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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Sep 26. 2023

작고 하찮은 위안

지난 두 주 동안 내 정신의 밑바닥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샅샅이 훑고 있다. 한국에서 한 주만에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 겨우겨우 시차를 극복하자마자 숨겨져 있던 다른 집안 문제가 터졌고, 업무가 끝난 밤에 얼마 남지도 않은 한국 인맥을 동원하여 변호사들과 통화하고 자문을 구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동안 외면해 온 감정과 과제들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 계신 분들도 내 가족인데 난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아이의 자폐 치료가 중요하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하면서 미국에 사는게 맞나

    언제까지 상황에 떠밀려 가면서 살아야 되는 거야?


어느새 나이 들어있는 부모님과 집안 어른들을 보면서 '내가 선택한 미국 생활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애써 정당화해 왔지만, 지난달 말 그 대가를 직접 몸으로 겪어내 보니 미국 생활을 위해 내가 터무니없는 것들을 희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두렵다. 자식으로서 최소한의 것도 하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한 죄책감, 소중한 분들의 임종과 장례를 지키기 쉽지 않다는 절망감,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는 막막한 이민자의 삶, 아이의 서툰 말과 행동을 볼 때마다 치밀어 오르는 한숨과 분노... 나 스스로도 내가 이상하게 반응하고 행동하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순간들이 종종 지나갔다. 





주말 내내 이어진 컨디션 저하와 우울함을 애써 털어내고 아침 식탁에 앉았다. 어찌 됐든 일은 해야 하고 위장은 밥 달라고 꿀꿀대니까. 베이글을 굽고 샐러드를 차리던 와중 식용 가위를 가져오다 바닥에 떨어뜨렸다.


"가위 아팠겠어"


눈이 둥그레진 우리 둘에게 또 한마디 던지는 태민이


"Don't drop it"


다른 가정에선 아무것도 아닌, 이런 하찮은 한마디가 천금 같을 때가 있다. 비록 이 기쁨이 내가 짊어진 고통의 만분지 일도 해결하지 못한다 해도 잠시나마 면도날 같은 현실을 잊을 수 있게 하니까. 이렇게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이 순간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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