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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비주 Jul 20. 2024

네 번째 시집을 준비하면서

생각해 봅니다.

시를 쓴다는 것에 대해서.

시를 쓰는 사람의 성향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니다.

글은 그 사람이니 각기 그 사람에 걸맞은 표정을

갖고 나옵니다.

그 표정이라는 게 자기만의 무늬이니, 똑같은

이야기나 가르침을 받고도 각기 다다른 모습으로

나오니 참으로 신기합니다.


아이들을 학원에서 가르치면서

느낀 건 똑같은 방식으로 아이를 가르칠 수도

없거니와 아이들이 받아들 일 수도 없다는 겁니다.

맞춤교육이라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보다 더 좋은 건 자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터득해서 자기 것이 된다면 아주 바람직한 일이죠.


요즈음 미술 강좌를 듣다 보면 예술이란 똑같은

명제를 다루게 됩니다.

현대예술의 나아갈 길과 현장에 있으면서 추구해 보는

새로운 시도들은 미술계에서도 예술의 시사성과 방향성을 추구하는 앞선 이들의 노력입니다.

늘 새로운 탄생은 위험을 가지고 옵니다.

잘하지 않으면 사장되거나 매몰되어버릴 위치에

있게 되는거죠.


시의 늘 같은 패턴이 기득권이라면 그 기득권에 도전하는 새로운 시의 탄생에 박수를 보냅니다.

사유의 궁극적 확장이나 새로운 상상력, 기가 막힌

인간의 감수성에 도달하는 시일 때죠.

하지만 오래된 사유의 축을 한편 갖고 있는 어른들은

본인의 틀로 규제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경향성이 기득권으로 작용한다면, 참 그렇더군요.

그렇다고 모든 게 시다고 말하기에는 어불성설인 것

같고요.


늘 고민해 봅니다.

좋은 시의 전형이라고 대별할 시들이 참으로 많으면서도 뼈아프게 들어오지 않는 것도 요즈음 시들의 문제겠죠.

시들의 홍수 속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오늘 들었던

미술평론가이자 경희대 교수로 미술 감정에 조예가

깊은 최병식 교수의 말에 깊은 동의를 표하는 걸로

갈음합니다.

예술은 가난을 구할 수는 없지만 위로는 할 수 있다고.

좋은 시와 좋은 책, 깊은 사유, 온몸으로 체험하는 삶의 한가운데서 삶이 시가 되기를.

시적인 삶이 아니시고.


늘 서로의 마음을 다해서 머물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좋은 밤 나시길!


2015.5.28.12.54


오래전에 썼던 글을 올립니다.

아직도 닿아 있는 부분이 남아 있으니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제4 시집을 준비하면서도 했던 고민입니다.


2024.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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