 색이 무엇을 ‘표현’ 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랜 기다림과 머무름이 그 표면에 잔잔하게 가라앉아 있기 때문이다.


아그네스마틴.jpeg Agnes Martin, Untitled #5, 1998 Acrylic and graphite on canvas


마틴은 깊이를 기교로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반복과 침묵, 절제된 선 속에서
감정의 미세한 떨림이 잠시 머물 자리를 만들었다.
그녀의 깊이는 화려함이 아니라 머무름의 시간에서 왔다.


그 말이 나에게도 깊이 남았다.
신비는 설명하려 애쓴다고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래 바라보고 머문 자리에서
아주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
그것은 내가 그림을 대하는 태도와도 닮아 있었다.

나는 즉흥적으로 배경을 칠하고,
그 위에 떠오르는 선의 흐름을 따라간다.
그 과정은 혼란스럽고 불확실하다.
하지만 바로 그 불확실함을 견디고 바라보는 시간 속에서
깊이라는 것이 조용히 스며들기 시작한다.


깊이는 화려함에서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지워내고, 다시 기다리고, 멈추는 시간 속에서 자라난다.
한 번 지나간 자리를 다시 돌아보고,
이미 그은 선을 응시하고,
겹겹이 쌓인 흔적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행위 속에서
작지만 분명한 무게가 만들어진다.


나는 종종 캔버스 앞에서 묻는다.
“여기가 맞는 자리일까?”
“더 손을 대야 할까, 아니면 멈춰야 할까?”

그 질문을 반복하며 머무는 시간만큼
그림에는 아주 얇지만 확실한 층이 생긴다.
그 층은 물감의 두께가 아니라
내가 머문 마음의 밀도이다.


어쩌면 깊이는
어떤 뛰어난 기술의 결과가 아니라,
‘머물 수 있는 능력’ 인지도 모르겠다.
불안을 밀어내지 않고,
확신이 없어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정답이 없어도 바라보고 있는 마음.
그 마음이 시간을 통과해
깊이로 변한다.


우리는 흔히 시간을 들이면 깊어진다고 말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시간이 지나가도록 나를 그 자리에 붙잡아둔 감정,
그 감정이 깊이를 만든다.


나에게 깊이는
단순히 오래 그린 흔적이 아니라,
오래 머문 마음의 무게다.

깊이는 닿으려 애쓴다고 오지 않는다.
그저 시간을 통과한 자리에서만,
조용하게, 그러나 또렷하게
자신의 얼굴을 드러낸다.



작가메모.

깊이는 오래 그린 흔적이 아니라, 오래 머문 마음의 무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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