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ring Quartet. 현악 사중주는 헤어나올 수 없는 늪과 같아요
내가 현악 사중주를 처음 만난건 2013년이었다.
그 이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가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피아노 연주회나 다른 현악기 연주회를 가는게 전부였다.
그러다 현악 사중주 연주를 듣게 되었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면 이런 느낌일까?
바이올린 두대와 비올라 한대, 첼로 한대가 때로는 한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때로는 대화를 하기도 하는 현악 사중주.
지금 내가 사는 곳에 위치한 학교에서는 매 여름마다 거의 매일, 현악 사중주를 비롯해서 피아노트리오 등등의 다양한 챔버음악회가 열린다.
어제도 현악 사중주 연주회가 있었다. Verona Quartet이라는 요즘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젊은 콰르텟의 연주였다.
프로그램은,
Shostakovich: Two Pieces for string quartet, Op. posth. (1931)
Dvorák: String Quartet No. 12 in F Major, Op. 96 (1893) (“American”)
Schoenberg: Verklärte Nacht for string sextet, Op. 4 (1899)
드보르작의 'American'을 제외하고는 모두 처음들어보는 곡이었다.
우울하고 시니컬하다가 장난을 치는 듯한 폴카 연주로 끝나는 쇼스타코비치. 그 동안 이런 클래식 연주회장에서 연주 도중에 관객석에서 웃음소리가 나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Verona quartet의 폴카 연주가 유난히도 유쾌하고 재밌어서 연주중에 관객들이 조용히 키득키득 거렸다. (즉, 이 폴카연주는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두번째 곡은 드보르작의 'American'.
워낙 유명한 곡이어서 현악 사중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번은 들어봤음직한 곡이다. 이 곡은 실제로 드보르작이 미국에서 지낼 때 작곡이 되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드보르작이 느낀 미국에 대한 감성이 듬뿍 담긴 곡이 아닐까 싶다. 너무나도 밝은 분위기의 곡이다. 현악 사중주를 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강력추천하고 싶은 곡이다.
마지막 쇤베르그의 Verklärte Nacht(=Transfigured Night).
악장이 나뉘어져 있지 않아서 조금 길게 느껴졌었지만, 연주 시작 전, 연주자들 중 한 명이 이 곡에 대해 재밌게 소개를 해주어서 곡을 끝까지 잘 들을 수 있었다. (이루어지지 않을 지도 모르는 사랑때문에 슬퍼하다가 결국 사랑이 이루어져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이야기.)
이 연주자는 이 곡이 D major곡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를 드려준다고 얘기했다. 정말 그 멜로디는 연주자 말대로 아름다웠다. 처음에는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랑으로 슬퍼하는 듯한 조금은 우울한 멜로디. 그러다 점차 아름다운 소리로 가득차는 연주. 해피엔딩~
뭔가 시작은 잘하는데 정말 잘~ 질려하고, 끝맺음을 잘 못하는 나에게 있어서 7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현악 사중주에 대한 사랑은 지금도 믿겨지지가 않는다.
그 이유가 뭘까?
무엇보다도 현악 사중주만이 줄수 있는 소리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다.
네 명의 연주자가 티키타카하며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하모니.
오케스트라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규모이지만, 사람을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오케스트라 못지 않다고 생각된다.
또한 연주를 듣는 동안은 스마트폰을 비롯, 세상과 떨어져서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
연주회 한시간 반이라는 시간은 항상 나에겐 productive했다.
오늘 내가 뭘 했는지, 내일은 뭘 해야 할지.. 앞으로 내 미래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는 시간.
고민이 많아서 머릿속이 복잡한 분들에게 강력히 현악 사중주 연주회를 한번 가보시라고 추천해드리고 싶다. 아름다운 음악속에서 반 강제(?) 명상을 하면서 생각을 많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