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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아 Mar 08. 2024

지금을 만들어간 지금

스스로 찾아가는 시간이 쌓여 다시 기회로

 앞으로 내게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떤 기회가 올지 모른다. 준비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은 사람에게 그냥 주어지는 기회란 없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판단이 아닌 나의 마음가짐에 따라 그것이 보인다. 내가 스스로 만들고 이루어가지 않으면 자신의 잠재력조차 모르고 지나간다. 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준비한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99년도에 전문학사를 마치고 간호사로 일하면서 같은 직장 동료인 남편을 만났다. 새로운 가족이 형성되고 해가 지나면서 하나둘 자식이 생겨나 가정을 먼저 돌보는 것이 우선이 되었다. 내게 공부는 사치라 여겨 학업에는 뜻이 없었다. 더욱이 남편이 공부하는 처지라 나에게 시선을 돌릴 여유가 없었고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 ‘학사를 이수해야지’ 하는 막연한 바람은 있었지만 스스로 행동으로 이끌지 못했다. 챙겨야 할 삶이 더 컸기에 나중으로 미루던 것이 그만 40대를 넘어서고 말았다.      

 임상에 있으면서 정체된 자신이 점점 불편했다. 무언가 발전하고 싶은 맘이 커졌다. 늦둥이가 어렸으나 더 미루기는 싫었다. 방통대 문을 두드려 입학했다. 임상에서 전문적인 기술과 지식을 쌓아가지만, 그동안 꾹꾹 눌렀던 배움의 열망이 입학한 순간부터 터져 나왔다. 아이들이 있고 직장 생활에, 집안일까지 해내야 할 일들이 많았지만 미루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이 지나쳐 버릴 것 같았다. 


 역시 공부는 힘들다. 과제를 준비하고 시험 대비하고 주말마다 책에 파묻혀 지냈다. 출근하여 환자 상태와 씨름하고 쉬는 날은 또 전공책과 함께이다. 넘어가야 할 시간과의 사투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내가 대견했다. 과정을 넘어서서 과제를 해내고 공부하며 제대로 알아가는 것이 오히려 좋았다. 몸과 마음은 힘드나 내게 쌓여가는 지식의 경계를 넘어선 순간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라 외우기조차 힘들었다. 힘든 과정을 지나니 무언가 몰입하고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그 빡빡함의 시간조차 지나고 보니 잊을 수 없는 소중함이었다. 

     

 2년 방통대 편입을 무사히 졸업하여 늦깎이 학사를 거머쥔 나는 당당한 자신감이 생겼다. 나도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이 생겼다. 정체되고 변화 없이 안주하는 삶보다는 무언가 찾아가는 과정이 더 행복하게 느껴졌다. 일하는 동안 환자를 위해 정확하고 근거 있는 간호를 정성으로 해내야 하기에 조금 더 욕심을 내어 발전적인 나를 소망하는 맘이 컸다. 물론 학업을 통해서만이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하는 업무에 보탬이 되고 노력으로 다져가는 것이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늦둥이는 여전히 어렸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미루면 영영 시작을 못 할 것 같아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다.     

 

 “와! 일하면서 어떻게 공부하려고 해?”


 일하면서 육아에 집안일에 신경을 쓸 것이 많은데 도전하는 나를 두고 사람들은 말한다. 

 나도 해낼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나 자신을 믿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려는 심정만 가지고 웃음으로만 대답을 한다.     

 방통대는 녹화된 온라인 수업이라 내가 원하는 시간에 수강할 수 있다. 반면 대학원은 코로나 상황이라 대면 수업은 없었지만 정해진 시간대에 실시간 강의를 했다. 그마저도 코로나가 어느 정도 완화되니 대면으로 진행하였다, 수업을 듣기 위해 시간에 맞춰 출석해야 한다. 만나지 못해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선생님들 앞에서 논문을 분석하고 발표를 한다. 처음에는 줌 화면 접속하는 것도, 발표 자료를 공유하는 것도 어설프고 생소한 일이었다.     


 대학원 과정은 근거 기반하에 연구하고, 문제점을 도출하여 중재하며 하나의 자료를 만들어내기까지 여러 시행착오를 겪는다. 세밀해지고 광범위하며 파고들수록 자꾸 우물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와! 연구 주제와 이론 파헤치는 것이 만만치 않아요.” 


 함께 하는 선생님들과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날 우리는 서로 웃었다. 그 웃음은 서로를 향해 힘을 주는 웃음이었으리라. 서로가 다르지 않음은 결국 모두에게 위안이 된다.      


 자료를 조사하고 PPT를 만들어 앞에서 발표하는 순간은 떨리나 끝내고 나서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른다.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오히려 차분해진다. 더 잘할 걸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크게 작용한 것은 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순간 기분은 날아갈 것 같다. 하나씩 이루어가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결과보다는 무언가 몰입하여 가는 과정이 더 큰 감흥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과정의 축적됨은 결국 다시 돌아옴을 느끼는 한 해 한 해였다.     



 

 예전에는 공부가 마냥 힘들다 느껴졌지만, 필요에 의한 공부 의지가 그 힘듦을 넘어서 간다. 내가 행하고 있는 방향이 나의 소신과 맞아떨어져 감을 느끼게 되는 된다. 무언가를 도전하는 것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같이 공부하는 분 중에  이미 정년을 앞두신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존경의 눈빛을 보낸다. 대학원에 오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하고 보지 못했을 일이다. 

 

 열정은 나이를 떠나 마음의 크기만큼 비치는 아우라이다. 어려운 순간이 힘들다고만 느끼면 더 어려워진다. 즐기는 순간만이 내 것이 되어간다. 


 23년 8월 여름 햇살을 길게 받으며 당당히 졸업하였다. 나도 해낼 수 있는 커다란 기쁨의 학사모를 쓴 것이다. 석사학위보다 더 값진 인생의 교훈을 나는 스스로 만들어갔다. 올해 초 나는 겸임 교수에 도전한다. 내가 이룬 과정의 힘을 모아 더 나은 지식을 채워 넣어 대학 실습의 한 과목을 맡아 지도를 한다. 지식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려 한다. 경험을 통한 나의 비결과 25년 경력을 쏟아내어 함께 나아갈 것이다. 앞으로도 배워가야 하는 일은 많다.

 

 과거의 나는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게 될지, 지금 업무에 맞춰 얼마나 나아진 모습으로 우뚝 서 있게 될지 전혀 알지 못했다. 잠재력의 깊이도 몰랐다. 다만 기본을 잊지 않고 정체되지 않은 새로움에 도전해 나간 나날들, 그렇게 다져간 나날들이 쌓여 지금의 기회를 이루어가는 것임을 요새 너무 잘 알고 있다.     

 

무엇이든 준비한 사람에게는 어느 방향으로든,
언제가 되었든 기회는 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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