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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의 단비 Aug 05. 2021

보통의 존재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아니한 중간 정도

‘보통’

 :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음. 또는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아니한 중간 정도


  ‘보통’의 사전적 의미는 다소 억울한 감이 있다. 세상에 통용되는 ‘보통’이란 대개 평범하거나 보편적인 것을 나타나기 위한 표현법으로 여겨지는데, 보통이 주는 균형과 안도를 느껴본 사람은 그 위력을 잘 알고 있을 터다. 나는 어느 것 하나 보통의 것을 가진 것이 없다. 내가 가진 것과 나의 모습을 이루고 있는 것 중에는 보통이라 할 것을 찾기 어렵고 살아온 서른여섯 해 중 어느 해도 보통의 해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늘 화려하고 생생하다.


 주말 저녁, 우리는 삼겹살집에서 만났다. 

  남녀의 첫 만남에 하얀색 형광 불빛과 비릿한 생고기 냄새가 그윽한 삼겹살집은 사실 여자인 내게 유리한 선택은 아니었다. 하이 얀 테이블 매트가 깔려 우아하게 포크를 쥘 수 있는 곳으로 장소를 정할까 했지만 깍듯한 예의로 띄어쓰기까지 갖춰 쓴 그와의 첫 문자에 나는 오히려 편안한 삼겹살집을 택한 것이다. 과하지 않은 계산된 옷차림과 화장을 하고 본래 목요일 만남이 예정되었으나 사정 상 미루게 된 그가 밥을 사겠다는 문자에 나는 괜찮은 와인 한 병을 준비했다. 서른일곱의 나이와 서울의 평범한 4년제 대학교 스펙, 외국계 기업을 다니는 보통의 직장인을 만나보겠냐는 오랜 지기의 권유에, ‘보통의 평범한 남자’가 보통, 평범과는 거리가 있는 서른여섯의 노처녀를 만나줄 리 만무하다는 답변으로 손사래를 쳤는데 다음 날 그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도착했다. 단지 그의 사진이 썩 마음에 들었고 186cm의 키에 좋아하는 하이힐을 신고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 팍팍한 노처녀의 삶에 잠시 꽃바람 부는 적당한 주말을 보낼 수 있겠다는 그저 그뿐의 기대와 함께. 


  10분 일찍 도착한 식당에 먼저 와 기다리고 있는 예의 바른 남자에게 인사를 건네자마자 물었다. 어느 것 하나 서로 비슷한 것 없는 자리에 ‘도대체 왜 나온 것이냐’ 고. 그도 궁금했던 서로의 공통된 질문에, 보통의 정서가 궁금했다는 나와 여유로움의 정서가 궁금했다는 그는 오늘 서로를 구경 나온 것이다. 덧붙여 서로의 외모가 적당히 마음에 들었다는 삼십 대 후반의 나이 값이 주는 솔직함도 있었다.


  세상살이는 잠시의 소풍 즈음으로 여기며 부끄럽게도 현실에서 발을 띄우고 사는 나는 언제나 호사스러움이 있다. 스치는 것이라도 내 마음이 쓰이는 것은 지나치지 못하는 끝없는 동정이 내 것이라면 그에게는 잘 알지 못하는 것은 그 안의 상처가 무엇인지 모르니 함부로 동정하지 않는다는 정도가 있었다. 날 것 그대로의 표현력이 나의 것이라면 절제되어 정제된 표현이 그의 것이다. 집중력을 발휘해야 할 때가 아니라면 반쯤 나사를 풀고 웃고 사는 나와 매 순간 집중해야 하는 그에게 가끔의 여유가 호사라는 점도 참 달랐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보고 어릴 적 내 가난의 단칸방은 어느새 추억이 되었고 저택에 사는 여주인공 연교의 냄새를 풍기며 눈물짓는 감상평이 나의 것이라면 과외를 하기 위해 서류를 위조하는 기우의 자세에 현실성을 보태는 그의 모습이 있었다. 다름의 차이에 이질감을 느낄 줄 알았는데 서로를 관조하는 대화에 어느새 가계는 문을 닫는다고 했다. 요즘 통 걸어본 적이 없다는 말에 식당을 나서 걷기 시작했다. 오후 6시에 만난 우리는 새벽 2시가 넘어 헤어졌다. 대수롭지 않던 만남이 별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새벽녘 하늘에 걸려있었고 우리는 다음 날 교회를 같이 가기로 약속을 남겼다.


  그와 나는 41일째 함께이다. 

  긴장이 존재하는 선선한 관계의 건강함과 보편의 룰이 주는 안정을 배우고 있다. 지하철 요금을 아냐고 물어 모른다고 멋쩍게 웃는 내게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카드만 찍을 줄 알면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며 융통성을 말한다. 주차 자리도 자주 잊고 길도 자주 잃어버리는 내게 다른 생각이 많아 사소한 것은 담지 않는 것이라며 통 큰 매력이 멋있다 한다. 현실의 부침에 작아지는 마음 밭을 볼 때면 서글플 때가 있는데 나의 넘치는 마음 밭을 보기만 해도 화사해진다 한다. 나를 소공녀라 부르며 풍부한 상상과 올바른 심성을 가진 사람이니 자신을 더욱 사랑하라 독려해주기도 하고 나의 매력은 너무나 다양하다며 이효리의 소란스러움과 화려함을 묵묵히 담아내는 이상순 같은 남자를 만나야 하지 않겠냐 묻는다.


  보통의 존재와 함께 나의 서른여섯 번째 가을은 그토록 바라 왔던 보통의 가을이 되어가고 있다. 적어도 이번 가을은 주차 자리를 잃어 헤매면 찾아주는 사람이 있고 그토록 좋아하는 떡볶이를 매일 같이 먹어주는 짝꿍이 있으니 나는 그것으로도 족하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마음의 습기를 날려주고 있다.

이것이, 행복임을.  



2019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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