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판이 되어주는 것.
줄파가 임신을 했다.
글로리와 함께 찬양팀의 큰언니이자 선데이스쿨 유치부 보조교사로 헌신하고 있는 줄파는 어린 동생들 잘 챙기고 궂은일 도맡아 하던 착한 16살 소녀이다.
변호사가 꿈이었던 줄파는 반에서 1. 2등을 놓치지 않는 모범생이기도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여느 아이들처럼 부모님을 도와 물을 긷거나 밭에서 일을 하기는 했지만, 일을 하기 위해 학교를 못 가는 경우는 없었다.
가난하지만 성실한 줄파의 부모는 최선을 다해 줄파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헌신했다.
줄파의 부모는 줄파의 학업을 최우선 순위로 생각했다.
줄파는 십일조도 꼬박꼬박 했고 (학생이 십일조를 할 정도면 괜찮은 형편인 것이다)
수. 금요일 예배도 꼬박 나왔고 기도시간이면 언제나 앞에서 가장 늦게까지 기도를 하던 친구였다.
언젠가 무엇을 기도했어? 물어보니,
세계의 모두를 위해서 기도했다는 줄파의 대답에 좁디좁은 내 기도의 영역에 반성하기도 했었다.
적어도 줄파만큼은 꽃길을 걸을 줄 알았다.
줄파만 열심히 한다면 별문제 없이 대학에 진학하고 변호사가 될 줄 알았다.
나와 선교사님은 줄파를 후원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고, 후원자도 알아보는 중이었는데 줄파의 임신 소식에 선교사님과 나는 충격에 빠져 한동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멍한 시간을 보냈다.
더 충격인 것은 아이 아빠가 선교사님이 아들처럼 사랑한 교회 청년이라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약혼녀가 있었다.
줄파의 임신이 드러나자 그는 입고 있는 작업복 그대로 자취를 감췄고, 줄파 역시 지방에 사는 결혼한 언니의 집으로 도망치듯 가버렸다.
어떻게 그럴 수가.
그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은 수많은 '어떻게 그럴 수가'의 집합체이지 않은가?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가’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미 두 명의 아내까지 있는 줄파의 형부가 줄파에게 배 속의 아이를 받아줄 테니 자신의 3번째 아내가 되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에 선교사님은 당장 줄파를 데리고 오라며 사람을 보냈고, 다시 돌아온 줄파는 쉘터에 짐을 풀었다.
6개의 쉘터의 방 중의 하나가 줄파의 방이 되다니.
요동치는 나의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데 선교사님은 이 모든 상황을 인정하고 용납하고 껴안기로 하신 것 같다.
선교사님은 줄파에게 약속을 했다.
'네가 변호사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힘껏 돕겠다'고.
'아무 걱정하지 말고 공부하라'고.
'학교에 다닐 수 없으니 개인 교사를 붙여주겠다'고.
그리고 격려했다.
'아이는 우리가 모두 키우면 된다'고.
'조금 일찍 엄마가 되었다고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안심했다.
사랑으로 안아주는 든든한 어른이 옆에 있어서.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31년 전 선교사님 같은 누군가가 나에게 그 말을 해주었다면. 선교사님 같은 어른이 곁에 있었다면 나와 아이의 인생은 좀 더 달라졌을까?
삶은 고난의 연속이 아니고 극복의 연속인 것 같다.
줄파의 임신이 고난인지 축복인지 지금 나는 잘 모르겠지만 예기치 않은 임신과 같은 복병들이 우리 인생에 얼마나 많이 숨어있는지.
어떤 이들에게는 고난일 수도, 또 어떤 이들에게는 기회일 수도 있는 그 복병들을 극복하는
과정이 인생인 것 같다.
그렇게 극복하다 보면 끝에는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더 멋지고 근사하게 단련되어 있을 자신을 만나게 될지도.
그래서 나도 줄파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러니 앞으로 나아가라고.
줄파가 다시 나아갈 수 있도록 그 발판을 만들어주는 것.
그것이 어른인 내가 해야 하는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