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그리고 희미한 서광
2018년 가을, 아버지는 미국에 유학 나와 있는 나를 보러 텍사스까지 오셨다. 그때 처음으로 아들 태민이의 자폐로 인한 미국 이민 생각을 넌지시 말씀드렸는데, 늘 만사를 쿨하게 받아들이는 분이라 흔쾌히 응원해주실 줄 알았지만 의외로 아버지의 답은 긴 침묵이었다.
기독교인이라 점이나 사주 등을 전혀 믿지 않는 우리 부부와 달리 아버지는 사주를 꽤나 신뢰하시는 편이다.
그 다음 해에 이직에 성공하고 아버지께 전화로 이를 말씀드렸을 때, 한숨을 쉬시며 "그래, 네 사주를 보고 오니 팔자가 인동초라더라"라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만 해도 그게 뭔지도 몰라 그러려니 하고 흘려들었는데, 알고 보니 인동초는 여러 고난을 이겨내고 나서야 꽃을 피우는 식물이라 한다.
지금까지의 내 삶을 돌이켜 본다. 겉만 보기엔 좋은 학교와 좋은 회사를 거치며 꽃길만 걸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절벽 옆 험로를 한발 한발 걸어낸 것에 가깝다.
15년이 넘는 시간동안 부모님의 불화와 별거, 이혼을 겪으며 정서적 육체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한창 예민할 고 3 때는 부모님의 별거와 이사로 인해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웠고 결국 재수를 했다. 대학에 간 후에도 어머니의 재정 문제로 인해 졸업할 때까지 1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다녔다.
졸업 후 좋은 회사에 들어가 이제 봄날이 오나 했더니, 버티기 힘든 상사들을 만나서 결국 1년 만에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한국 최고의 회사에 들어가고 회사의 지원을 받아 유학까지 나오며 인생이 풀리나 싶을 때도 있었지만, 결국 장애가 있는 아들을 더 나은 환경에서 키우기 위해 모든 비용을 물어내고 돌아갈 길을 불태운 채로 미국에 남아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솔직히 지금도 '내가 왜 그랬지' 후회중이다). 운이 좋았는지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좋게 마무리된 일들이 많지만, 그 긴 시간 동안 한 발이라도 잘못 디뎠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 보면 지금도 가끔 소름이 돋는다.
K실에서의 2년은, 인동초 같은 내 팔자에 잠시 비춘 한줄기 햇빛 같은 시간이었다.
2013년 1월, 예상치 못한 K실로의 이동 소식을 들은 나는 사실상 회사 생활을 거의 반쯤 내려놓은 상태였다. 보통 회사에서는 비 핵심부서에 있던 사람들을 다음 턴엔 핵심 부서로 보내거나, 아니면 지역 사무소로 보낸 후 세 번째 턴에 핵심 부서에 보내는 식으로 운용했는데 나는 두 경우 모두 아니었기 때문이다. 첫 두 턴을 이런 식으로 비 정책부서에서 보내는 일은 굉장히 드물었고, 이러다가 다음 차례에 지역 사무소에 간다면 승진해서 핵심 부서에 간다고 해도 껍데기만 과장이지 배운게 없으니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있을 리도 없다. 나름 열심히 회사생활을 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오니 '회사에서 날 도대체 어떻게 평가하는 건가'라는 자괴감이 들면서 마음이 굉장히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K실에서의 2년이 있었기에 좋은 인사 고과를 받아 유학을 나올 수 있었고 아들을 위해 미국에 남을 수 있었으니 말 그대로 새옹지마라고나 할까. 지금도 감사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S 팀장은 내가 사무실에 오자마자 면담을 하면서 '우리 새 업무에 김 조사역이 꼭 필요해서 힘들게 끌고 왔다. 인사 고과는 확실히 챙겨줄 테니 열심히 해서 유학 나가야지'라며 확실한 목표의식과 동기부여를 제공했다. 처음엔 그냥 동기부여를 위한 사탕발림으로 생각하고 흘려버렸지만 잊을만하면 불러서 유학 가려면 영어 공부해야 한다고 채근하는 덕에 언제부턴가 다시 희망을 가지고 회사 생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상반기 인사 평가에서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고과를 받았을 때 그가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님을 깨닫기도 했고.
또한 내가 맡은 일도 생각보다 재미있고 의미 있는 업무였다. 해외 공공기관과 국제금융기구의 한국 금융시장 투자를 위한 증권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는 내가 지난 3년간 여러 팀에서 일하면서 익혔던 금융상품, 결제 등에 대한 실무지식을 활용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회사 내 다른 부서 분들, 그리고 회사 밖의 전문가 분들과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가끔씩 다른 부서의 선배들이 우리 프로젝트의 상황을 물어볼 때마다 내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감사함과 이에 대한 책임감을 되새기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