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실에서의 기억 셋

굉장히 독특했던 그곳

by Sol Kim

지난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K실에서 근무한 2013년과 2014년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힘들거나 괴로웠던 순간을 찾기 힘들 정도다. 물론 일 하면서 회사 내외부 관계자들과의 의견 차이를 줄여 나가거나 시스템 완성 직전 새벽까지 근무하거나 하는 고생은 있었지만, 나머지 좋았던 기억들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또한 K실은 회사 내 다른 부서와는 여러모로 다른 독특한 곳이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 당시의 몇 가지 추억들을 풀어놓고자 한다.



#1. Professionalism

회사 내 직원들은 '중급'과 '초급'으로 분류된다. '중급'이라 함은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시험을 보고 들어온 내 동기들 같은 직원들을 의미하며, '초급'은 과거에 고등학교 (주로 상고)를 졸업하고 입사한 사람들이다. 20~30년 전만 해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취업 전선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높은 입사 경쟁률을 자랑하던 회사에는 굉장히 똑똑한 분들만 들어올 수 있었다고 한다.


대놓고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지만, 젊은 중급 직원들 사이에서는 특정 초급 직원들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돌곤 했다. 나이가 다들 40~50대다 보니 어떤 이들은 젊은 중급 직원을 자녀나 군대 후임처럼 대하기도 했고, 지역 사무소에 오래 있었던 초급 직원들은 터줏대감처럼 새로 전입 온 직원을 괴롭히기도 했기 때문이다. 설령 이런 이슈가 없는 사람이라도 해도 그들은 이미 회사에 대한 기대 (유학, 승진)도 없는 데다 맡은 업무도 대부분 총무, 간단한 사무 등이었고, 그렇기에 맡은 일을 금방 끝내고 퇴근 때까지 인터넷 쇼핑이나 개인적인 일을 보는 경우가 꽤 있었다. 아무래도 격무와 야근에 지친 중급 직원들 입장에서는 고운 눈길을 보내긴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조직을 떠난 내 입장에선 '내 일 다 했고 회사가 나한테 더 해줄 게 없는데 뭘 어쩌라고?'라고 생각하는 초급 직원들의 마음도 이해가 가지만...


하지만 K실의 초급 직원들은 예외였다. 무조건 일 잘하고 성격 괜찮은 직원들만 K실로 보낸다는 소문이 거짓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언제나 본인들이 업무를 리드해 나갔고, 팀장이 그들을 관리하느라 고생하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 똑똑하고 자기 일에 자부심이 있는 분들이라 그런지 팀장의 지시가 이치에 맞지 않을 경우 기죽지 않고 자기 의견을 이야기했고, 아직 회사 경력이나 업무 지식이 부족했던 나에게는 그 모습이 굉장히 멋져 보였다.




#2. 폭탄주 없는 회식


회사에서는 분기당 한번 정도 가벼운 저녁 식사 비용을 부서별로 지급했다. 대부분의 부서가 심한 남초였기에 회식 메뉴는 대부분 삼겹살 + 폭탄주로 고정되다시피 했다. 아무래도 이에 대한 여성 직원들의 선호가 높기는 어려웠고, 이를 고려하는 팀장들은 2차를 카페로 가기도 했지만 보통 대부분의 회사 회식에선 1차는 삼겹살 2차는 호프집으로 이어지곤 했다.


하지만 K실의 주 세력은 여성 초급 직원이었기에 이런 식의 회식은 거의 상상하기 어려웠다. 어떨 때는 이 비용을 두세 번씩 모아 근처 C 호텔의 석식 뷔페를 먹으러 갔고, 다른 때는 청계천 근처에서 한식을 먹고 커피 한잔 들고 다 같이 산책하다가 귀가하기도 했다. 소주 한잔이 취향에 맞는 몇몇 남성 과/차장이 반란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수적 우위에 밀려 무산되었고, 딱히 폭탄주를 즐기지 않는 나는 이런 상황이 굉장히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3. 나이스한 선배들


퇴사하는 사람은 회사를 떠나는 게 아니라 나쁜 상사/동료를 떠나는 것이라고 한다. 일, 보상 못지않게 같이 일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리라. 대부분의 K실 선배들은 40대 후반 혹은 그 이상이라 거의 이모/삼촌 뻘이었고, 20대 후반인 나를 조카처럼 귀여워 (?)하며 잘 대해주었다. 그들 중 일부는 단순히 좋은 사무실 선배가 아니라 인생 선배이자 본받을만한 사람이었다.


Y 차장은 투박하지만 솔직했다. 성격이 워낙 괄괄하고 목소리도 커서 종종 벽 건너편에 있는 그의 전화 통화가 들려올 때도 있었다. 그는 술을 워낙 좋아했기에 퇴근 후에 한잔 하는 것이 일상이었으며, 간혹 나와 다른 조사역을 데리고 나가기도 했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지만, 술자리에서 그가 솔직하게 나눠주는 인생사, 회사 경험, 육아 경험이 좋았기에 그가 '오늘 한잔?'을 제안하면 언제든 따라나서곤 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선한 인품의 B 차장. 전 직장에서 '독실한' 분께 너무나 데인 기억이 있는지라 처음엔 조심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같은 프로젝트에서 일하는 2년 내내 업무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본받을만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보고서 작성이 서투른 내게 자세한 지도를 해주기도 했고, 업무가 여유 있을 때는 가족들의 안부를 물으며 자신의 육아 경험과 팁을 나눠주기도 했다.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이런 상급자를 모시고 일할 수 있었음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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