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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아 Mar 01. 2024

큰 딸이 자취를 시작하다

자취 물품 준비하며 느낀 생각

3월 개강을 앞두고 자취를 하게 된 큰 딸아이는 올해 대학교 3학년이 된다. 새로 구한 집으로 내일 들어가야 하기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려고 오전 일찍 집을 나선다. 오랜만에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 3학년이 되면 학과 공부에, 부회장직에 여러모로 바빠지겠지만 새로운 환경의 도전과 적응을 앞둔 딸아이 목소리는 이미 설렘이 가득하다. 나의 대학 시절이 불현듯 떠오른다.   

  

 그 시절 나는 집을 따로 구할 형편이 안 되어 사촌 언니 집에 얹혀살았다. 내가 다닌 과는 여학생들이 대부분이고 빡빡한 계획 속에 던져진 수업 일수는 마치 고등 입시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1학년 때는 어려운 공부에 흥미를 느끼기도 어려웠고 멋모르기도 하여 아르바이트에 에너지를 쏟다 보니 공부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지금 생각하니 학비며, 필요한 물품이며 지원을 해주신 부모님께 죄송스러운 일이다. 정작 해야 할 공부는 하지 않고 눈앞의 현실에만 급급하며 지냈다. 에너지의 방향을 어디에 둘지 모르던 어린 시절이었다. 멀리 내다볼 줄도 모르고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지금에 이르러 생각해 보면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그릇의 크기는 점차 경험으로 커지는 듯하다.     

 대학 2학년 때 한심스러운 나 자신을 이대로 둘 수 없어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학업에 열을 올렸다. 어려운 간호학 전공이지만 그나마 공부에 집중하니 이해되는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성적도 많이 올라 자신감도 쌓였다.      




 나의 대학 시절을 딸아이와 회상하며 가다 보니 어느새 마트에 도착했다. 자취 물품의 일부는 갖춰 두었고 필요한 생필품을 추가로 고른다. 딸은 고무장갑 하나부터 샴푸, 바디워시, 세탁세제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물건을 이리저리 관찰하고 비교하기 시작한다. 예전에 장을 볼 때는 따라다니기만 한 것 같은데 자신이 직접 써야 할 것이라 그런지 적합한 물건을 세심하게 보는 딸의 모습이 야무지다. 엄마의 의견과 자신의 의견을 잘 맞추어간다.      


 

어떤 것에서의 관심도는 집중도의 차이로 나타난다. 같은 공간에서도 누가 사용하는지에 따라 나타나는 태도는 다르게 나타난다. 딸은 새로운 환경을 준비하고 꾸며야 하니 얼마나 설렐까? 프라이팬을 고르는 것에서도 매의 눈이 작동된다. 관점의 차이와 생각의 차이에 따라 보이는 것은 다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나, 해야 할 일에서 나타나는 적극성이 너무 좋아 딸아이 꽁무니를 쫓아가는 내내 피식 웃음이 났다.      

 딸은 앞으로 스스로 걸어가는 길에서 넘어지기도, 혼자 버텨내고 싸워보기도 하고, 내려놓기도 하며 점점 영글어갈 것이다. 넘어진 채 웅크려 있는 것이 아닌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일어섬의 순간을 잘 경험해 가면 좋겠다. 좋아하는 것을 통해 사소한 시간이라도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어 가면 좋겠다. 어떤 일이든 배척하기보다 자기 것으로 융화시켜 나아갈 수 있는 발가락 앞의 시간만 쩔쩔매기보다 풍성한 나무를 볼 수 있도록,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잘 지켜봐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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