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내용은 다음의 카드뉴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꿀잠을 위한 팁: 잠과 밀당하기>
진료실에 한 분이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얼굴에서 약간의 피로와 예민함이 묻어납니다. “벌써 십 년이 넘었어요. 잠을 통 못 자네요.” 언제부터인가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는군요. 예전부터 잠귀가 밝은 편이었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여러 생각에 몰두하느라 뜬눈으로 잠을 지새울 때도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분명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요. 조금은 빠른 어조로 한숨을 쉬듯 긴 세월 동안 잠을 자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 토로합니다. 잠에 좋다는 각종 영양제도 먹어보고 음악도 들어보았지만, 도망간 잠은 도통 돌아오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자기 위해서 오후 8시에는 꼭 수면제를 먹고 누워서 잠을 기다립니다. 자리에 눕기 전에는 분명 눈이 감기나 했는데, 적막하게 어둠이 고이자 정신은 점점 맑아집니다. 바깥에서 오토바이의 굉음이 우렁차게 들립니다. 이 야밤에 웬 난리인지! 저렇게 시끄럽게 타다니 정신이 있는 것일까? 배려라곤 정말 하나도 없는 사람이군. 문득 가슴도 답답하고 두근거립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자세를 바로 합니다. 정신이 마치 바늘 끝처럼 예리합니다. 주방의 수도꼭지에서 물이 똑똑 떨어집니다. 어휴 도대체가. 사용을 했으면 잘 잠가 둬야지. 수도꼭지를 잠그고 다시 눕습니다. 이불 안이 문득 답답합니다. 좀 더운 것 같기도 하고. 몇 시나 되었지? 휴대폰을 열어 시계를 봅니다.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났다고? 잠을 못 자면 안 되는데. 잠을 못 자는 사람은 치매도 걸린다는데. 온갖 생각 끝에 어떻게 잠이 들고일어나니 영 피로가 풀리지 않습니다. 낮에도 기운이 없으니 소파에 자꾸 기대어 있습니다. 오늘 밤엔 잘 자야 할 텐데.
위 사례는 불면을 경험하는 분들에 대한 인상 중 일부를 옮긴 것이지만, 실제로 많은 분들이 오늘 밤만은 잘 자기 위해 잠에 매달리며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은 분명 괴롭습니다. 작년 늦은 봄 영국의 BBC는 잠을 못 자 죽음을 선택하고만 한 남성의 사례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1] 잠을 못 자 미칠 것 같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셈이지요. 실제로 수면 문제는 죽고 싶다는 생각과 그 행동에까지 영향을 줍니다. 어떤 분명한 원리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수면 문제는 정서적으로 예민하고 충동적인 행동이 나타나기 쉽게 한다는 점, 화가 나고 공격적 행동을 하기 쉽게 만든다는 점에서 감정 조절을 어렵게 만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수면 문제는 우울증과도 연관되어 있으며, 우울증은 자살의 위험을 높입니다.
불면은 몹시 흔한 경험입니다. 열 명 중 서너 명은 이를 경험하지요. 다만 불면이 길어지는 것은 무언가 다른 요소가 끼어들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중요한 일이 있으면 한참을 뒤척이다 잠들곤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일이 몇 달씩 이어질 것 같진 않습니다. 왜 이토록 길어질까요?
“잠이 보약이다.” 이 말에는 두 가지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잠은 건강의 원천이다. 그러하니 잠은 소중하다. 수면 부족으로 각종 질병의 위험이 커진다는 글을 온갖 미디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잠을 못 자면 각종 질병의 위험이 커진다니. 생각만 해도 불안합니다. 실제로도 밤새 뒤척이고 나면 몸뚱이는 천근만근, 만사가 귀찮습니다. 집중도 어렵고 작은 일에도 예민해집니다. 한편 꿀잠이란 말처럼 잠은 달콤합니다. 푹 자고 일어난 날은 얼마나 개운한가요? 그래서 잠을 잃었다는, 그리고 잃는다는 생각은 우리를 잠에 매달리게 합니다. “자나 깨나” 꿀잠을 되찾을 방법을 몰두하게 합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여기에 몰두하면 할수록 잠은 달아나 버립니다.
“하루 여덟 시간의 적정 수면.” 이 말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사람은 몇 시간을 자야 건강할까요? 사실 나폴레옹처럼, 어떤 사람은 하루 6시간을 채 자지 않아도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9시간 이상은 자야 피로가 풀리고 활력이 납니다. 갓난아기는 하루 반나절 이상을 잡니다. 나이가 들면 자연 잠이 얕고 짧아집니다. 그러니 정답은 ‘사람마다 다르다’입니다. 일, 여가 등을 즐기는 데 무리가 없다면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 수면 시간인 것입니다. 오히려 모자란 잠을 보충하는 데 매달리면 잠을 못 자는 날이 점점 더 늘어만 갑니다.
‘모모’라는 소설로 국내에 잘 알려진 독일의 작가 미하엘 엔데는 수많은 멋진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그중 ‘끝없는 이야기’란 소설이 있습니다. 제목처럼 무척이나 긴 소설입니다. 잠자리에 누워 상념에 잠긴 사람은 하룻밤 동안 수천 쪽의 책을 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수면제를 먹으면 치매에 걸린다던데.” “잠을 못 자면 치매에 걸린다던데.” “잠을 잘 자야 건강하다는데.” “수면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댔어, 이제 잠을 자야지.” “그래도 잘 자야 건강하지 않을까?” “심지어 잠을 못 자면 자살할 수도 있다고?” 이와 비슷한 변용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유념해 주십시오. 상념이야말로 ‘끝없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그 이야기 속에 빠져 있으면 오히려 정신은 점점 더 명료해지고 맙니다.
보통 잠을 기다린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생각의 함정에 빠지게 되면 잠을 기다리지 못합니다. 잠을 쫓아가게 되지요. 애타는 마음에 무작정 쫓아가면 잠은 여러분의 눈치를 보며 조금씩 조금씩 더 멀리 달아납니다. 수면제를 먹으면, 혹은 그 양이 늘어나면 한동안은 효과가 있다가도 다시 잠이 오지 않습니다. 누워서 잠을 청하면 때로는 잠들지만 이내 잠은 다시 달아나 버리고 맙니다. 연애를 잘하기 위해서는 밀당을 잘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 말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무작정 매달리기만 해서는, 혹은 젠체하며 매달려주기만을 바라면 매력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겠지요. 잠이 돌아오려면 이 밀당을 잘해야 합니다. 잠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잠이 여러분의 매력에 빠져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매력적인 환경을 만들고 느긋하게 기다리면 조금씩 조금씩 잠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너무 과한 기대는 잠에게 부담스러울 것 같습니다. 조금만 그 수준을 낮춰보세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정해진 수면 시간은 없습니다. 단지 생활하기에 어려움이 없는 정도면 충분히 건강한 수면입니다. 잠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좋은 환경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잠자리는 쾌적해야 하고 규칙적으로 잠자리에 들어야 합니다. 적당한 운동도 좋고 커피나 술, 담배는 절제해야 합니다. 일찍부터 누워 찾아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거나, 연인의 대답 없는 답장을 기다리듯 시계를 바라고 폰을 확인하는 것은 잠을 쫓아가는 것입니다. 아침 일찍 나가 햇살을 즐기고 낮 동안 침실이 아닌 장소에서 활동하고, 낮잠은 피하십시오. 이와 같은 수면을 위한 좋은 습관은 다음의 <꿀잠을 위한 팁: 잠과 밀당하기> 카드뉴스도 참고해 주세요.
그간 여러분의 몸은 도망가는 잠을 쫓아가기 위해 훈련해 왔습니다. 일찍부터 오래 누워 있거나, 자리에 눕는 그 순간부터 잠을 붙잡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 그 훈련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사실 잠은 이 같은 몸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잠이 다시 다가오도록 일종의 체질 개선이 필요합니다. 누워있는 시간이 실제 잠을 자는 시간보다 2시간 이상 크게 차이가 난다면 누워 있는 시간을 서서히 줄여가야 합니다. 누워서 한동안 뒤척이고 잠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거실이나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기십시오. 잠깐 다른 장소에서 앉아 있다가 졸리기 시작한다면 다시 침실로 돌아가십시오.
때론 상념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면,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자기 자신을 알아차려 보세요. 끝없는 이야기 속에 머물러 있던 몸도 느껴보세요.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긴장되지는 않았나요? 덥고 땀이 나며 불쾌하지는 않았나요? 이제는 다른 전략을 취할 차례입니다. 호흡하기와 이완하기가 그것이지요. 둘 모두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고, 자신에게 잘 맞는 것 하나만 숙달해도 충분합니다. 호흡하기는 끝없이 이야기에서 잠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방법입니다. 이완하기란 간단하게 표현하면 기지개를 잘 켜는 방법입니다. <호흡하기>와 <이완하기>의 자세한 방법은 카드뉴스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이 두 가지 방법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낯선 방법을 어려운 순간 적용하려면 어색하고 오히려 긴장되어 몸이 굳기도 합니다. 평소 연습을 통해 숙달하고 그 감각을 친숙하게 하여 사용하기를 권합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불면은 각종 신체 질환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잠을 쫓아가지만 해서는 안 됩니다. 잠과 밀당을 하며 잠이 찾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잠이 좋아할 환경을 만들어 보십시오. 다가오지 않는 잠을 쫓아가며 고통스러워 하기보다, 과욕을 내려놓고 잠을 위한 환경을 꾸리며 조금씩 나아가는 성장통을 반긴다면 어느 순간 잠은 곁으로 돌아와 있을 것입니다.
* 위 연습은 다음의 카드뉴스를 참고해 주세요.
서민철 중앙보훈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위 글은 헬스조선의 연재 <당신의 오늘이 안녕하길>의 [잠을 기다리지 마세요, 스스로 찾아오게 하세요]를 통해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1. Crewdson K. Insomnia: 'My brother killed himself after sleep struggle'. BBC. Apr 2023. https://www.bbc.com/news/uk-england-manchester-65318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