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이니? 80%만 받으렴

공공기관 신입 임금 삭감의 아픔

by Sol Kim

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에 대해 모르는 분은 요새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미국에 살면서 이런저런 매체들을 통해 듣게 되는 흑인들의 일상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단순 과속으로 경찰에 붙들렸을 때 대부분은 그냥 몇백 불의 벌금에 짜증 내는 정도이지만 흑인들은 혹여나 있을지도 모르는 폭행, 체포나 살해까지도 걱정해야 한다. 2020년에 있었던 조지 플로이드의 살해 사건으로 인해 BLM이 더욱 조명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에 BLM 운동이 시작된 계기는 단순히 '흑인'이라는 이유로 겪게 되는 불합리한 일상의 차별 및 신변의 위협이다.


공공기관 신입 임금 삭감 또한 단순히 '신입'이라는 이유로 겪게 되는 차별이었다. 산업화 세대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MB 정권은 한국 기업 경쟁력 상실의 원인을 높은 임금에서 찾았고, 기존 직원들의 일괄 연봉 삭감은 대대적 파업 및 정권 지지율 하락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 우려했기에 저항이 적은 신입사원 연봉 20% 삭감부터 시작하려 했으리라. 공공기관이 선도하면 민간도 따라올 것이라 예상한 것 같다.


하지만 사기업들은 일부 동조하는 시늉만 내다가 금세 원래대로 돌아갔다. 당연한 이야기다. 경쟁사가 그대로 연봉을 주는데 우리 회사만 20% 삭감한다면 우수 인재를 눈 뜨고 빼앗기는데... 결국 젊은 세대의 지지율 하락에 버티지 못한 MB 정권은 2년도 되지 않아 동 정책을 공식적으로 폐기하게 된다. 하지만 1년 선배들과 동기들은 정책이 폐기될 때까지 빈곤한 계좌와 차별로 인한 스트레스라는 두 가지에 맞서 싸워야 했다.






전 직장과 다르게 새 회사의 선배들은 우리의 분노를 이해하고 동조하는 편이었지만 어쨌든 우리 월급 명세서의 비루함은 바뀌지 않았다. 그나마 나는 군필 호봉을 적용받아 조금 나았지만, 군 미필 남성이나 여성의 경우 첫 월급이 200만 원이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입사원 연수 장기자랑에서 그 당시 유행하던 '넬라 판타지아'의 선율에 맞추어 부르던 동기의 노래가 아직도 뇌리에 선하다.


회사 붙었어
친구들에게 200 쐈어
근데 첫 월급 200이 안돼
나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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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일이 다르거나 근무 시간이 차이가 난다면야 연봉 차이를 수용할 수 있겠지만, 동일한 일을 하면서 80%만 월급을 받으라는 이야기에 기꺼이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떤 사람은 "어차피 알고 들어간 거 왜 불평하냐"라고 했지만, 글쎄, 나는 그 친구가 1년 선배와 같은 일을 하는데 연봉은 80%만 받게 되면 과연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아직도 궁금하다.






또한 임금 삭감 대상자들을 비하하는 선배들도 극히 일부지만 존재했다. 부연 설명이 좀 필요한데, 새로 부임한 J 사장은 보수적인 조직 문화를 바꾸기 위해 파격적인 인사와 정책을 펼쳤고, 이로 인해 내부 직원들의 저항이 굉장히 심했다. 기존의 입행 시험이 불필요하게 어려우니 난이도를 낮추라고 지시한 것도 그였으며, 이로 인해 그의 부임 이후로 입사한 우리들은 'J 키즈'라고 불렸다. 당연히 별로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었다.


그들의 논리는 이런 식이었다. '너희들은 제대로 된 시험을 보면 못 들어올 사람들인데 쉬워진 시험을 보고 들어올 수 있었으니 연봉 삭감에 불평하지 마라'. 그나마 마지막 거리낌은 있었는지 면전이 아닌 사내 익명 게시판에서 이런 주장을 펼쳤는데, 이로 인해 게시판은 금세 수십 개의 댓글이 달리는 아수라장이 되곤 했다. 가끔 육두문자가 등장하며 다툼이 가열되면 전산국이 출동해서 글 본문을 날려버렸고, 개판인 댓글만 남아 원 글이 남기고 간 악취를 풍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무시했으면 될 일이었다. 어려운 시험 50점 맞고 들어온 사람이 쉬운 시험 80점 맞고 들어온 사람보다 우월하다는게 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하지만 빈곤한 계좌와 지속되는 야근에 지친 우리들은 그럴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다. 로마제국 시절부터 통치의 기본은 'Divide and Rule (분리해서 통치하라)'이라고 하던데, 어쩌면 이런 분열마저도 유도된 것이 아닐까 싶어 오싹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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