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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아 Mar 05. 2024

뜻밖의 미술관

그림 너머로의 세상은

 호수공원도서관으로 인문학 강연을 들으러 간다. 김선지 작가의 ‘뜻밖의 미술관’을 주제로 한 강연이다. 

이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평소 필사하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명화 속 배경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터라 너무 궁금하여 신청했던 프로그램이다.      

    

 ‘뜻밖의 미술관’은 주로 중세시대 그림을 다루고 있다. 몇 백 년 훨씬 이전의 사람들의 생활상이 보인다. 신화 속 조각상의 비밀과 실제 일어났던 부인의 이야기를 다룬 그림 이야기도 연달아 소개된다. 그림을 그림 자체로만 보지 않고 시대 분위기와 맞물려 다시 돌아보고 뒤집어서 새로운 시각으로 비춰낸다. 

미술학자의 관점에서 던진 질문과 그림의 배경이 어우러지면서 전혀 다른 관점으로 그림이 보인다. 하나의 그림에 다양한 해석이 있을 줄이야. 설명을 들으면 그림이 달리 보인다. 내가 하는 판단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님을 알게 하는 시점이다. 


 암울하기만 하던 중세시대 분위기와 달리 쾌활하고 유쾌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인다. 

 여성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떠올려지는 불편한 진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높은 위상으로 좋게만 보이던 왕실 모습에 다른 이면이 보인다. 겉은 화려하나 속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지 않은 일상이다. 보석과 아름다운 장신구로 치장된 옷들이 거추장스럽다. 지금 태어나 간편한 옷을 마음대로 입고 일상을 자유롭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거리를 함부로 나설 수 없던 장애인들의 모습, 해괴하고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한 사람들을 그려낸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할까? 지금도 우리는 그들을 바라볼 때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을 하게 한다.   


 그때의 시대적 상황과 넣어진 심정을 전부 알 수는 없다. 다만 그림을 통해 시대를 풍자한 사회적 흐름을 엿볼 수 있다. 말로 하기 어려운 현실에서의 이면을 그림이라는 방법을 통해 다른 시각으로 그려 넣은 목소리가 붓에 가득 실려 있다. 그저 행복하길 바라고 앞날의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한 철학적 고뇌를 그려내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한쪽만 주장하여 왜곡됨을 비켜서서 그림으로 충분히 승화시켜 표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결국 그 시대도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지금의 우리처럼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고자 했던 마음은 전혀 다르지 않다


 이것만이 정답이라 할 수 없고, 어떠한 시각만 옳다 할 수도 없다. 시대를 풍미하던 시절을 거슬러 가다 보면 다양한 관점과 시각은 존재하고 있다. 관점과 시각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시간이다. 지금 사회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관계 안에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스스로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선을 가진 그 너머의 이해와, 느긋하고 여유롭게 바라보아 인내하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그림을 보면 역사를 알 수 있다. 역사를 바탕으로 우리는 비로소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떤 생각으로 앞을 나아가야 할지 알게 한다. 

이왕이면 좋은 생각으로, 긍정적으로 슬프지 않게 살아가면 좋겠다. 모든 감정이 소중하니 슬프더라도 툭툭 털고 일어나는 힘을 길러갔으면 좋겠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소중히 여기어(그때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믿음을 지니면서 말이다.      


 ‘뜻밖의 미술관’에 의해 내가 발견해 간 것은 그림 속에 드러난 모두의 일상이다. 그것은 곧 각자의 특별함으로 내게 다가온다. 어떤 사소한 것에도 이유가 없는 것은 없다. 존재의 이유를 들어보니 모든 것이 감사하다. 감사함의 크기만큼 내 마음의 그릇의 크기도 점점 넓어지리라. 

 20대의 크기만큼, 30대의 크기만큼, 지금은 40대의 크기만큼 눈을 돌려 나무보다 전체를 볼 수 있도록 마음을 가꾸어 간다. 다양한 이야기를 통한 배움과 내가 알던 것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닌 여러 이해관계 속에서 만져지고 접촉되는 것들은 나이 불문하여 터득하여야 하는 시각(관점)의 훈련이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안고 도서관을 나선다. 

해가 제법 길어졌다. 주황빛으로 타오르던 태양도 그림 속에 비추던 중세 시대의 날에도 똑같이 떴다가 저물어 갔겠지? 그때도 오늘처럼 발갛게 영글어 세상을 비췄을 것이다. 


 관점의 차이와 생각의 차이에 따라 보이는 것은 다르다. 그러나 오늘의 일상이 내게 준 선물은 관점과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볼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문득 아이가 보고 싶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함을 인정하여
점차 큰마음을 지닌 유연함으로
어떤 일에도 쉽게 휘둘리지 않고 잘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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