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거 다 똑같더라
2011년 1월 초,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새 회사의 입사식에 참석했다. 대강당에서 선서를 하고, 높으신 분의 환영사를 듣고, 부서장들과 직원 가족들과의 오찬까지. '드디어 내가 이 조직의 일원이 되는구나'하는 감격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차올랐다. 야근 강요와 폭언 등으로 시험공부를 할 수밖에 없게 몰아넣은 전 직장의 상사들이 고마워질 지경이었다.
입사식 이후 연수원에서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신입 사원 연수를 받았다. 조사연구 뿐 아니라 결제, 통계, 경제 교육 등 워낙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기에 이를 배우느라 한 달이나 있었어도 별로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는 업무를 배우는 것보다 일과시간 후에 동기들끼리 체육관에서 운동하고 한잔 하는데 더 정신이 팔려있었다. 원칙적으로 공식 행사 이외의 음주는 금지되어 있었지만, 너무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지 않는 한 연수원 담당자들도 깐깐하게 통제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도 이 때가 30년의 조직 생활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란 걸 알고 있었으니까. 물론 적당히 마시지 않으면 다음날 새벽의 아침운동 겸 등산에서 고생할 수밖에 없었기에 폭음하거나 사고를 치는 동기는 거의 없었다.
한 달의 연수는 꿈결같이 흘러가고, 2월 초 드디어 발령받은 부서로 출근했다. 내가 배치된 부서는 외환보유고를 채권 등의 자산에 투자하여 운용하는 곳이다. 사실 이 회사에서는 조사/연구를 담당하는 부서들이 핵심이기에 비 핵심 부서에 배치된 사실에 실망할 수도 있었지만, 나야 어차피 이전 직장에서도 외환 및 파생상품의 거래를 담당했기도 했고 채권 투자라면 전공 지식도 살릴 수 있었기에 잘 되었다고 여겼다.
하지만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 실제 투자를 하는 팀 (흔히 Front desk라고 하는)에 가기 위해서는 이전 연도에 다른 팀에서 고생을 좀 하는 게 불문율이라고 했다. 그래서 성과 분석 및 리스크 관리를 담당하는 팀에 배정되었을 때는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여기서 새로운 것을 배워서 투자 부서에 가면 되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름이... 김 솔이라고 했나? 팀장이 누구시니?"
"네! 맞습니다 선배님. J 팀장님이십니다"
"... 아... 그렇구나. 좀... 특이하지 않으시니?"
나이 지긋하신 선배와의 점심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머릿속에서 경고등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J 팀장은 여러모로 전 직장의 B 팀장을 떠올리게 했다. 구부정한 허리, 음침한 표정, 엄격한 근태 관리 등. 보통 일이 없어도 습관적으로 팀 전체가 저녁을 먹고 8시 언저리까지 앉아있다 퇴근했는데, 전 직장의 10시 퇴근에 길들여진 나에게는 그마저도 그닥 나쁘지 않았다.
팀장은 특히 퇴근시간에 굉장히 민감했다. 한 번은 팀 계약직 조사역이 일이 있어 정시 퇴근을 하자 다음날 아침에 자기 자리로 불러서 "당신 우리랑 일하는 게 싫은 건가?"라고 깨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팀장이 퇴근하기 전엔 집에 갈 수 없는 분위기였고, 업무도 생각과 달리 별로 재미가 없었기에 꿈꾸던 직장에 들어왔다는 기쁨은 하루가 다르게 퇴색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