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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다리 Dec 31. 2019

겨울이 오기 직전, 태기산 백패킹



겨울이 오기 전 멀리 강원도로 백패킹을 떠났다. 

그동안 집에서 가까운 경기도에 있는 산으로 주로 백패킹을 다녔었다. 오늘 처음으로 강원도로 백패킹을 가게 되어 나름 의미 있는 날이다. 한 가지 더 의미를 찾는다면 처음으로 1,000 미터가 넘는 높은 곳으로 간다는 것이다. 대부분 해발 500 ~ 600 미터 남짓한 산을 찾았었고, 박배낭을 메고 올라간 제일 높은 산은 790미터 높이의  충남 오서산이었다. 


해발 1,261미터 태기산으로 향하면서 이제 나도 진정한 백패커나 되는 건가 라는 우쭐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사실 이번 백패킹은 500 ~ 600급 산행보다 훨씬 수월한 산행이 예상된다.




출발 지점이 해발 980미터다. 

신대리에서 출발하는 제대로 된 산행 코스가 있지만 토요일 늦게 횡성에 도착한 우리는 거의 1천 미터 높이 양구두미재까지 차를 끌고 올라왔다. 1천 미터를 거저먹고 시작하는 셈이다. 


이 곳에 설치된 풍력 발전기를 따라 정상까지 임도가 잘 닦여져 있다. 겨울에는 보통 차단기가 내려져 있어 차를 가지고 임도를 들어갈 수 없지만 오늘은 개방되어 있다. 더 편하게 가려면 차를 타고 임도를 탈 수 있지만,

"백패커의 자존심이 있지, 완전 날로 먹을 수는 없잖아."

고개에 차를 세우고 잘 포장된 임도 초입으로 접어든다. 







잠시 후 풍력 발전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제주도에서도 보고, 선자령에서도 보고 여러 번 봤었지만 매번 가까이서 볼 때마다 거인 같은 덩치에 '와~" 짧은 감탄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이 곳 발전기는 번호가 이름을 대신하고 있다. 입구부터 1번으로 시작해서 7번까지 한 그룹으로 모여있는데, 6번 발전기 앞으로 시원한 전망이 펼쳐진다. 마침 일몰 시각이라 서쪽 하늘 짙은 회색 구름 사이로 노란 듯 붉은 듯 부드러운 빛깔이 스며 나온다.














일몰이 절정이라 조금 있으면 사방이 어두워질 시각이지만, 우리는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정상은 밟아봐야 하지 않겠냐며 정상으로 향하는 가파른 지름길에 올라섰다. 






30분 가량 제법 경사진 길을 타고 정상에 도착하니 사방이 깜깜하다. 정상석에는 무슨 글씨를 새겨놓았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아직 붉은 기운이 남아있는 서쪽 하늘에는 거친 붓칠을 한 듯 짙게 깔린 구름이 눈 앞에 펼쳐지고, 제법 먼 거리에서 풍력 발전기가 느린 속도로 돌아가며 정적인 풍경에 역동적인 이미지를 불어넣는다. 꽤나 이국적인 풍경이다.







정상석 주변의 공터에는 차를 타고 온 캠퍼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조용히 쉬기는 어려울 것 같아 다시 박지를 찾아 걸어내려갔다. 전망 좋고 평평한 곳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걷다 보니 다시 6번 발전기까지 가게 되었다. 오늘은 6번이 행운의 번호인가 보다.









11월 말 높은 고지에서의 밤 날씨는 예상외로 포근했다. 바람을 쐬러 텐트 밖으로 나올 때마다 6번 발전기 위로 별들이 쏟아져 내릴 듯 매달려 있었고, 서쪽으로 횡성 야경이 희미하게 빛나며 어둠 속에서도 눈 앞으로 시원한 전망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텐트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수다를 떨 때는 잘 몰랐는데 잘 준비를 하려고 할 때부터 6번 풍력발전기 돌아가는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한다.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는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소리가 밤새도록 귀에 거슬렸다. 팬 돌아가는 소리에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어느덧 아침이 되었다.






길 건너편 짙게 깔린 구름 사이로 해가 떠오르며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을 알려온다. 6번 발전기는 내 귀의 예민함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아침에도 "슝-슝" 소리를 내며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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