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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준비하는 시간

by 샤론의꽃

이곳에 온 지 딱 1년이 되었고, 이제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된다.

내가 다시 한국으로 간다는 소식을 들은 아이들은 왜 가냐고 물었다.

한국에 나의 집이 있으니까.

아이들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마마 집은 여기 아니었어?

아니 마마 집은 한국이야.

마마 집에는 마마 딸이 있는걸, 마마 딸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마마는 돌아가야 해.


그러자 아이들은 더 놀란 표정이다.

마마에게 딸이 있다고?

나에게 가족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럼. 마마에게도 가족이 있는걸.


그제야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럼 언제 오냐고 묻는다.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쩌면 다시 못 만날지도 모를 일이니까.

이 아이들도 그동안 나의 곁을 스쳐 지나간 시절인연과도 같은 인연이 될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혹시라도 이 아이들에게 나는 또 다른 아픔의 기억이 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1년을 살다가 홀연히 떠나간 손님으로 기억된다는 게 조금은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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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위해 달란트 시장을 준비했다.

그동안 아이들이 예배를 잘 드리거나 청소를 하거나 칭찬받을만한 일을 했을 때 나눠준 달란트로 아이들이 평소에 갖고 싶어 했던 것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아이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것은 가방과 옷과 신발이다.

마음 같아서는 새것으로 준비해주고 싶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재정이 여의치 않아 미툼바에서 발품을 팔아 새것 같은 중고들을 사가지고 와서 예쁘게 포장해서 달란트 시장에 내어놓았다.

그리고 찬양팀 아이들에게는 1년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내가 줄 수 있는 게 이런 것뿐이었다.

소비하고 없어질 것들.

이런 것들이 없어질 무렵, 애틋하고 좋았던 기억들도 무뎌져갈 것이다.

그렇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다.

그저 추억할만한 기억들이 아이들의 토양이 되어주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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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밥을 나눠먹고 우리가 함께 불렀던 찬양도 부르고 예배도 드리면서 이별을 준비했다.

탄자니아에서의 1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단 하루도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을 정도로 매일매일이 별일이었던 날들이었다.

오해와 갈등도 있었고, 아픔과 고통도 있었으며 분노와 짜증도 있었다.

솔직하게 아~행복해라는 시간은 많이 없었다.

그냥 아무 일 없는 시간이 행복이었으리라.


오해와 갈등을 수습하고 화해하고 다시 회복하느라 우왕좌왕 지나온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단 하루도 없었으면 하는 날들은 없었던 것 같다.


이별을 준비하면서 함께 모여 축제를 벌이는 이 시간.

이 시간이 지나면 헤어져야 하기에 더 애틋하고 아쉬웠다.

애틋함과 아쉬움으로 이별을 준비할 수 있으니 감사하다.

여기저기에서 아이들이 훌쩍이고 있다.

눈물을 흘려줘서 고맙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쿨하게 인사했으면 서운했을 뻔했다.


이제 슬슬 모두가 집으로 돌아갈 시간.

마마들과 아이들이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주었다.

직접 짠 바구니와 천들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 겨우 살아가는 이들이 이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하루의 일당을 쏟아부었을 것이고 그것은 하루의 식량을 포기했었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나에게 소용없는 물건들이었지만, 나는 평생 이것을 간직하면서 오래오래 이곳의 1년을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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