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겐 웬수인 나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다. 아내의 '오늘은 일찍 오나요' 묻는 전화를 받았다. 난 '네'하고 대답했다. 그때까지 별다른 약속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와 전화 통화가 끝나자마자 동료 직원이 술 한잔하고 가잔다. 술 먹자는 권유를 잘하지 않던 직원의 말이라 즉시 거절하지 못하고 그러자고 했다. 술자리의 유혹에 의지는 약해진다.
아내에게 번개장터가 열렸음을 알렸다. 어찌하랴 술자리 부름은 쉽게 떨쳐내지 못하는 사람이 나인걸.
동료와 함께 지인을 만나기 위해 쌍문역으로 갔다. 쌍문역에 내리니 역사가 깔끔하게 빛이 난다. 처음 와본 지하철역인 것 같다. 깨끗하고 밝은 느낌을 주는 역이다.
지인이 소개한 활어횟집을 찾아갔는데 대기시간이 한 시간 이상 소요된다고 한다. 대기는 거절하고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목포항 회 세꼬시'집이다.
상차림이 입맛을 돋우는 색깔이다. 하얀색 그릇 위에 담긴 복어껍질 샐러드는 보는 순간 군침이 돌게 한다. 맛 또한 새콤하여 입맛 살리는 첨병이다. 젓가락이 이곳저곳 넘나들게 한다. 막걸리가 술술 넘어간다.
세꼬시는 김에 야채랑 싸 먹는 방식인데 처음 접하였다. 야채를 채 썰어 그릇 한쪽에 가지런히 올렸다. 입속에서 세꼬시가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 끝에 감칠맛이 느껴진다. 막걸리 꽤나 비우겠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간다. 일차에서 맛있는 안주와 마셔서 그런지 장소를 옮겨가며 마시게 된 것 같다. 첫술이 달면 그날은 대취다. 마지막은 김치찌개로 속풀이 겸 헤어짐을 달랬다. 마시면 좋은 술이지만 다음날 걱정거리가 되는 것이 또한 술이 아닌가.
다음 날 아침에 힘겹게 눈을 떴다.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를 가졌더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나이는 못 속이는 법이거늘, 술에 장사가 어딨느냐 말이다. 아무리 속으로 반성해 봐도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몸 컨디션을 회복하기 위해 용을 써봐야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다. 아내는 이런 웬수, 뭔 술을 그렇게 꽐라 되도록 마시냐며 타박한다. 아내의 지청구를 누운 채 들었다. 그래도 얼큰한 콩나물국을 끓여놓았단다. 점심 약속 때문에 나가니 알아서 먹도록 하란다. 그러요. 돈 버는 웬수라 봐주는지도.
난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힘겹게 먹었다. 속은 풀렸지만 몸을 움직이기가 싫다. 만사가 귀찮다. 갑자기 우울해진다. 난 왜 술자리 유혹에 약한가. 술을 떨쳐내지 못하는 것은 의지가 약한 것이다. 의지 약한 난 어떻게 해야 하나. 술을 끊어버릴까. 끊을 수 있을까. 끊어본 적도 있었지만 실패했다.
술 먹은 다음 날 고생하는데도 왜 줄이거나 끊지 못할까. 몸속에 알코올 향을 맡으면 정신을 못 차리는 유전자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럴지도.
콩나물국을 먹고 나서 단전호흡, 명상을 시도한다. 한동안 하고 났더니 몸이 정상화로 돌아오는 것 같다. 반성 모드로 한나절을 보냈다. 술자리를 줄이는 게 상책이다. 비책이야 술을 끊는 것이지만 의지 약한 나는 상책을 따라야겠다. 어디 하나 망가지고 나면 그때 비책을 따랐어야 했나 보다 후회하겠지만 말이다.
술 먹은 다음날 숙취로 운신하지 못하게 되면 우울감이 찾아온다. 이런 우울감이 싫어서 취할 정도로 마시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뜻대로 안 된다.
다시 한번 다짐해야겠다. 인생 항로는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하지만 키를 쥔 사람은 나 자신이다. 술 먹은 다음날 아침에 거뜬히 일어날 정도만 마시기로. 잘돼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