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석무 Feb 18. 2022

오렌지듄스영종 - [한국의골프장이야기] 탐사기록



이 포스팅은 [한국의골프장이야기] 제3권 집필을 위한 탐사 기록입니다.


오렌지듄스영종 서코스 9번 홀


듄(Dune)은 바람에 날려 온 모래가 쌓인 사구(砂丘)다. 사구는 사막과 바닷가에 주로 형성된다. 골프는 해안의 사구(Coastal Dunes) 지형과 관계가 깊다.     


파도에 밀려온 모래가 해안에 사빈(砂濱, sand beach, 모래해변)을 이루고, 그 해변 모래는 바닷바람에 날려 사빈을 확장시키거나 육지 쪽에 쌓여 해안사구를 형성한다. 사구는 바람을 막고 풍속을 감쇄하여 또 다른 사구들을 파생시킨다.  

바람이 강하고 파랑(波浪)의 작용이 큰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해변에는 사빈과 사구의 형성이 활발하여, 모래가 쌓인 뒤 파랑과 해풍에 단단해진 중간지대 - 링크스(Links)와 듄스(Dunes)가 공존하는 특이 지형이 형성되어온다. 골프는 이곳에서 비롯되고 발달해왔다.     

 

킹스반스 6번 홀과 17번 홀 - 스코틀랜드 / 킹스반스 골프링크스 홈페이지 사진


듄스와 링크스

링크스는 ‘둔덕’ 또는 ‘등성이’를 뜻하는 고대 영어 ‘Hlinc’가 어원이라 한다. 육지이지만 바다를 닮은 경계 구역이다. 수천수만 년 동안 쌓인 모래가 소금기에 젖어 단단해지고, 새들이 물어온 씨앗이 바다의 유기물을 머금고 풀로 자라나 더 단단히 모래를 고정시킨 땅이다. 비바람에 깎인 표면이 파도처럼 굽이치는 바람단지다. 농사는 지을 수 없고 양떼들을 풀어먹이던 황무지였다. 

듄스는 링크스의 배후에 형성되거나 공존하기도 한다. 링크스 자체가 모래언덕이므로 골프코스에서 말하는 듄스는 형태적 특징을 말한다. 링크스에 조성한 골프코스 중에는 사구들 곁으로(사이로) 길을 낸 것들이 많다. 링크스에 반드시 사구가 발달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구들을 많이 품은 ‘링크스코스’들은 이름에 ‘듄스’를 붙이기도 한다. 페어웨이는 링크스 특유의 단단한 표면에 짧은 잔디로 조성하고, 사구는 모래 표면 그대로 노출시키거나(미피복 사구) 갈대 류 볏과 식물들(Marram Grass 등)이 무성하게 자란(피복 사구) 모양으로 조성(또는 보존)한다. 그것이 듄스 형 링크스코스의 전형이다.       


골프가 시작된 이후 수백 년 동안 골프장은 곧 링크스였다. 양떼들이 풀을 먹으며 지나간 자리가 페어웨이가 되고 짐승이 파헤친 자리가 바람에 무너져 벙커가 되었으며, 토끼가 풀을 먹은 자리 적당한 곳에 구멍을 뚫고 과녁을 삼은 게 골프코스의 시작이었다고 전해진다. 코스를 만들었다기보다는 길을 찾아낸 셈이었기에, 지금도 골프코스 설계는 라우팅(Routing), 즉 길 찾기를 기본으로 여긴다.     


뮤어필드 5번 홀 - 스코틀랜드 / 뮤어필드 홈페이지 사진


링크스듄스코스가 세계에 조성되는 까닭

골프가 세계로 퍼지던 19세기 후반 이후,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바닷가 아닌 지역에서도 링크스코스를 만들려는 노력이 백년 넘게 지속되어왔다. 특히 골프코스의 클래식 시대(1900~1930년대, 중장비가 없던 때)부터 미국과 호주 등의 바닷가에 링크스를 재현한 골프장들이 조성되었다. 링크스가 가진 자연 조건(하늘의 바람과 땅의 자연 굴곡 등)을 똑같이 갖진 못했지만 그런 장해요소들의 특징을 최대한 모사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여러 나라의 다양한 지형과 기후 조건에서, 뛰어난 설계가들이 다양한 링크스코스를 만들었다. 그 가운데 스코틀랜드 링크스 못지않다고 인정되는 것들도 등장했다.     

  

지금도 코스 디자이너를 비롯한 골프 전문인들 가운데는, 스코틀랜드 링크스를 성지로 받들고 골프코스의 성경처럼 링크스를 신봉하는 이들이 많다. 그곳에서 골프의 기본 정신과 본질 형태가 나왔으며 그것이 불변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톰 도악(Tom Doak)을 비롯한 자연주의 코스 디자이너들이 초기 링크스와 클래식코스의 걸작들을 재해석한 ‘미니멀리즘’ 설계로 골프장 트렌드를 이끌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몇 개 코스를 설계한) 카일 필립스(Kyle Philips) 등이 ‘모던 링크스’라는 스타일로 재현한 링크스코스들이 각광받는 등, 링크스는 골프코스의 본향이고 본질 형태이자 최신의 트렌드로 거듭 추종, 재발견되어 온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대학교에서 링크스코스를 연구한 백주영 박사에게 물으니, “진정한 링크스는 전 세계에 246개.”라고 했다. “600년 이상 바람과 비에 다져진 링크스랜드에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 혹은 인위적으로 조성한 골프코스만 ‘트루 링크스(True Links)’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한국의 링크스와 듄스

한국의 해안에는 간혹 사구(Dunes)들이 보이기도 하지만, 링크스 비슷한 지형은 형성되지 않는다. 강한 바람과 거친 파랑이 만들어내는 ‘모래해변 - 링크스 - 듄스’의 지형 조합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에 없다. 링크스의 본질을 재해석하여 구현한 ‘링크스 스타일’ 골프코스를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시도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골프장이 건설되는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바닷가가 아닌 내륙에서도 링크스 스타일은 끊임없이 모색되어 온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링크스 스타일’을 형태와 본질의 두 가지 면으로 적어본다. 


형태는 본질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나누기 어렵지만, 

▶해안에 바로 붙어있거나 가까운 황량하고 평활한 지형 ▶딱딱하여 공이 잘 튀고 구르는 지면 ▶불규칙한 너울의 언듈레이션 ▶공략 루트가 다양한 (넓은)페어웨이 ▶벙커의 모양(항아리, 수직벽, 파헤친 모양 등) ▶크고 작은 사구들 ▶드물게 지나는 개울(Burn) ▶특징적 식물들(헤더, 가시금작화 등) ▶페어웨이와 이어진 듯 굴곡이 큰 그린 콤플렉스 등을 링크스코스의 주요한 형태 특성으로 꼽는다.  


본질은 누구도 감히 가늠하고 단정하기 어렵지만,

▶강한 바람과 변화막측한 날씨 ▶어디를 겨냥해야 할지 정답을 알 수 없이 막막한 자연 환경에서, 누구나 스스로 힘과 기술과 정신의 노력으로 고유한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 한 가지 더 꼽자면, ▶버려진 황무지에 자연의 생명력을 최대한 살려, 코스를 조성한다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한국 땅에 링크스, 듄스코스를 조성한다는 것은 이러한 형태와 본질을 부지의 자연 조건에 맞게 재해석하여 얼마나 입체적인 교집합으로 빚어내느냐 하는 과정이겠다. 

20세기 초반 골프가 도입된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산기슭에 골프장이 조성되어 왔고, 초기에는 일본의 영향을 받았기에 골프코스를 정원처럼 꾸미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21세기 들어 서구 전문인들이 국내 골프코스 조성 현장에서 활약하는 한편, 골프 관련 미디어들이 선정하는 ‘세계 100대 코스’ 랭킹 등에 골프장들이 적극 대응하는 흐름이 생기면서, 다양한 형태의 골프코스에 대한 관심과 함께 링크스 스타일에 대한 수요도 일게 되었다.     


하지만 한반도에는 바닷가 골프장이 생긴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골프코스를 해안 가까이에 지을 수 없게 하는 연안관리법 등이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일부 지역에서 ‘관광단지’ 등의 명분으로 그 제약이 풀리면서, 2010년대 이후 몇 개의 골프장들이 바닷가에 조성되었다.(예외적으로 제주도 바닷가에는 1989년 중문CC가 문을 열었다) 그들은 링크스코스의 특성을 일부 적용하면서 링크스를 표방하기도 했지만, 형태와 본질의 조건을 대입해 보면 링크스라기 보다는 대개 ‘시사이드 코스’에 가까워 보인다. 링크스 또는 듄스라는 골프코스 개념과 형태는 아직 한국 골퍼에게 익숙하지 않다고 하겠다.      


그런 가운데 최근 몇 개 골프장이 본격적인 링크스, 듄스 스타일을 표방하여 문을 열었다. 그중 오렌지듄스영종 골프클럽(이하 ’오렌지듄스영종’)에 주목해 본다.      



공항공사 땅골프장 설계·시공 전문회사 건립·운영   

오렌지듄스영종이 들어선 땅은 인천국제공항 건설을 위해 바다를 메운 영종도 간척지다. 동쪽 일부는 제 1터미널 앞 업무지구의 유휴지이며 서쪽 땅은 비행기 착륙 방향 활주로에 이어진 안전구역이다. 인천항 앞바다에 접해 있다,  

공항이 건설될 때 인근 제5활주로 예정 부지에 스카이72 골프장이 대규모로 조성되었지만, 이곳에는 간이 골프 시설 9홀이 임시 운영되고 있었다. 2017년 인천공항공사가 ‘환승객 및 공항 이용객 편의와 공항 활성화’를 위해 골프장 개발사업자를 공모하였고, 지원한 10개 컨소시엄 가운데 ‘오렌지엔지니어링’이 선정되었다, 

3년 여 공사 끝에 2021년 6월 18홀 골프장을 문 열었다. BOT(Build-Operate-Transfer)방식으로 20년 간 점유·운영한 뒤 공항공사에 기부채납하며, 그 후 법령에 정한 기간 동안 임대 운영하게 된다.          

   


오렌지엔지니어링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골프코스들을 설계·시공한 전문회사다. ‘클럽나인브릿지’,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 ‘파인비치골프링크스’, ‘해슬리나인브릿지’, ‘페럼클럽’ 등을 시공했으며 ‘힐드로사이CC', '더스타휴CC', '설해원 골든비치’, ‘세라지오CC' 등을 직접 설계하고 시공했다. 이 밖에 설계·시공 실적 골프장이 200곳 넘는다. 

골프장을 직접 운영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이 골프장 가까운 곳에 ‘오렌지듄스송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2008년 ‘상주오렌지CC(현 블루원상주)’를 설계·완공하여 한동안 운영한 뒤 매각한 바 있다. 

대표 강상문 씨는 1990년대에 문을 연 화산CC, 천룡CC 등이 조성될 때 직접 조형작업을 했고, 스카이72 하늘코스의 설계·시공 실무를 총괄하는 등 회사와 개인의 실적이 한국 골프장 역사의 주요한 흐름과 함께해왔다.          


골프코스 조성의 특징     


오렌지엔지니어링은 이 부지에 듄스 형 링크스 스타일 코스가 어울린다고 판단한 듯하다. 

바닷바람이 강한 간척지이고, 소금기가 피어오르는 황무지였다. 국제 업무시설과 공항 시설을 지원하는 배수로, 모노레일, 활주로 등의 인공시설들이 황량하게 산재한 자투리땅이었다. 

이곳에 스코틀랜드의 북해 연안처럼 신화적인 바닷가 풍치를 빚어낼 수는 없지만, 현대의 장비와 기술로는, 자연이 장구한 세월동안 빚어낸 듄스와 링크스의 특징적 모습을 흡사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 산중 코스에 익숙한 한국 골퍼에게 듄스의 마운드 형태가 링크스의 낯섦을 중화하기도 할 것이다. 플레이어가 산재한 인공시설물들에 주의산만해지지 않고 코스 안쪽에 시선을 집중하도록, 듄스의 형태적 특성과 디테일을 완성도 높게 표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듄스와 자연주의 미니멀리즘

오렌지엔지니어링은 “최근 세계적인 골프코스 트렌드인‘ 자연주의 미니멀리즘’ 개념을 도입했다”고 말한다. “인공의 모습을 최소화하고 자연 그대로의 기능과 형태를 재창조”하는 작업이라고 그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자연 경사를 이용한 배수 기능을 주로 활용하고, 수만 년 동안 퇴적된 모래언덕 사이에 길을 흘린 듯한 모양으로 코스를 만들었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거친 비바람에 허물어지고 뜯겨나간 모양의 벙커, 크고 작은 근육처럼 굴곡이 선명한 페어웨이, 일렁이는 갈대밭, 거친 사구 및 벙커와 고운 잔디의 선명한 대비 등······ 듄스형 링크스코스의 조형과 질감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미국 출신으로 톰 도악(Tom Doak), 톰 파지오(Tom Pazio) 등과 협업한 경력의 조형사(Shaper) 맷 플린트(Matthew G. Flint)가 전략 조형과 미관 디테일을 다듬었다고 한다.     

 

30년 노하우를 쏟아 붓다.

그 위에 플레이어빌리티(playability)와 샷밸류(Shot Value)를 높였다. 바닷바람이 부는 곳이지만 스코틀랜드 해안만큼 강한 (옆)바람이 불지는 않으므로, 본고장 링크스처럼 페어웨이를 넓히지는 않았다. 충분히 넓되 긴장할 만큼 조여든다. 부지가 넉넉하지 않아 다이내믹한 도그렉 형 홀이나 사선 형 페어웨이를 배치하기 어려운 제약을, 지형 변화를 최대화한 토공으로 극복하며 홀별 다양성과 샷밸류 리듬을 살렸다. 플레이 해보면 한 샷 한 샷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하며, 샷마다 홀마다 변별력의 안배가 정밀함을 알게 된다. 

이 회사는 2013년에 인천 송도에 ‘오렌지듄스송도’라는 골프장을 지어 운영해왔는데, 그곳에서 이루지 못했던 원을 이곳에서 풀어낸 듯싶다. 해안 매립지 연약지반 공사에 따르는 기술적 문제들을, 스카이72, 잭니클라우스GC, 솔트베이GC 등에서의 설계·시공 경험으로 해결하였다고 한다. ‘골프장 조성 30년 노하우를 쏟아 부은 코스’라고 할 수 있겠다.     



“Green Carpet Ride” 

사업자를 공모할 때 공항공사에 제출한 골프장 조성 주제가 “Green Carpet Ride - 녹색융단을 타고 미래로 뻗어가는 글로벌 리딩 공항의 그린 인프라 구축”이었다. 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에서 이 골프장의 조형이 강렬하게 조망되도록 했다. 코스를 가로지르는 모노레일 위 자기부상열차에서도 근사하게 보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없는 새로운 스타일의 듄스코스를 만들고자 시도했다”는 설계·시공 취지에 공감하며, ‘의미 있는 성취’라고 생각한다. 산만한 인공 시설물에 둘러싸인 자투리땅 입지의 어려움 속에서도, 플레이어가 코스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디테일로 승부한 공력과 도전을 인정할 만하다.        

  

코스의 이야기와 인상적인 홀들  


18홀 전장 7,243(블루티 6,691, 화이트티 6,265, 레드티 5,376)야드, 파72 코스로, 바닷바람이 부는 자리임을 감안하면 긴 편이다. 서코스 9홀과 동코스 9홀로 나뉘며 양 코스의 길이는 비슷하다. 

가운데 클럽하우스를 중심으로 동코스는 호텔과 오피스텔 등 업무지구 방향에 있어 도심형 코스 느낌을 내고, 서코스는 활주로 안전구역의 탁 트인 자리에 있어서 링크스 분위기가 더 난다.

골프코스 전문 회사가 코스 자체의 품질에 집중해 만든 골프장답게, 다양한 라이에서 모든 클럽의 샷 기술을 테스트한다. 코스레이팅 공식 측정 자료는 아직 없는데, 일반 골퍼들이 대략 6~8타 더 친고 한다. KLPGA 투어 정상급 유명 선수들이 며칠 라운드 한 뒤 ‘샷 변별력이 매우 높은 코스’라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았다.   

  

동코스 이야기 >     


상대적으로 내륙에 위치한 동코스는 간이 9홀의 ‘인천골프클럽’이 운영되던 자리였다. 코스에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과 인천공항 업무지구 건물들이 보인다. 해안 듄스에서 내륙 도시로 연결되는 경관 개념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해안 링크스코스에는 호수가 거의 없지만, 이 코스에는 큰 호수들이 있어서 사막 오아시스 시티의 듄스 같은 느낌도 난다. 동쪽으로 진행했다가 서쪽으로 돌아오도록 배치되었다.    

   

동코스 1번 파홀 코스를 안내하는 쇼케이스

블랙티 354m, 블루티 337m, 화이트티 313m, 레드티 264m

동코스 1번 파4 홀

이 코스가 공항의 지원 시설임을, 1번 홀 정면의 스카이라인을 가로지르는 자기부상열차 모노레일이 환기해준다(자기부상열차는 용유역에서 인천공항1터미널역으로 매시 4회 운행한다.) 

티잉 구역과 페어웨이 사이의 비관리 지역(웨이스트 벙커 존)과 페어웨이 주변의 사구들이 이 코스의 디자인 컨셉을 보여준다. 비교적 편안하게 시작하지만 벙커의 위치와 모양, 페어웨이 언듈레이션 스타일, 그린의 성향 등, 이 코스의 전체 성격을 쇼케이스처럼 안내하는 홀이다.            


동코스 2번 파홀 티샷부터 퍼팅까지전략과 기술 테스트 

블랙티 368m, 블루티 337m, 화이트티 313m, 레드티 264m

동코스 2번 파4 홀

페어웨이 왼쪽 높은 턱을 드러내는 벙커는 그 너머가 바로 그린인 듯한 착시와 함께, 랜딩 존을 짐작하기 어려운 두려움을 자아낸다. 또한 이 벙커를 넘겨 치면 보상이 분명히 주어질 것이라는 암시와, 그 너머에는 (정확하지 않은)장타자를 방어하는 장해가 있을 것이라는 신호를 함께 준다.(벙커에 빠지면 물론, 레이업 해야 한다) 

그린 앞에 깊은 가드벙커가 바투 붙어 있으며 그린의 타원 축이 두시 방향이라 긴 어프로치로 세우기 어렵다. 그린의 굴곡도 예민하다. 

티샷부터 퍼팅까지 ‘생각하는 골프’와 ‘샷 기술’을 두루 주문하는 홀이다 . 선수급 골퍼들이 ‘샷 메이킹’하는 재미를 느낄만하다. (그린 앞 맨 왼쪽 벙커는 메웠다고 한다.)     


동코스 3번 파홀 도심형 시그니처 홀

블랙티 185m, 블루티 157m, 화이트티 139m, 레드티 120m

동코스 3번 파3 홀

그린이 파라다이스시티와 오피스텔 등을 배경으로 앉아있기에, 도심형 코스 느낌이 강한 홀이다. 평화로워 보이지만 난이도 조절 폭이 크다. 오른쪽 뒤편에 깃대가 꽂혀있을 때는 샷 메이킹 능력을 가장 까다롭게 시험한다. 바람을 감안하면서 하이페이드 샷을 칠 수 있어야 유리하다. 그린의 앞뒤와 양 옆이 큰 파도같은 언듈레이션으로 나뉘어 그린 플레이에 상상력이 필요하다.  

동코스 3번 벙커

그린 오른쪽 벙커의 우아한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벙커 모양을 자세히 보면 바람에 뜯겨나가고 허물어진 듯한(Ragged Bunker) 모습이다.     


동코스 5번 파홀 바람을 몸으로 느껴라

블랙티 163m, 화이트티 141m, 레드티 103m

동코스 5번 파3 홀

갈대에 일렁이는 바람을 몸으로 느끼라는 홀이다. 아일랜드에 가까운 반도형 그린 앞에 커다란 호수가 입을 벌리고 있어 정확한 거리 측정이 필요하다. 이 홀에서는 거리측정기 같은 기계에 의존하지 않아야 링크스코스 플레이의 제 맛이 나겠다. 내가 라운드할 때 동반자들은 거리측정을 하고 나 혼자 몸의 느낌대로 쳤는데······ 물에 빠뜨린 건 나 한 사람뿐이었다. 다시 친다 해도 똑같이 도전하고 싶다. 바람과 싸우고 대화하는 홀이다.      


동코스 6, 7, 8, 9번 홀 링크스 식 배치

동코스 9번 파4 홀

링크스코스는 한쪽 방향으로 전반 9홀을 진행한 뒤 후반 9홀을 반대 방향으로 돌아오도록 만든 곳들이 많다. 바다와 나란히 홀을 진행하면서 맞바람과 뒷바람을 공평하게 경험하도록 하기 위한 배치 방식이다. 아웃(Outward)코스 인(Inward)코스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고 한다. 동코스 6, 7, 8, 9번 홀은 연달아 서쪽으로 향한다. 링크스의 방식을 닮았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파4, 파5, 파4, 파4로 진행하는 8번 홀 쯤에 파3 홀이 들어오면 리듬이 더 살아날 듯하지만, 부지의 모양을 보면 이 배치가 최선인 듯하다. 홀 하나하나 보면 모두 재미있고 변별력이 높다. 바람을 마주하며 칠 때 링크스의 제 맛이 날 것이다. 낮게 칠 줄 아는 샷 기술과 인내심 등을 시험한다.     

동코스 8번 홀 티잉구역 - 티박스 모서리 마감 디테일을 보라

코스 곳곳의 디테일에서, 골프장 설계시공 전문회사가 만들고 운영하는 골프코스로서의 섬세한 만듦새가 보인다. 자세히 보면 티잉 구역 가장자리의 마감 곡선이 바람이 깎아 높은 듯한 모습이다. 골프장 전문인들은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고 믿는다.     


서코스 이야기 >     


서코스는 상대적으로 바다에 가깝고, 비행기가 착륙하는 활주로의 안전구역에 접해 있다. 코스가 들어서기 전부터 우거졌던 갈대밭을 그대로 보전하면서 해안 사구와 어울리는 경관을 빚어냈다. 동코스에 견주어 서코스가 링크스와 듄스의 느낌을 더 강하게 드러낸다. 도그렉 형 , 사선 형 페어웨이 등 다양한 형태의 홀들을 배치하여, 다이내믹하고 샷밸류 높다.    

 

서코스 3번 파홀 링크스짧은 홀의 역설

블랙티 148m, 블루티 127m, 화이트티 115m, 레드티 105m

서코스 3번 파3 홀

링크스의 파3 홀은 짧은 게 더 어렵다고 한다. 이 홀이 그런 특성을 잘 보여준다. 

공이 높이 뜰수록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기에 거리와 방향을 제어하기 어렵다. 링크스의 짧은 파3 홀에서는 짧은 클럽으로 친 공이 높이 뜨기에 정확성이 오히려 낮아진다. 

이 홀은 바람이 부는 자리에 있으며, 짧은 홀답게 그린 언듈레이션이 미묘하다. 티잉 구역에서는 쉬워 보이지만, 그린을 놓치면 어프로치로 깃대에 붙이기 예민한 상황이 되곤 한다. 

평화로운 갈대밭 풍경 속에 변화가 일렁이는 홀이다.     


서코스 4번 파홀 세계 유일그린 카펫 활주로

블랙티 387m, 블루티 344m, 화이트티 322m, 레드티 285m

티잉 구역에서 보면 페어웨이 오른쪽 파도치는 갈대밭 너머, 모래해변 같은 벙커가 길고 큰 입을 벌리고 있다. 페어웨이 가운데 먼 곳에도 거친 벙커들의 함정이 보인다. 어려운 홀이지만 막상 쳐 보면 페어웨이가 좁지 않은데 눈에는 훨씬 위협적으로 보인다. 미관과 변별력이 훌륭하게 어울린 홀이다. 이 홀에서 나는, 오른쪽의 호수를 바다로 상상하며 쳤다.

그런데 이 홀에서, 바다보다 더 인상적인 장면을 만났다. 비행기가 바로 머리 위로 착륙하는 것이었다. 인천공항 제3활주로와 이어진 자리라 공의 높이도 계산하며 만들었다고 한다. 이 홀을 플레이 하는 동안 두 대 또는 세 대의 비행기가 하얀 배를 보여주면서 지나간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홀은 세상에 여기밖에 없을 것이다.     


서코스 6번 파홀 갈대의 바다

블랙티 204m, 블루티 181m, 화이트티 171m, 레드티 136m

서코스 6번 파3 홀

오렌지듄스영종의 파3 홀은 하나도 버릴 게 없지만 서코스 6번 파3 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갈대밭을 그대로 살려, 코스에 밀려드는 모양으로 끌어들였다. 갈대밭과 코스 사이에 긴 모래밭을 조성한 것을 보면, 갈대밭은 바다로, 웨이스트 벙커는 백사장으로 그려 넣은 듯하다. 그린 너머의 파라다이스시티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홀 구성 요소들이 시선을 휘어잡는다.

변별력도 매우 높다. 하이드로우 샷을 구사하지 못하는 일반 골퍼는 그린 오른 쪽을 겨냥하여 두 번째 샷에 올리는 게 나을 수 있다. 그린 왼쪽 중간 부분이 솟아올라 변별력을 더욱 높인다.      


서코스 7번 파홀 자연 속에 내던져진 골퍼 

블랙티 570m, 블루티 530m, 화이트티 476m, 레드티 434m

서코스 7번 파5 홀

길고 황량한 길에서 바람과 싸우는 파5 홀이다. 맞바람이 불기 쉬운 자리에 있다. ‘막막한 자연에 내던져진 인간이 나약함을 깨달으며 스스로 극복해 나가는 길’ 정도로 설명하면 어떨까 싶은 홀이다. 

어프로치 샷 지점 페어웨이 한가운데 작은 벙커가 있었는데, 골퍼들이 하도 빠져 원성이 높아 메웠다고 한다. 전략적 완성도로 보면 다소 아쉽다. 

이 홀을 길게 에워싸고 있는 사구와 웨이스트 벙커들의 조형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되는 모습이다. 일부 사구는 모래를 노출한 미피복 상태로 유지하고, 일부는 풀이 우거진 피복사구로 가꿔가는 듯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모양이 변할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서코스 8, 9번 홀 역동적 승부 구간 

블랙티 570m, 블루티 530m, 화이트티 476m, 레드티 434m

서코스 8번 파4 홀

서코스는 후반 홀로 갈수록 설계·시공자의 야심을 보여준다. 서코스 8번 홀은 페어웨이를 사선 형으로 놓아 영웅적인 티샷을 유도하고 있다. 상급자는 페어웨이 오른쪽의 길고 넓은 사구와 웨이스트벙커 존을 넘겨 그린 가까이 가려 할 것이다. 일반 골퍼는 좀 더 왼쪽 넓은 방향을 선택하여 안전하게 티샷 할 수 있다. 황량한 모래밭의 조형 디테일이 정교하다. 전략성과 아름다움을 함께 갖춘 홀이다. 

9번 파5 홀은 바닷가에서 도시로 돌아오는 구성이다. 왼쪽 페어웨이 벙커를 넘기면 투온이 가능하여 승부가 뒤집히는 재미를 주었다.  

서코스 9번 그린 주변

7, 8, 9번 홀들은 듄스코스의 세계적 최신 트렌드 디테일을 역동적이고 섬세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넓은 면적에 공들여 만든 사구와 웨이스트벙커 존을 어떻게 관리해 나갈지······ 그 변화가 우리나라 골프장 조성 역사에 의미 있게 남을 듯하다.      

             

운영관리시설     


클럽하우스는 SL건축사사무소(정범석)에서 설계했다. 맞은편의 파라다이스시티에서 골프코스로 이어지는 공간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지었다. 클럽하우스에서 코스를 내려다보도록 2층으로 계획하였으나 관계기관 협의 과정에서 단층으로 변경 완성했다. 공항 부속 시설이라 크고 작은 제약이 많다. 특급 호텔 급 서비스와 식음료가 제공된다.      



페어웨이에는 켄터키블루그래스 양잔디, 러프에는 페스큐를 심어 듄스 및 웨이스트벙커와 선명한 대비 조화를 이룬다. 페어웨이와 그린을 짧고 단단하게 관리하며 평소 그린 스피드는 스팀프미터 측정 기준 2.8m 정도로 관리한다. 잔디 표면이 고르고 언듈레이션이 큰 편이라 3.0m 이상으로 체감되는 경우가 많다.      


공항공사와의 협약에 의해, 일정 기간 동안 상대적으로 저렴한 그린피를 받는다. 따라서 가성비 높은 골프장으로 알려져 있는데, 골프코스의 스타일 가치까지 음미하면서 플레이하면 더 만족이 크겠다. 

         

변화와 시도    

 

이 골프장은 인천공항의 자투리땅들을 이어 붙인 부지에 조성하였다. 바닷가에 있지만 공항 부속 인공 시설들이 주변에 산재하여 자연경관을 기대하기 어려운 자리다.

그런데 라운드 하다 보면 코스 안의 전략 요소들과 듄스코스의 형상 디테일들이 눈을 사로잡아 주변의 산만함을 상쇄한다. 

이 코스를 그대로 들어 바닷가에 펼쳐 놓으면 어떨까 상상하게 된다.      


세계 골프계의 최신 ‘자연주의 미니멀리즘’ 트렌드를 도입했다는 듄스와 웨이스트 벙커 등의  질감이 세월이 흐르면서 어떻게 유지 관리될지 궁금하다. 스코틀랜드 북해의 바닷가의 강한 바람이 만들었을 듯한 디테일들이 우리나라 퍼블릭 골프장에서 지속 유지 가능하다면 한국 골프코스 조성 흐름에 의미 있는 변화가 일 것이라 추측해 본다.     


경외감이 드는 자연 풍광에 아름다운 골프장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이렇듯 자투리 황무지에 새로운 스타일로 완성도 높은 골프코스를 만드는 도전을 더욱 존경하고 응원한다.


---------------------------

이 포스팅은 [한국의골프장이야기] 제3권 수록을 위한 소통용 초안입니다.

좀더 상세하게 보완한 뒤 책에 싣고자 합니다.

글로 적힌 생각과 표현들은, 인용 표시된 것 말고는, 지은이의 고유한 저작입니다.

---------------------------


>> [한국의골프장이야기] 구매링크

한국의 골프장 이야기 세트(양장본 HardCover)(전2권) | 류석무 | 구름서재 - 교보문고 (kyobobook.co.kr)


작가의 이전글 다산베아채CC  - [한국의골프장이야기] 탐사기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